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은 계략에 쓸 방책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이 속한 세상이 늘 푸르고 천 년 만 년 물 흐르듯 담담히 지나갈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계략을 꾸미는 이는, 내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금의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보루각 자격루(自擊漏)를 보더라도 자신의 시간은 언제나 눈으로 확인되며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물시계의 파수호(播水壺)를 자연스럽게 통과하는 것으로 믿는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기갈에 허덕이며 숨이 끊긴 것도 남의 일이라 여기며, 자신의 시대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선 모래시계 상단에 쌓인 모래의 분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칼을 휘둘러 상대의 목을 따고 눈을 가린 채 윽박지르며 만행을 저질러 악을 쌓는다.
그러나 어떤가.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흘러가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람의 시대도 물시계의 물처럼 바닥을 드러낸다. 심판을 했던 자가 '심판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궁색한 변명을 헛소리처럼 늘어놓는다.
"모든 건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무엇을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인가.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입은 화근의 문'이라고 냉소를 흘렸던 자는 권좌에서 진흙탕에 내팽개쳐지고 황음한 부정 속에 놀이판을 기웃거리던 패거리들은 역사의 단죄 속에 줄을 지어 사라진다.
이게 세상이고 세월의 힘이다. 어느 특정인에게 영원히 쥐어질 요사를 부릴 세상은 없다. 세도의 힘으로 박박 긁어모은 재산은 저주받은 후손들의 심장을 가시가 되어 찔러댈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주위의 요망한 말들로 아들을 죽게 만든 영조대왕은 시간이 흘러 그 얼마나 후회했는가. 어찌 대왕뿐이겠는가. 대왕 곁에 있는 아첨꾼들은 정조가 보위에 오르면서 층층이 물고가 났다. 이조판서 송덕상을 따르는 문인방 패거리들은 산산이 흩어졌으나 운 좋게 일본 황실에 들어간 소수니는 사신이 되어 조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정순왕후의 총애를 등에 업자 그녀는 '미꼬시(みこし) 놀이'를 선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놀이는 제신(祭神)으로 추앙받는 '도경'이란 자를 추앙하는 놀이였다.
열두 명의 사내와 계집을 놀이판에 끌어들여 방사를 연출한 이 놀이에는 여황제 효겸(孝謙)의 상대역으로 '도경'이 등장했다. 그는 무 뿌리처럼 커다란 사내의 물건에 힘까지 넘쳐난 덕택에 법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여황이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자신의 거시기를 자르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었다. '미꼬시(みこし) 놀이'는 가마(神輿)를 메고 거리로 돌아다니는 걸 말한다.
왜 그러는 걸까? 여기엔 이유가 있다. 일본에는 도경을 받든 신사(神社)가 있다. 경도에 있는 미타마 신사는 효겸천황을, 아래쪽에 있는 히다노 신사는 도경을 모시는데 가을의 제삿날에는 양쪽 신사를 가마가 오르내리며 못다 푼 두 사람의 회포를 풀 수 있게 한다.
'미꼬시(みこし) 놀이'는 야합(野合)을 허용하는 놀이었다. 참배 온 젊은 남녀들은 상대가 누구건 마음대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풀숲에서, 돌난간에서, 층계에서, 흙밭에서, 어디에서 건 젊은 남녀는 조건없이 얽힌다. 흥미로운 건 이날 많은 사내와 관계한 여인에게 상을 내리는 게 '미꼬시(みこし) 놀이'의 절정이었다. 제관으로 참례한 이가 소수니였다.
놀이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하루 뒤, 사내와 계집애를 대비전으로 불러들일 아침에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소수니가 자신의 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의당 형부에서 나설 일이었으나 때마침 궐에 들어 온 정약용이 시체를 살폈다.
소수니는 자신의 침실에서 뒤에서 입이 막힌 채 칼날이 흉복부를 강하게 파고들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상흔 어귀의 피육에 피가 있고 내막(內膜)은 뚫린 상태였다.
상대를 안듯이 하여 뒤쪽에서 칼을 썼으나 속살의 결무늬가 밖으로 도드라진 상태였다. 그곳이 옷으로 쌓인 탓에 주위를 손가락으로 누르자 피는 보이지 않고 맑은 물이 나왔다. 궐 안의 살인사건에 대해 사체를 검시하던 도항(屠行)이 스스로 검시기록(罪狀)을 내놓았다.
"이 계집은 살아있을 때 칼을 받아 죽음에 이른 것으로, 칼날이 뚫은 흉당(胸膛)은 젖가슴 중앙인 가슴 한가운데입니다. 칼날이 반쯤 들어갔으나 즉시 명이 끊긴 것은 칼에 묻은 독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가슴 한가운데였지만 칼날이 뚫은 건 흉부의 뼈가 있고 가느다란 유골(乳骨)이 있는 곳이다. 아직 사내를 모르는지 젖꼭지는 연한 갈색을 띤 채 부풀지 않았고, 성숙하지 못한 유방도 여리고 작았다.
"여긴 대비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누구나 쉬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네. 소수니라는 왜나라 사신이 앞이 아닌 뒤쪽에서 칼을 맞은 건 누군가가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인데···, 나이 열여섯 먹은 계집의 몸을 원한 게 아니라면 뭔가 노리는 게 있었을 것이야···."
궐 안에서 살인사건이 난 경우, 대개는 독(毒)을 쓴다. 독을 쓰는 경우는 여러 가지지만 내명부에서 쓸 때엔 나인을 길들이거나 벌을 내릴 때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때엔 비상을 묻힌 옷감이나 종이를 사용하기 마련으로 장시간 고통을 주며 상대방을 질리게 해 압새(壓塞)시킨 탓에 사체의 복부가 부어오른다.
조용한 가운데 살인을 해야 하는 경우엔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소수니는 칼에 찔려 사망했다. 그녀의 소지품으로는 음양초(陰陽燭)라 부르는 두툼한 황촉과 뒤꽂이 나비장식인 금보요(金步瑤)가 있었다.
이것은 놀이를 행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황촉과 나비장식 속엔 미약(媚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소지품을 넣는 함(函) 속에 담겨있는 것으로 보아 그걸 노린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가 자신의 전각을 찾아온 추내관을 사고 현장에 보내 상황을 알아오게 한 탓에 그는 담담한 낯으로 정약용을 맞고 있었다.
"시생은 대비전을 출입하는 장번 내관으로 왜나라 사신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가끔 얼굴을 대면했습니다."
비록 상감이 품계를 내린 게 사포(司圃) 담당이지만 오랫동안 대비전을 출입한 장번 내시다 보니 이곳에 들른 건 일종의 요식적인 버릇이었다.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약용은 벌써 알고 있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무슨 말씀이신지."
"소수니라는 아인 왜국의 사신이지만, 조선 태생이라 들었네. 그 아이 아비가 의관(醫官)이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소수니도 궐 안 사정을 훤히 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가?"
"처음 듣는 얘깁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인 그림 보는 신묘한 재주가 있다 하는데 그 아이가 머문 처소에 그림 하나 없는 걸 보면 다른 생각이 드네."
"무슨 말씀이신지?"
"지닌 물건들을 살피면 방사(房事)에 필요한 것들로 정신을 혼란케 하는 미향(媚香)이나 금보요(金步瑤)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아이가 궐에 들어온 건 '색공(色功)'을 마음에 뒀을 것으로 보이네."
"색공이라면···?"
"색으로 공덕을 쌓는 것이네. 이것은 내명부 소속인 내반원(內班院) 내관들이 해야 할 일이나 가끔은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이네. 나이 열여섯인 소수니가 특별한 것을 지녔다고 보긴 어렵고 혹여 다른 목적이 있다 생각지 않는가?"
소수니는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급히 궐 안에 들어 온 서과는 그녀의 몸을 검안하던 중, 소수니의 어깨 섶에서 뜻밖의 문양을 찾아냈다. 그것은 가지가 셋으로 나뉜 매화송이였다.
'예전에 문인방이 계략을 꾸밀 때 정순왕후 쪽에서 필요한 자금 일부를 줬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 진위를 가리지 못해 허망한 얘기만 떠돈 것으로 아는 데, 반역이 실패하고 준비한 자금을 놓아둔 채 패거리들 일부가 멀리 오키나와 현으로 도망갔다고 했다. 이 아이의 어깨 섶에 먹물을 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금을 숨긴 장소를 먹물로 문양을 뜬 게 분명하다. 그런 것으로 보면 이 계집은 숨겨놓은 자금을 찾으러 왔음이 분명하다.'
사헌부 관원의 업무공간인 대청에서 정약용을 뵌 서과는 문인방 사건 당시 당연히 나타나야할 것으로 생각한 자금의 출처가 오리무중인 것에 의아심을 품기 시작했다.
[주]
∎흉당(胸膛) ; 젖가슴 중앙
∎도항(屠行) ; 궐 안에서 시체를 검안하던 사람
∎색공(色功) ; 잠자리를 준비하던 내관
보루각 자격루(自擊漏)를 보더라도 자신의 시간은 언제나 눈으로 확인되며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물시계의 파수호(播水壺)를 자연스럽게 통과하는 것으로 믿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선 모래시계 상단에 쌓인 모래의 분량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칼을 휘둘러 상대의 목을 따고 눈을 가린 채 윽박지르며 만행을 저질러 악을 쌓는다.
그러나 어떤가.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흘러가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람의 시대도 물시계의 물처럼 바닥을 드러낸다. 심판을 했던 자가 '심판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궁색한 변명을 헛소리처럼 늘어놓는다.
"모든 건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무엇을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인가.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에게 '입은 화근의 문'이라고 냉소를 흘렸던 자는 권좌에서 진흙탕에 내팽개쳐지고 황음한 부정 속에 놀이판을 기웃거리던 패거리들은 역사의 단죄 속에 줄을 지어 사라진다.
이게 세상이고 세월의 힘이다. 어느 특정인에게 영원히 쥐어질 요사를 부릴 세상은 없다. 세도의 힘으로 박박 긁어모은 재산은 저주받은 후손들의 심장을 가시가 되어 찔러댈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주위의 요망한 말들로 아들을 죽게 만든 영조대왕은 시간이 흘러 그 얼마나 후회했는가. 어찌 대왕뿐이겠는가. 대왕 곁에 있는 아첨꾼들은 정조가 보위에 오르면서 층층이 물고가 났다. 이조판서 송덕상을 따르는 문인방 패거리들은 산산이 흩어졌으나 운 좋게 일본 황실에 들어간 소수니는 사신이 되어 조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정순왕후의 총애를 등에 업자 그녀는 '미꼬시(みこし) 놀이'를 선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놀이는 제신(祭神)으로 추앙받는 '도경'이란 자를 추앙하는 놀이였다.
열두 명의 사내와 계집을 놀이판에 끌어들여 방사를 연출한 이 놀이에는 여황제 효겸(孝謙)의 상대역으로 '도경'이 등장했다. 그는 무 뿌리처럼 커다란 사내의 물건에 힘까지 넘쳐난 덕택에 법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여황이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자신의 거시기를 자르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었다. '미꼬시(みこし) 놀이'는 가마(神輿)를 메고 거리로 돌아다니는 걸 말한다.
왜 그러는 걸까? 여기엔 이유가 있다. 일본에는 도경을 받든 신사(神社)가 있다. 경도에 있는 미타마 신사는 효겸천황을, 아래쪽에 있는 히다노 신사는 도경을 모시는데 가을의 제삿날에는 양쪽 신사를 가마가 오르내리며 못다 푼 두 사람의 회포를 풀 수 있게 한다.
'미꼬시(みこし) 놀이'는 야합(野合)을 허용하는 놀이었다. 참배 온 젊은 남녀들은 상대가 누구건 마음대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풀숲에서, 돌난간에서, 층계에서, 흙밭에서, 어디에서 건 젊은 남녀는 조건없이 얽힌다. 흥미로운 건 이날 많은 사내와 관계한 여인에게 상을 내리는 게 '미꼬시(みこし) 놀이'의 절정이었다. 제관으로 참례한 이가 소수니였다.
놀이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하루 뒤, 사내와 계집애를 대비전으로 불러들일 아침에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소수니가 자신의 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의당 형부에서 나설 일이었으나 때마침 궐에 들어 온 정약용이 시체를 살폈다.
소수니는 자신의 침실에서 뒤에서 입이 막힌 채 칼날이 흉복부를 강하게 파고들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상흔 어귀의 피육에 피가 있고 내막(內膜)은 뚫린 상태였다.
상대를 안듯이 하여 뒤쪽에서 칼을 썼으나 속살의 결무늬가 밖으로 도드라진 상태였다. 그곳이 옷으로 쌓인 탓에 주위를 손가락으로 누르자 피는 보이지 않고 맑은 물이 나왔다. 궐 안의 살인사건에 대해 사체를 검시하던 도항(屠行)이 스스로 검시기록(罪狀)을 내놓았다.
"이 계집은 살아있을 때 칼을 받아 죽음에 이른 것으로, 칼날이 뚫은 흉당(胸膛)은 젖가슴 중앙인 가슴 한가운데입니다. 칼날이 반쯤 들어갔으나 즉시 명이 끊긴 것은 칼에 묻은 독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가슴 한가운데였지만 칼날이 뚫은 건 흉부의 뼈가 있고 가느다란 유골(乳骨)이 있는 곳이다. 아직 사내를 모르는지 젖꼭지는 연한 갈색을 띤 채 부풀지 않았고, 성숙하지 못한 유방도 여리고 작았다.
"여긴 대비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누구나 쉬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네. 소수니라는 왜나라 사신이 앞이 아닌 뒤쪽에서 칼을 맞은 건 누군가가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인데···, 나이 열여섯 먹은 계집의 몸을 원한 게 아니라면 뭔가 노리는 게 있었을 것이야···."
궐 안에서 살인사건이 난 경우, 대개는 독(毒)을 쓴다. 독을 쓰는 경우는 여러 가지지만 내명부에서 쓸 때엔 나인을 길들이거나 벌을 내릴 때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때엔 비상을 묻힌 옷감이나 종이를 사용하기 마련으로 장시간 고통을 주며 상대방을 질리게 해 압새(壓塞)시킨 탓에 사체의 복부가 부어오른다.
조용한 가운데 살인을 해야 하는 경우엔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소수니는 칼에 찔려 사망했다. 그녀의 소지품으로는 음양초(陰陽燭)라 부르는 두툼한 황촉과 뒤꽂이 나비장식인 금보요(金步瑤)가 있었다.
이것은 놀이를 행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황촉과 나비장식 속엔 미약(媚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소지품을 넣는 함(函) 속에 담겨있는 것으로 보아 그걸 노린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가 자신의 전각을 찾아온 추내관을 사고 현장에 보내 상황을 알아오게 한 탓에 그는 담담한 낯으로 정약용을 맞고 있었다.
"시생은 대비전을 출입하는 장번 내관으로 왜나라 사신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가끔 얼굴을 대면했습니다."
비록 상감이 품계를 내린 게 사포(司圃) 담당이지만 오랫동안 대비전을 출입한 장번 내시다 보니 이곳에 들른 건 일종의 요식적인 버릇이었다.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약용은 벌써 알고 있었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무슨 말씀이신지."
"소수니라는 아인 왜국의 사신이지만, 조선 태생이라 들었네. 그 아이 아비가 의관(醫官)이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으로 보아 소수니도 궐 안 사정을 훤히 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가?"
"처음 듣는 얘깁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아인 그림 보는 신묘한 재주가 있다 하는데 그 아이가 머문 처소에 그림 하나 없는 걸 보면 다른 생각이 드네."
"무슨 말씀이신지?"
"지닌 물건들을 살피면 방사(房事)에 필요한 것들로 정신을 혼란케 하는 미향(媚香)이나 금보요(金步瑤)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아이가 궐에 들어온 건 '색공(色功)'을 마음에 뒀을 것으로 보이네."
"색공이라면···?"
"색으로 공덕을 쌓는 것이네. 이것은 내명부 소속인 내반원(內班院) 내관들이 해야 할 일이나 가끔은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이네. 나이 열여섯인 소수니가 특별한 것을 지녔다고 보긴 어렵고 혹여 다른 목적이 있다 생각지 않는가?"
소수니는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급히 궐 안에 들어 온 서과는 그녀의 몸을 검안하던 중, 소수니의 어깨 섶에서 뜻밖의 문양을 찾아냈다. 그것은 가지가 셋으로 나뉜 매화송이였다.
'예전에 문인방이 계략을 꾸밀 때 정순왕후 쪽에서 필요한 자금 일부를 줬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 진위를 가리지 못해 허망한 얘기만 떠돈 것으로 아는 데, 반역이 실패하고 준비한 자금을 놓아둔 채 패거리들 일부가 멀리 오키나와 현으로 도망갔다고 했다. 이 아이의 어깨 섶에 먹물을 뜬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금을 숨긴 장소를 먹물로 문양을 뜬 게 분명하다. 그런 것으로 보면 이 계집은 숨겨놓은 자금을 찾으러 왔음이 분명하다.'
사헌부 관원의 업무공간인 대청에서 정약용을 뵌 서과는 문인방 사건 당시 당연히 나타나야할 것으로 생각한 자금의 출처가 오리무중인 것에 의아심을 품기 시작했다.
[주]
∎흉당(胸膛) ; 젖가슴 중앙
∎도항(屠行) ; 궐 안에서 시체를 검안하던 사람
∎색공(色功) ; 잠자리를 준비하던 내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