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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의사 안수현에 얽힌 이야기

<그 청년 바보 의사>를 읽고

등록|2011.03.22 11:42 수정|2011.03.22 11:42
유행성출혈열은 가을에 걸리기 쉬운 전염병이다. 진드기 유충이 들쥐의 오줌을 통해 사람에게 침투해서 시간을 놓칠 경우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다. 저항력이 약한 노인들이 이 병원균에 쉬 노출되어 해마다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나에게도 이것으로 큰 일 날 뻔한 경험이 있다. 전 임지 옥천에서 목회할 때 아내가 이 병에 걸려 고생을 했다. 조금만 더 지체했어도 생명이 위험했다고 병원 담당 의사가 말해 주었다. 하루 전 같은 병으로 입원한 옆 침대 환자는 안타깝게 숨을 거두어서 더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름은 정확이 거명하지 않았지만 안수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때 들었다. 참 아까운 청년이 꿈도 펴보지 못하고 천국엘 갔다는 것이다. 서울 영락교회 사회봉사부 이미용팀들이 일 년에 몇 차례 우리 교회가 소재하고 있는 옥천군 청성면으로 봉사를 왔는데, 봉사팀으로부터 안수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미용봉사팀이 올 때면 우리 부부는 거의 빠짐없이 가서 일손을 도왔다. 나는 차량 봉사를 하고, 아내는 이미용과 청소를 돕는 등, 멀리서 봉사 온 그분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관계가 몇 년 계속되다 보니 같은 봉사 팀원처럼 인식될 정도였다. 아내가 유행성출혈열로 드러누워서 그날 봉사에는 나 혼자 참석했다. 늘 보이던 아내가 안 보이니 영락교회 권사님들의 인사가 쇄도했다. 나는 유행성출혈열로 지금 앓고 있는 관계로 나 혼자 왔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봉사 온 분들이 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빨리 댁으로 가서 사모님 큰 병원으로 이송하세요. 시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어서 빨리요!"

아닌게 아니라 아내가 앓고 있는 병이 유행성출혈열(일명 쯔쯔가무시)라는 것을 안 것도 당일이었다. 아내가 시름시름 앓아누운 지도 열흘이 넘었다. 처음엔 감기 몸살이겠거니 하고 면 소재지 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도무지 차도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더 증세가 심해져 갔다. 그런데 봉사의 날 당일 새벽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저승사자(?)가 새까만 세단차를 몰고 와서 무조건 타라고 했다. 아내는 꿈에서도 내가 저 장의차를 타고 가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이며 또 남편은... 큰 걱정이 엄습해 오더라는 것이다. 거기서 아내가 절대 못 간다며 단호하게 뿌리쳤다고 한다. 그리고 놀란 잠을 깨고 겨드랑이를 더듬으니 딱지 앉은 작은 반점이 하나 잡히더라는 것이다.

유행성출혈열에 걸리면 이런 반점이 몸 어딘가에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감기 몸살로 오인하여 시간을 놓치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내는 다행히도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 그때 영락교회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빨리 큰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성화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까운 곳 즉 한 교회에서 그 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군의관으로 있다가 쯔쯔가무시로 목숨을 잃은 안수현 대위이다.

안수현은 내과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행성출혈열이 걸리면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였던 셈이다. 그런 안수현이 그 병에 목숨을 잃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모두들 너무 아까운 믿음의 형제가 일찍 하늘나라로 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안수현은 위아래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칭찬을 듣는 청년이었다고 한다. 칭찬을 듣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어른들을 잘 섬기고 후배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친구들에게도 늘 정성을 다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바른 믿음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 자체가 감동의 진원지이자 은혜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금년 초 책 선물할 일이 있었다. 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졸업을 하는 후배 전도사에게 적당한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었다. 또 묵묵히 농촌 목회를 하던 후배 목사가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병문안을 가지 못하고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 이 목사님에게도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었다. 인터넷서점에 들어가서 무슨 책이 좋을까 하고 검색을 하던 중 <그 청년 바보 의사>란 책이 눈에 띄었다.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으로 되어 있는 책이 마음을 끌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란을 읽어 보니 안수현이 바로 영락교회 봉사팀들이 참으로 아깝다고 말한 그 청년이 아닌가!

오래 살아도 기억에 쉬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게 살아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 주위의 사람들만 따져 보아도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많다. 이것은 삶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일 것이다. 짧게 살아도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는지?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도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며 산 사람들을 우리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그가 쓴 글을 통해 드러난 안수현은 참 인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적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예수님과 같은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지만 그 누구보다도 따스한 삶, 향기로운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 청년 바보 의사>는 총 9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는 그의 짧은 생애 속 활동상들이 그의 글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사랑하고 그를 좋아한 사람들의 간증들이 담겨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누구나 나약하게 된다. 그런 환자들을 진정 사랑으로 돌본 그의 병상일지도 있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 케이블 CCM 프로 진행까지 맡았던 그의 음악 사랑 이야기도 있다. 또 군 생활에서 느끼는 군의관으로서의 감동적인 내용이며 성경 공부 등 동아리 리더로서의 활약상도 기록되어 있다. 안수현의 목숨을 살리고자 급하게 후송되어 모교 병원으로 와서 긴박하게 움직인 동료 선후배 의사들의 눈물도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명망 있고 뛰어난 의사는 아닐지라도 자기 주위의 보통 사람들에게 정성과 사랑을 다한 그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증거 되고 있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의사는 많되 의사다운 의사 즉 참 의사는 드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니 이건 꼭 의사들에게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참 교사가 드물며, 참 정치인이 없고 참 성직도도 많지 않은 현실이다. 그만큼 이 시대는 '참'이 고갈된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수현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참 의사'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는 것을 볼 때 그는 보통 의사와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유행성출혈열에 걸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도 군의관이라는 특수직을 내려놓고 일반 사병들과 함께 한 데 있다. 군의관은 보통 훈련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훈련병들을 돕는 위치에 있으면 된다. 군 구급차를 타고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면 족한 것이다. 하지만 안수현은 직접 훈련에 참가해서 훈련병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훈련 중 잠깐 풀밭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한 것이 그 병에 걸리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된 것 같다.

안수현의 사람됨 의사됨의 참 가치는 의사로서의 환자를 대할 때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이 가르침에 따라 의술을 펼쳤기에 여느 의사들과는 달랐다. 몸의 병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환자들의 마음까지 깊이 헤아려주는 의사였다. 환자의 손을 붙잡고 울어주고, 돈이 없는 환자를 위해 병원비를 대납해주며, 인연을 맺은 환자는 끝까지 돌봐주었다. 그는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해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환자의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며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의사였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해 주며, 그들을 진정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손을 꼭 잡아 주기도 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환자를 격려했지만, 치료의 벽에 부딪힌 환자들에겐 더 이상 도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말해 주기도 했다. 진정 참 의사로서의 모범된 길을 걸은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그리운 시대이다. 하지만 드문 현실을 어떡하랴! 목회자도 평신도도 바라보며 닮고 싶은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그리스도인이면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고 베풀며 섬기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무언가를 움켜잡으려고, 또는 움킨 것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들을 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움켜진 손이 펴지기를 기다리신다. 그 손을 펼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철저히 깨달을 때, 비로소 꼭 쥔 손을 펴고 그 분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안수현은 이 쉽지 않은 실천에 전력을 투구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넉넉하게 베풀었다. 그의 가방엔 책, CD 및 다른 선물들이 늘 가득했다고 한다. 그것을 병원에 입원한 고사리 손에서부터 노인 분들의 손에 이르기까지 직접 전해 주고 기도해 주었다. 받는 환자들에게 힘이 되었고 전달한 안수현에겐 더없는 기쁨이 되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을 하나님이 데려 가실 때에는 야속한 마음이 없지 않다, 안수현이 그렇다. 앞으로 그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데려가시다니!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생각밖에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한 결과이다. 이 세상에서보다 하늘나라에서 더 급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데려가신 것은 아닐까? 안수현은 갔지만 그는 아직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가 만들어 놓은 미니홈피는 지금도 살아있어 정과 사랑에 메마른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수현의 <그 청년 바보 의사>는 한 청년의 신앙 행전이다. 나는 제목에서 왜 하필 '바보' 의사여야 하는지를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험악한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삶은 바보 같은 우직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정신적 영적 유익이 있을 것이다. 선물하고 싶은 책, 일독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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