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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게맛살 수출도 막힌다"  외교관 154명 이긴 한 전문가의 경고

[e사람⑥] 한-EU FTA 번역 오류 밝혀낸 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

등록|2011.03.22 21:42 수정|2011.05.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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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최근 한-EU FTA 한글본 협정문 번역 오류 문제에 대해 "번역 오류가 아니라 불일치"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송변호사는 "오류라는 말은 영문본은 맞고, 한글본은 틀리다는 것"이라며 "이는 법률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며 한글본이든 영문본이든 둘 다 정본(正本)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 유성호


[ 기사 수정 : 23일 오전 10시 10분 ]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송기호(48) 변호사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름 앞에 '통상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미국과 유럽연합(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이 거론될 때마다 그가 등장했다. 통상법을 전공한 몇 안 되는 변호사로서 정부의 FTA 협상 과정과 내용에 대한 그의 비판과 지적은 매서웠다.

특히 최근 한-EU FTA 협정문 국회 비준 여부를 놓고, 정부는 송 변호사에게 말 그대로 수모를 당했다. 그는 협정문 국문본의 중대한 번역 오류를 연이어 폭로했고, 정부는 EU 쪽과 다시 협의해 국문본을 다시 써야 했다. 물론 3월 국회 비준 처리는 무산됐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까지 나서 "변호사 1명 못 당하는 외교관 154명"(조선일보), "송기호에게 고개숙인 김종훈"(중앙일보) 등의 기사를 쓸 정도였다.

지난 18일 오후 그와 마주 앉았다. 서울 강남의 수륜법률사무소였다('수륜'은 자신과 함께 사무실을 연 동료변호사의 고향 이름이라고 한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어투는 변화가 없었다. 표정은 진지했고, 답변은 명쾌했다. FTA와 무관한 듯한 개인적인 질문에 더 고민(?)스러워했다.

책상 위에 올려진 한-EU FTA 협정문은 겉표지부터 해어져 있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 내용 곳곳엔 여러 형광색 표시와 동그라미, 메모가 적혀 있었다. 마치 예전 고3 시절 교과서를 보는 듯했다. "협정문이 무슨 고3 수험서 같다"고 하자, 겸연쩍어 했다. 그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 최근 한-EU FTA 한글본 협정문 번역 오류 문제를 지적하면서, 보수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머리를 만지면서) 글쎄. 제가 뭘 잘했다기보다, 정부가 중요한 FTA를 너무 준비 없이 했던 것이다."

이어 곧장 그는 기자의 질문부터 바로잡았다. "번역 오류가 아니라 불일치"라는 것이다. 그는 "오류라는 말은 영문본은 맞고, 한글본은 틀리다는 것"이라며 "이는 법률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영문본과 한글본의 불일치, 협정문은 변호사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워"

▲ ⓒ 유성호

- 법률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란 말은?
"한-EU FTA 15장에 한글본이든 영문본이든 둘 다 정본(正本)이라고 돼 있다. 이번 논란은 영문본과 한글본이 서로 다르게 표기돼서 생긴 문제일 뿐이다."

- 일부에선 영문 협정문이 우선인 것처럼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마치 영문본이 진짜라는 시각 자체가 영어패권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송 변호사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는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단순한 영어 단어 번역 문제가 아니라 한글을 기반으로 한 법률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한글을 기반으로 생활을 하죠. 지금 추진 중인 FTA는 발효되면 법적 효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마치 영문본이 진짜고, 한글본이 장식용처럼 돼 있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가겠어요? 이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수 있지요."

이어 그는 책상 위에 놓여진 협정문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변호사인 나도 이 협정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변호사는 "수천 페이지에 걸쳐서 국민들의 일상생활 전반을 뒤흔드는 법 내용을 이렇게 어렵게 번역해 놨다"고 말했다.

- 외교부는 최대한 영문표현을 살려서 번역했다고 하는데.
"(곧장) 헌법재판소는 일반 시민이나 기업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법은 법이라 할 수 없다는 판례를 내놓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다."

- 외교부에서 번역 개선책을 내놨다. 내부 번역 시스템을 개선하고, 외부인사에게 검토를 받겠다고 했는데.
"일단 다행이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도 곧 (한-EU FTA) 협정문의 불일치 사례를 모아서 외교부에 접수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사례가 들어간다. 이번엔 제대로 된 한글본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한-EU FTA 발효되면, 국회서 통과한 유통-상생법 폐기될 처지"

- 솔직히 FTA를 취재하면서도 온갖 어려운 용어로 힘든 적이 많았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일반 시민이나 기업들도 잘 모르고, 이를 알려야 할 언론들도 잘 알 수 없는 것을 왜 만드느냐는 것이다."

- FTA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을 위한 법일 뿐이다. 지금 추진 중인 FTA는 거의 영미법 체계에 따른 것들이다. EU나 미국 등 대기업 쪽 사람들이나, 국내 일부 대기업과 관료들..."

- 여하튼, 한-EU FTA가 4월 국회로 넘어가긴 했는데.
"지금 현재 상태로선 (국회 비준은) 안 된다."

그는 딱 잘라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 너무 많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법까지 만들었던 골목상권 보호문제. 대형 슈퍼마켓의 잇따른 지역상권 진출로 중소 상인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자, 이른바 유통법과 상생법을 만들었다.

- 작년에 이들 법을 만들면서, 한-EU FTA 협정문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나.
"국회에 제출된 협정문은 유통-상생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대로 통과되면 EU 27개 나라의 유통자본이 아무런 제한 없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협정문을 펼쳐 보이면서) '서비스 양허표'의 도매, 소매, 프랜차이즈 유통업 항목에다 유통법과 상생법에 따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반영하지 않았다. 이대로 국회가 비준 동의하면, 국회 스스로 유통법과 상생법을 폐기시키는 꼴이 된다."

송 변호사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다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게다가 협정문 7조 9항을 보면, 한국 유통업에 진입하고자 하는 단계의 유럽 투자자까지도 보호해주도록 돼 있어요.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협정보다 더 나아간 거예요. 대기업의 대형 슈퍼를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히 지켜주는 겁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서울의 길음시장이든, 돈암시장이든, 재래시장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들 중소상인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결국 죽으란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U 최대 수출품목인 어묵도 사실상 수출 봉쇄"

▲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3일 김성환 외교장관이 국회에서 '한EU FTA가 7월 1일 발효하도록 돼 있다'고 발언했지만 이런 합의는 국제법적으로도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며 지적했다. ⓒ 유성호


송 변호사는 이어 얼마 전 국내 한 대형 수산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들과 관련된 어묵 수출 내용 등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2009년 10월 정부가 내놓은 한-EU FTA 상세설명자료를 보였다. 그리고 협정문도 함께 펼쳤다.

-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EU로 가장 많이 수출하는 품목이 연육조제품이다.
"(끄덕이며) 그렇다. 쉬운 말로 생선살이나 어묵, 게맛살 등이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1년에 전체 수산물을 8500만 불 어치를 수출했다. 이 가운데 어묵이 1450만 불(약 16%)이다. 1년에 수출이 많을 땐 5만 톤이나 된다고 한다."

- 그런데?
"우리는 생선살 원재료를 거의 다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유럽연합 가운데 리투아니아가 있는데, 이 나라는 어묵 생산이 매우 높다. 현재 (EU가) 어묵에 관세 20%를 붙이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리투아니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 협정문에 어떻게 규정돼 있는가.
"외국 생선살 재료를 쓰게 되면 한국산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한국에 너무 불리하니까, (다시 페이지를 넘기며) 부속서에 예외규정이 나온다."

- 일일이 찾아보기가 어렵게 돼 있다.
"이게 무슨 암호도 아니고. 예외규정을 보면 '명태 생선살'로 주원료를 정해놨다. 명태 생선살은 가장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명태 생선살로 (어묵을) 만들어도, 최대 3500톤만 한국산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두고, 설명 자료에서 "일정조건하에서 원산지 기준 면제물량을 확보"라고 적었다. 송 변호사가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마셨다. 그리곤 그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진다.

"이 문장만 보고는 마치 우리가 얻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최대 수출품목이던 연육의 수출이 사실상 봉쇄된 것이죠."

"헌법질서 흔들어가며 졸속추진하는 큰 이유는 한미FTA 때문"

- 수산회사쪽 반응은 어땠나.
"그쪽도 이 정도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당황스럽다고..."

- 이 정도면 정부에서도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전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더라. 오죽했으면, 나에게 협정문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겠는가."

송 변호사는 이어 "이렇게 중요한 것을 통상장관 개인이 구두로 (협정문) 발효시기까지 합의해 놓고, 우리 국회에 비준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가 속해있는 민변은 '한-EU FTA 7월 발효' 논란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해 놓은 상태다.

- 한-EU FTA의 7월 발효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는데.
"지난 3일 김성환 외교장관이 국회에서 '한-EU FTA가 7월 1일 발효하도록 돼 있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 시기를 통상관료들이 구두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런 합의는 국제법적으로도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 헌법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데.
"헌법에는 외국과의 조약에서 국회의 조약심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국회가 충분히 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구두합의는 이같은 헌법을 어긴 것이다."

▲ ⓒ 유성호

- 왜 7월 1일이라는 날짜가 나왔을까.
"(잠시 생각하며) 구체적인 날짜까지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다만,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EU와 FTA를 진행시키려는 이유는 한미FTA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옆방에서 한미FTA 협정문도 들고 나왔다. 그의 설명이다.

"만약 정부 생각대로 7월에 EU와 FTA가 발효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엄밀하게 미국 기업들이 난리가 나겠지요. 예를 들어 자동차만 보더라도, 유럽산 자동차에 8% 관세 매기던 것이 없어지면 국내 미국산 자동차는 가격 경쟁이 더 안되지요. 이뿐 아니죠. 유럽산 쇠고기, 냉동 삼겹살에는 각각 40%, 25% 관세인데, 이것이 사라진다고 보세요."

송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미국 업계는 미 의회에 한미FTA 비준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미 의회가 업계 요구대로 한미FTA 비준을 처리하면, 우리정부 역시 국회에 비준안 처리를 밀어붙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 시간은 이미 2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이야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번 협정문 번역 불일치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며 "헌법의 기본질서까지 흔들어가면서, 졸속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결국 한미FTA의 질서를 하루빨리 출발시키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FTA 자체를 반대하는가"라고. 그의 답변은 이날 사무실을 벗어나, 이메일과 추가적인 전화인터뷰까지 이어졌다.

"현재의 한-EU, 한미 FTA에 대해선 반대하죠. 이 두 개의 협정문은 단순한 대형 법전 두 개가 만들어지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 사회와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옵니다. 시민들의 사소한 안전규정 하나 손대는 것부터 미국이나 유럽의 거대기업들과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실상 기업이 국가를 규제하는 겁니다. 더불어 우리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초라해질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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