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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덟명이 강에 뛰어들었다, 왜?

'2011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와서(17)

등록|2011.03.21 17:36 수정|2011.03.22 10:02
항일 유적과 함께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넷째 날(1월 13일)은 흑룡강성(헤이룽장성)에서 두 번째 큰 도시라는 목단강시(牡丹江市)에서 아침을 맞았다. 전날 방문했던 조선족 집(양로원)에서 술을 조금만 마셨더니 아침에 허기를 느낄 정도로 속이 편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하는데 속옷 차림으로 잠들었다가 새벽에 고생했던 하얼빈 호텔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해서 내의를 껴입고 담요도 겹으로 덮는 등 완전무장을 했더니 잠을 설치지 않고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 호텔방에서 내려다본 목단강시의 아침. ⓒ 조종안


목단강의 아침은 '여기가 하얼빈인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얼빈과 비슷했다. 하얼빈에서 300km 넘게 떨어진 동남쪽 지점인데도 무척 추웠다. 길가에 쌓아놓은 하얀 눈무덤들과 스모그가 잔뜩 낀 잿빛 하늘 등 호텔방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도 흡사했다. 

새 호텔이지만 실내는 손을 비벼야 할 정도로 냉랭했다. 그래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까 온기가 돌았다. 집에서 가져온 인쇄물과 일정표를 보면서 필요한 짐도 챙기는 등 하루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오전 7시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 한식에 중식이 곁들여진 뷔페식 아침 식단 ⓒ 조종안


부지런한 일행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실내가 깔끔했다. 인테리어도 서구적이었고 식사도 뷔페식이었다. 다양한 음식이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있는데 처음 보는 메뉴들이 입맛을 유혹했다. 볶음밥도 세 종류나 되었다. 음식 종류가 많으니까 무엇을 먹을지 망설여졌다.  

전날 아침은 하얼빈 호텔 식당에서 야채와 죽으로 간단히 먹었다. 그러나 이날은 조금씩 골고루 맛보기로 하고 볶은밥, 만두, 생선 부침개. 야채무침, 수박 등을 쟁반에 담았다. 단골집처럼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참고 절제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았다. 

볶음밥과 만두는 고소한 맛을 내면서도 기름기가 없어서 좋았다. 목이버섯 무침은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많은 반찬 중에 시래기 무침은 입맛을 돋우었다. 디저트로 마신 수정과와 때아닌 수박은 입안을 청소해주는 청소부 역할을 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서 짐을 챙기면서 기행 나흘째라는 생각과 함께 서운함이 밀려왔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서 나왔다.

활기 넘치는 목단강의 아침

목단강의 아침은 하얼빈처럼 활기가 넘쳤다. 추운 날씨 탓인지 거리의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오갔다. 피부에 닿는 바람 끝이 날카로웠고, 콧물이 얼어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따끔거렸다. 피부로 느끼는 추위가 영하 25도는 될 것 같았다.

만주(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는 겨울 삭풍의 진원지다웠다. 어디를 가도 추웠고, 바람 끝이 고추장보다 매웠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렇게 맵고 날카로운 추위가 만주의 매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호텔 앞에서 바라본 목단강 거리. 처음엔 연기가 검어 화재가 발생한 줄 알았지요. ⓒ 조종안


해가 떴는데도 하늘은 잿빛으로 찌푸려 있었다. 거리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고개를 쳐드니까 건물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순간 중국에서 불구경하게 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료가 석탄인 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였다.

황금과 백금을 고가에 매입한다고 간판을 내건 금방은 한국에서 못 보던 풍경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금방은 백화점이나 대형 건물에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임시 건물을 지어놓고 영업하는 금방은 서울 종로의 복권 판매소를 떠오르게 했다. 

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30분이었다. 이날 일정은 '팔녀투강(八女投江)' 석조물이 있는 '빈강공원(濱江公園)'과 '동경성'에 있는 발해 유적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뒤 길림성(지린성) 연길(옌지)로 이동이었다. 

목단강은 하얼빈과 '쌍둥이 도시'

목단강변으로 방향을 잡았다. '팔녀투강' 석조물이 있는 빈강공원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버스 창으로 비치는 거리는 하얼빈과 '쌍둥이 도시'라는 느낌을 주었다. 추운 날씨, 칙칙한 하늘, 도로변의 다양한 얼음조각상까지 두 도시 분위기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 ‘빈강공원’으로 향하는 도로. ⓒ 조종안


▲ 빈강공원 정문. 밤에는 얼음에 불이 들어와 화려하다고 합니다. ⓒ 조종안


빈강공원으로 향하는 대로(大路) 주변은 '얼음 조각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각종 동물에서 대형 건축물까지 아름답고 웅장한 얼음 조형물 수백 개가 전시되고 있었다. 하얼빈에서 열리는 빙등축제를 옮겨놓은 듯했다. 후에 알았는데, 목단강에서도 겨울에 빙등제를 한단다.

거리의 아름답고 웅장한 얼음 조형물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가는 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는 일. 눈에 조금만 띄어도 카메라 렌즈부터 들이대는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유감이었다.

안전가이드는 목단강의 얼음 조형물들도 밤에는 불이 들어와 환상적으로 바뀐다고 했다. 설명을 듣자니까 야경이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밤이면 길림성 연길에 도착해있을 시간이었다. 관광과 항일 유적기행의 다른 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빈강공원의 '팔녀투강' 석조물

▲ 목단강쪽에서 바라본 ‘팔녀투강’ 석조물 ⓒ 조종안


공원에 도착해서 광장을 조금 걸어가니까 예사롭지 않은 석조물이 눈에 띄었다. 일본군에게 포위된 동지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유인작전을 펼치다 목단강에 투신했던 여전사(女戰士) 8명을 기리는 기념탑이었다. 

여전사들은 일제 침략에 항거하던 무장 단체들이 연합하여 1935년에 조직한 항일 연합군 제5군 예하 1사 대원들이었다고. 한족 여성 여섯에 안순복, 이봉선 두 전사가 조선 여성이라는 설명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조선의 두 여성은 치마저고리 차림이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중국 공원에서 한복차림의 석조물을 대하다니 그녀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처음 대하는 이름이어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부상당한 동지를 가슴에 안고 걷는 여전사와 눈을 가린 동지를 부축하고 걷는 여전사 모습은 일제의 야만적인 침략을 되새기게 했다. 치마저고리 차림에 오른손에는 총대를 쥐고 뒤쫓는 적을 응시하는 여전사의 눈빛은 살아 있는 것처럼 강렬했다.

항일연합군 소속 여전사 8명은?

▲ 측면에서 바라본 '팔녀투강' 석조물 ⓒ 조종안


1938년 봄. 일제 관동군은 송화강 하류에서 '3강대토벌'을 감행하였다. 당시 항일 연합군에는 30여 명으로 구성된 여성게릴라부대가 있었는데 8명의 여전사는 정지민, 호수란, 양귀진, 곽계금, 황귀청, 이봉선, 왕혜민, 안순복이었다.

그해 10월의 만주의 날씨는 매우 차가웠다. 부대원들은 목단강변 참나무골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숙영하다 밀정의 밀고로 야밤에 일본군 1천여 명에게 포위되었다. 정지민(랭운) 외 7명의 여전사는 적들을 유인하여 동료가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여전사들은 배후로 습격한 적의 포위를 뚫을 수 없었다. 일본군의 포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한 번밖에 피울 수 없는 생명의 꽃을 차디찬 강물에 던졌다. 그중에는 어리광이나 부릴 열세 살의 예비 아낙과 곱게 핀 스물다섯의 아낙도 있었다고.

일본군 포로가 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항일 여성 게릴라들. 목단강은 그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었으련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돌아서려니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서 몇 마디 읊조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목단꽃 두 송이

당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추운 목단강에는 왜 왔는지
무거운 총대는 왜 잡았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들렀다가
차디찬 강물에 몸을 던져
헌신의 꽃을 피운
당신들의 숭고한 넋을 보았을 뿐입니다.

스물다섯과 열 셋에 선택한 죽음
그 죽음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훗날 고향에 가면 전하겠습니다
목단강변에 장한 두 아낙이
영원히 시들지 않을
목단꽃으로 활짝 피어 있더라고

- 조종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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