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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군산항'과 '독도는 우리 땅'의 만남

경북 울릉군 주민들의 '가이드'가 되던 날

등록|2011.03.17 16:19 수정|2011.03.17 16:19
어제(16일) 오후, 생각지 못한 군산의 문화, 역사를 소개하는 '알림이'가 되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 대상이 부부동반으로 군산을 찾아온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주민들이어서 더욱 뜻이 깊었다.  

40년 공무원 생활을 명예퇴직으로 마감하고 옛 군산세관 청사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활동하는 지인(이종예)을 어제 점심 때 만났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는 오후 2시쯤 울릉도에서 손님 12명이 부부동반으로 온다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이종예 해설사는 동쪽 끝 울릉도에서 손님이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80년대 초 부부가 울릉도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민박을 하게 됐는데, 갑자기 폭풍주의보가 내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페인트 가게 사장(변대흠)이 친절하게 보살펴준 게 인연이 되어 30년 가까이 정을 나누고 있다고. 변 사장은 보름 전에도 다녀가면서 군산이 좋다고 하더니 '군산 홍보대사'가 되어 친구 부부들과 함께 온다고 했다.

사연을 듣는 순간 서해의 반대편에 사는 울릉도 주민에게는 '일제 수탈의 도시 군산'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호기심이 동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취재수첩에 담고 싶어졌다. 해서 동행하면서 취재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 구 세관 청사에서 인사를 나누는 울릉도 주민과 이종예 해설사 ⓒ 조종안


조금 있으니까 손님들이 도착했다. 새만금 방조제(33,9Km)에 들러 설명을 듣고 오는 길이라며 끝이 안 보이는 방조제와 배수갑문 위용에 놀라워 했다. 이 해설사는 손님들에게 여러분을 취재하려고 집에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며 나를 소개했다. 손님들도 박수로 환영해주어 다행이었다.

울릉도는 삼국시대에 '우산국'이란 나라가 세워질 정도로 큰 섬이어서 토박이가 많겠다고 했더니,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70%를 넘었는데 지금은 50%도 채 안 된다고 했다. 인구도 3만 명이 넘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1만 명 조금 웃도는 정도라고. 인심도 정겹고 따뜻하던 옛날 같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해설사는 구 서울역과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의 중세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옛 세관 청사(1908년 완공)의 건축 목적과 변천 과정 등을 설명해 나갔다. 내부 천정과 벽을 눈여겨보던 손님들은 하나도 갈라진 데가 없다면서 진짜 100년이 넘은 건물이냐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 1920년대 일본으로 쌀을 반출하기 위해 창고에 쌓아놓은 쌀가마.(세관청사 전시실에서) ⓒ 조종안


수탈의 창구였던 당시 세관은 조선 백성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으며 어쩌다 들어오더라도 몸수색을 당했고, 일인들이 벌이는 연회를 몰래 구경하다 경비원에게 붙잡혀 뭇매를 맞기도 했다고 하자 그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었느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피죽, 아니면 콩깻묵으로 끼니를 연명할 때 일제는 호남의 기름진 쌀로 배를 불렸으며, 농민이 피땀 흘려 거둬들인 쌀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환호작약하며 잔치를 벌였다는 설명에 손님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어디 그럴 수 있느냐며 탄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산교육의 장소가 되고 있는 구 세관 청사는 엊그제도 일본인이 다녀갔다고 했다. 필리핀을 거쳐 왔다는 일본 방문객은 최근 일본은 지진으로 곤경에 처해있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한국을 부러워했단다. 방명록엔 서툰 영문으로 'JAPAN'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도봉희(64세)씨는 울릉도에도 일제의 착취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울릉도에도 옛날에 일본 아들이 많이 살았어요. 한국 사람을 상대로 돈놀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간스미'(통조림) 공장도 해서 돈을 숱하게 챙겼지만, 해방이 되고 즈그 나라로 갈 때는 빈 몸으로 돌아갔다, 아입니까"라고 말했다.

생각잖게 '군산 알림이' 되다  

세관 청사에서 일제강점기에 쌀을 쌓아놓기도 하고, 배에 선적하던 내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터졌다. 울릉도에서 온 손님 중에 한 분이 갑자기 배가 아프고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했던 것. 해서 이 해설사가 모시고 침 맞으러 다녀오는 사이에 안내자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관광 해설사 교육을 받지 못한 터여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담을 중심으로 내항에 남아 있는 부잔교(뜬다리)와 구 조선은행 건물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다행히도 손님들이 관심을 표해주어 보람을 느꼈다.

또한,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탱크와 장갑차, 전투기 등이 전시된 '진포해양테마공원'과 최무선 장군이 개발한 화포와 해전 자료 등이 진열된 '위봉함 676'(LST) 내부를 둘러보고 군복무시절 추억을 회상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 ‘위봉함’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다 금강 하류에서 실뱀장어 잡이 배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울릉도 주민들 ⓒ 조종안


말문이 트이니까 금강에 떠있는 '히라시'(실뱀장어)잡이 배들을 가리키며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망망대해 동해(東海)만 바라보다가 비릿한 짠 냄새가 풍기는 부둣가와 드러난 갯벌을 보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에는 슬픈 사연을 간직한 섬이 많았습니다. 40~50년 전만 해도 배가 작고 풍선(風船)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조개를 캐러 갔다가 물때를 맞추지 못하거나 배가 뒤집혀 몰사하는 바람에 마을에서 부모 제사가 같은 날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엿소리도 다른 지역과 달리 구슬프지요."

울릉도에서 오셨으니 섬 얘기를 하겠다며 동해안과 달리 물이 조금만 빠져도 갯벌이 드러나는 서해 바닷가 마을과 섬사람들이 조개를 줍는 데 정신이 팔려 죽은 처녀도 많았다고 하니까 말없이 듣기만 하던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 아파했다.

세관과 내항을 둘러본 손님들은 뼈아픈 역사라며 하나같이 일본의 만행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성토했다. 잊을 만하면 일본이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독도와 이웃하고 살아온 영향 때문으로 풀이되었다.

내항을 둘러보고 금강하굿둑 부근에 있는 '금강철새조망대'로 이동했다.

▲ 철새조망대 1층에서 조류 해설사 설명을 귀담아 듣는 울릉도 주민들. ⓒ 조종안


▲ 철새조망대에서 바라본 금강하굿둑 노을 ⓒ 조종안


조류의 진화 과정과 철새들의 생태를 학습할 수 있는 1층과 금강에서 서식하는 조류들을 박재하여 진열해놓은 2층을 둘러보고 망원경 및 대형 PDP가 설치된 11층으로 올라가 금강 하류의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했다.  새로운 모습에 "야, 대단하데이!"를 연발하며 갑자기 높은 곳에 오르니까 방향감각이 없어지는지 강 건너가 군산인지 충청도인지 묻기도 했다.

오성산 정상의 오성인(五聖人) 묘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백제 의자왕 20년(서기660년)에 13만 군대를 끌고 군산으로 들어오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장기를 두던 다섯 노인에게 부여로 향하는 길을 묻자 적의 장수에게는 길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하여 죽음을 당했다니까, 그렇게 훌륭한 노인도 있었느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일정을 마치고 째보선창 유락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소중한 만남을 자축하는 모습. ⓒ 조종안


침 맞으러 갔던 손님과 철새 조망대에서 합류하여 째보선창에 있는 식당에서 개운한 국물이 그만인 아귀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주머니들은 국물이 개운하다며 좋아했고, 남자들은 매콤하고 얼큰한 아귀찜을 안주로 소주잔을 부딪치며 소중한 만남을 자축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이종예 해설사가 "군산항구 밤 부두에 비가 내린다. 말없이 헤어지고 눈물로 헤어지던···."으로 시작하는 노래 '헤어진 군산항'을 부르는 것으로 군산을 찾아준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울릉도에서 온 손님들은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 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으로 시작하는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을 합창하는 것으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울릉도를 꼭 한 번 방문해달라는 초청의 말을 남기면서.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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