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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파업, 막대한 손해 끼쳐야 업무방해죄"

"언제나 업무방해죄 아냐... 사업운영에 심각한 혼란이나 손해 초래해야"

등록|2011.03.17 21:26 수정|2011.03.17 21:26
집단적으로 근로 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은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업운영에 심각한 혼란이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을 때만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노동관계 법령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아닌 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해 온 종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한 것으로, 파업에 관한 업무방해죄를 종전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장 점거나 기물 파손 등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파업도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면 거의 예외 없이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온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법원도 이번 판결에 대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김영훈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06년 2월 28일 사측과의 단체교섭 최종협상이 결렬된 직후 중앙노동위원회가 노동쟁의 중재회부 결정을 내려 필수공익사업장인 철도공사의 경우 중재기간에는 쟁의행위가 금지됨에도, 교섭 결렬 다음날 새벽 1시 총파업을 강행했다.

파업 나흘 동안 1만3808명의 노조원이 서울철도차량정비창 등 전국 641개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아 KTX 열차 329회, 새마을호 열차 283회 운행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영업손실과 대체인력 보상금 등 총 135억 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김영훈 위원장은 '위력'으로써 한국철도공사의 여객·화물 소송업무 등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단순한 노무거부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이지현 판사는 2006년 5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영훈 위원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다수의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작업장을 이탈하거나 결근하는 등 근로의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사용자의 생산·판매 등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해 손해를 발생하게 했다면, 그와 같은 행위가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아닌 한, 다중의 '위력'으로써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다만 "쟁의행위가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이루어진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이 사건 파업은 소극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한 것에 불과하므로, 단순한 근로계약의 불이행에 해당할 뿐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설령 파업이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파업의 경위 등에 비춰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김선혜 부장판사)는 2006년 12월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다만 형량을 낮춰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파업으로 인해 중단된 한국철도공사의 업무내용 및 손해정도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파업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행위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또 "이 사건 파업은 중재회부결정에 따라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미 법령규정을 위반한 쟁의행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사용자가 입은 손해 또한 상당하므로,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감형과 관련, "피고인이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정해 파업을 개시한 점, 파업기간이 4일 정도로 비교적 짧았고, 사업장을 점거하거나 기물을 손괴하는 등 폭력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아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 점, 노사대화합 차원에서 회사가 고소를 취하한 점 등을 참작하면 1심 형량은 다소 무거워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김영훈 위원장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집단적 노무제공 거부행위인 단순 파업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 중 '위력'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17일 2006년 3·1절 철도노조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김영훈(43) 전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쟁의행위로서의 파업도 단순히 근로계약에 따른 노무의 제공을 거부하는 부작위에 그치지 않고, 이를 넘어서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해 근로자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중단하는 실력행사이므로,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에 해당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와 달리,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해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운영을 저해하고 손해를 발생하게 한 행위가 당연히 형법상 위력에 해당함을 전제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며 내려진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이번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근로자들이 집단 파업에 나선 경우 대부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했던 판례를 앞으로는 변경하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것이다.

반면 박시환·김지형·이홍훈·전수안·이인복 대법관은 "근로자들의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는 그것이 비록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더라도 업무방해죄의 실행행위로서 사용자의 업무수행에 대한 적극적인 방해 행위로 인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며 "따라서 근로자들의 단순 파업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방해죄의 죄책을 인정한 원심 판결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무죄 반대의견을 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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