▲ 텃밭에 심은 화초와 매화,산수유, 목단 등 묘목들 ⓒ 최오균
텃밭이라고 해보아야 지난해 시멘트로 된 마당에 흙을 부어 만든 세 평이 전부이다. 그 텃밭에는 이미 8일 날 구례장에서 사온 화초들(복수초, 히아신스, 수선화 등)을 심어놨고, 그 사이사이에 청매화, 홍매화, 목단, 그리고 호랑가시나무를 심어놓았다.
그뿐 아니라 아내는 상치, 시금치, 쑥갓, 아욱, 건대, 치커리 등 씨를 뿌려 놓았다. 이미 그곳에는 지난해에 심은 보리, 파, 양파가 싹이 돋아나 있고, 가장자리에는 완두콩, 독일 그린빈을 심어 놓았다. 그러니 작은 텃밭에는 무려 열 가지가 넘게 자라나거나 씨가 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다. 그제(14일)까지만 해도 한낮 최고 기온이 15~16도를 올라가 금방 여름이 올 것만 같은 따뜻한 날씨였는데 어재부터 꽃샘추위 때문에 기온이 뚝 떨어져 얼음이 얼고, 수도꼭지도 얼어붙었다.
나는 화분의 화초들을 옮겨 심을 때 나는 3월이 지난 다음에 심자고 아내를 극구 말렸다. 그러나 이제 영하의 날씨가 더 오겠느냐며 아내는 그 좁은 텃밭에 화초들을 모두 옮겨 심고 말았던 것. 14일 일기예보에 꽃샘추위가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 꽃들이 안전할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꽃들이 심히 염려가 되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빨리 옮겨 심은 게 죄지."
"뭐라도 덮어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 꽃샘추위를 막기 위해 화초 위에 각종 용기를 덮어둔 모습 ⓒ 최오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천막을 덮을 수도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화초 위에 갖가지 용기들을 창고에서 꺼내와 덮어두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화초들이 용기를 둘러쓰고 피난을 가는 것 같아 아내와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오늘(16일) 아침 일어나 맨 먼저 화초들에게 달려가 용기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은 얼지 않고 꽃들이 피어 있다. 절구통엔 물이 땡땡 얼어 있고, 바람은 윙윙 불어와 다시 겨울이 온 갓 같은데…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라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에 꽃들이 안전 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나무를 심다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말은 지금 대지진을 맞아 질서를 지키며 침착하게 대응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들은 너무나 침착했다. 물 한 방울을 받기 위해 몇 km의 줄을 서고, 슈퍼마켓에서는 사재기보다는 꼭 필요한 물건만 소량을 구입했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먹을 것을 양보했다. 결코 울부짖거나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울부짖을 겨울도 없겠지만 그들의 질서의식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한 과거사를 생각하면 미운 생각이 절로 나지만 지금 같은 인간으로서 생과 사의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을 보면 측은지심이 아니 들 수 없다. 하루 빨리 모든 것이 속히 회복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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