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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도 안 통하면 도대체 어디에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원 수십 명 농성 중 경찰 연행... 사회 관심도 멀어져

등록|2011.03.24 18:18 수정|2011.03.24 20:41
법원이 잇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대기업의 하청노동자 사용자 인정' 판결을 내렸지만 이 판결이 현실에서는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같은 판결은 수년간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며 직접 법에 호소한 비정규직의 인내 속에서 얻어진 결과라 판결의 무력화를 대하는 비정규직들의 비애는 더욱 크다.

특히 이같은 법원 판결 무력화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일번지로 인식되는 울산에서 일어난 일로, 판결 후 달라질 상황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전국의 비정규직들에게 전파되는 자괴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판결 무시하는 대기업, 비정규직에겐 절망으로

울산을 노동자의 도시라고 부르는 건 지난 1987년 촉발된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가 울산이라는 데 있다. 또한 조선과 자동차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국내 최대 사업장과 최다 노동자를 보유한 지역이 울산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울산에서는 지난해 말, 전국 비정규직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의 동정적 지지나 혹은 동조 노숙농성 등을 불러온 큰 사건이 발생했다. 25일간의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 점거 파업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25일간 공장을 세우며 파업을 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 3부가 수년간 고심 끝에 내린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해고된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 최병승 조합원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에 대해 "2년 넘게 현대차에서 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지난 2008년 2월 12일 서울고등법원이 내린 회사 측의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 결정을 내린 것으로 수년간의 진통 끝에 나온 것이었다. 이후 비정규직노조는 회사 측에 교섭을 요구하며 연일 집회를 이어갔다.

여기다 4개월 후인 그해 11월 12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2부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로 일하다 2003년 해고된 김준규 조합원 등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조합원은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또 다시 내렸다.

이 판결이 나온 뒤 3일 뒤인 11월 15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25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시작한 건 왜일까. 회사 측이 법원 판결에도 아랑곳않고 오히려 비정규직 강조 노조원이 있는 하청업체 한 곳을 시범적으로 폐업하면서다.

잇따른 법원의 판결에도 전혀 해결의 기미가 없자 비정규직들이 선택한 것은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후 얻은 결과는 해고와 정직 등 수백 명의 중징계와 노조지도부의 구속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이같은 현실에서 지난 3월 23일 울산공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던 중 조합원 29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처지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놓여 있다.

여기다 이들이 더 두려운 것은 사회적인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법원의 정규직화 판결에도 해고자와 구속자만 늘어나자 현대차비정규직 노조가 울산공장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판결이 효시


현대차 비정규직을 고무시킨 건 이 두 번의 판결에 앞서 4개월 전 인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에게 내련진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2010년 3월 25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낸 소송에서 "원청 사업주인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나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합과 관계에서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하는 사용자 책임인정 판결을 내렸다.

해고와 구속 등을 겪어 오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못지 않게 흥분한 것은 동변상련을 겪고 있던 현대차 비정규직들이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역시 법원 판결에 대해 개선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집회나 시위를 하던 하청노동자들은 해고되는 결과만 초래됐다.

현대중공업 하청노조와 민주노총이 지난 23일 배포한 그동안의 연혁에 따르면 지난 2003년 8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가 설립됐지만 노조 설립 직후 노조 발기인들은 해고됐다.

이 해고에 대해 하청노동자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2006년 4월 "2003년 노조설립 당시 발생했던 노조발기인 소속 업체들에 대한 폐업조치가 부당노동행위이며,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들의 실질 사용주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집회 등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해고됐다.

현재 현대차 비정규직은 울산 아산 전주공장 합해 9천여 명에 달하며 현대중공업은 2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이 2천여 명인데 반해 현대중공업 하청노조원은 수백 명, 그것도 비공개에 국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작업상의 특성도 있겠지만,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 관리로 노조에 가입하면 취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3일 "노조 가입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이 안 된다"며 민주노총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하아무개씨는 24일 노동관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 우리도 최소한의 싸움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부러웠고 우리가 함께 못하니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노동자들을 향해 "자기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당장 노조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며 "월급만 갖다주는 아버지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책무에도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법원 판결에도 오히려 해고자나 구속자만 발생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마저 멀어지고 있어 울산지역 비정규직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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