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과 하청업체 구분법을 아시나요
현대자동차 납품업체 들어가 일 해 보니
▲ 2차 업체 다닌 지 3일 만에엄지 손가락 쪽 손목 부근이 동전 크기 만큼 부풀어 오르면서 통증이 심했습니다. 2주 된 지금도 손이 부어 오르고 통증이 있습니다. ⓒ 변창기
현대자동차에서 부당하게 정리해고 당한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빚이 100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최아무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에 대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승이 났고, 2011년 2월 10일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불법파견 문제가 서울고법에서도 승소로 끝났습니다. 때문에 제 경우도 잘 해결돼 다시 현대차 정규직으로 복직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비정규직 노조 활동에 함께 참여해 왔습니다.
조만간 잘 해결되리란 기대는 날이 지날수록 사그라 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대신 비정규직 노조 파괴 공작에 열을 올렸습니다. 해고, 정직, 감봉과 같은 징계에 해당된 노조원만도 6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또 대법원에 재상고함과 동시에 파견법 6조 3항 고용의제가 채용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순진한 기대 심리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 갔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정이 빚더미에 올라 앉는 일을 그냥 두고만 볼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계비를 벌면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대한 1인 시위를 병행해 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직업 안내소에 등록도 해놓고 무료신문도 뒤적거리며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나이에 걸렸습니다. 40대 후반이라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 않았습니다. 평생 단순 작업만 해오다 보니 복잡한 작업은 잘 못했고 왼손잡이라 모든 작업 방식이 오른손 위주로 되어 있어서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또 동작과 눈치가 빨라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동작도 느린 편이고 눈치도 없는 게 흠이었습니다. 제 단점을 감안해 '초보자 구함'이나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가족의 생계비 마련을 위해 그동안 몇 군데서 일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곳은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였는데, 그곳에서 '신호수' 일을 했습니다. 저에겐 모든 게 생소했습니다. 40여 종류나 되는 손 신호를 외워야 했는데 외우기와 숫자는 제가 제일 자신없어하는 분야였습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 뭐라도 해야 겠기에 한 번 해보기로 했으나 역시나 저에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150톤 물량을 실을 수 있는 트랜스포터라는 중장비의 신호수를 했는데 운전자는 신호수의 수신호를 보고 운전합니다.
정규직 한 사람이 물량 이동 지시를 했습니다. "신호수는 예술이다" "잘못하면 큰 사고난다"는 말을 운전사가 자주 했습니다. 못하니까 잘하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신호수 교육시간엔 신호수가 잘못해서 사망사고가 난 경우도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먹고는 살아야겠지만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모두 밖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해야 했습니다. 저는 상황상황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2개월 반 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적당한 노동강도로 무리하지 않게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은 오늘만 하는 게 아니고 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적당한 노동, 적당한 휴식이 필수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영 딴판으로 흘러 갔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또다른 업체에 들어 갔습니다. 이번엔 가공반이었고 저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5kg 정도 나가는 팔뚝만한 크기의 작업도구로 쇠 모서리를 갈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얼마나 서둘러 일을 시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계를 돌리면 온몸이 기계 진동으로 떨렸습니다. 초보에다 작업도 느려서 다른 작업자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람 속도를 기계 속도에 맞추자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손이 부어 오르고 팔이 부어 올랐습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돼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무료신문과 인터넷을 검색하며 일자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무료신문에서 '상주직원 모집'이라는 생소한 문구를 보았습니다.
'업체는 경주에 있음, 현대차 납품업체임, 현대차 울산공장 내 상주직원 모집함.'
연락처로 '48살 남자도 되느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된다고 했습니다. 경주에 있는 부품업체에서 배달된 부품을 울산 현대차 공장 조립라인에 배달해 주는 업무였습니다.
"우린 보너스도 없고 월급만 130만 원 주는데 괜찮겠어요?"
저는 가족 생계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입장이라 좋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 업체에 취업이 되면 저는 3차 업체 직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경험해 보니 상여금으로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 3차 하청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현대차 정규직은 750% 상여금을 받고 있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나 외주 1차 하청업체는 600% 정도 받고, 2차 하청업체는 300% 받고 있었습니다. 상여금 일체 없이 월급만 준다는 것은 3차 하청업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차 내 상주직원 모집업자는 "서류를 준비해 현대차 공장 앞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시간 맞춰 찾아 갔으나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쓰겠다는데 현대차 경비대가 출입을 못하게 했습니다. 보통은 주민증을 맡기고 간단히 등록서에 작성하면 출입이 가능하지만 저는 아예 출입 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황당했지만 그들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어 그냥 물러 났습니다.
다시 직장을 알아보다 이번엔 인터넷 직업안내소를 통해 취업을 했습니다. 들어가고 보니 그 업체는 현대차 1차 하청업체였는데, 그 속에 다시 하청업체가 있었으니 2차 하청업체였습니다.
"우리 회사는 00기업의 업체입니다. 상여금은 300%고 12개월로 나누어 줍니다. 시급은 4320원입니다"
2차 하청업체 사무실은 밖에 있었고 저를 일할 공장으로 대려 갔습니다. 그 공장 두 곳 부서장에게 면접을 했습니다. 면접에 통과되고 출근을 시작한 게 3월 14일 월요일부터였습니다.
"우리는 별도로 쉬는 시간 없어요. 일하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하고 그래요."
처음엔 그 말이 이해가 안 갔으나 다니다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그 회사는 원청-하청 구분을 출근카드로 했습니다. 원청직원은 전자식 바코드로 출근과 퇴근 관리를 했고 하청업체는 70년대식 두꺼운 종이를 집어 넣으면 시간이 찍히는 방식이었습니다. 옷도 소모품도 모두 원청에서 지급했고 작업지시도 원청에서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7시 50분이면 어김없이 70년대식 집단체조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먼저 들어 온 한사람이 비닐에다 부품을 10kg에서 15kg 되게 담아주면 그것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려 박스에 담아 쌓는 일을 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기본작업을 하고 오후 5시부터 30분 동안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잔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동안 10kg 넘는 무게를 1000번 정도 반복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 업체에 들어가 일한 지 3일 만에 왼손 엄지손가락 쪽 팔목이 부어 오르고 엄청 아파왔습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지만 계속되는 반복작업에 통증과 부어오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이 바쁘다고 잔업과 특근을 반강제로 시켰습니다. 근로기준법도 있고 노동법도 있는데 그곳엔 노동조합이 없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해 가신 지 40주기라고 합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분신 항거했지만 아직도 노조 없이 회사 맘대로 작업을 진행시키는 업체가 있다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여긴 주 5일제 시행후 월차가 없어요. 평일 안 나오면 무조건 결근처리돼요. 몸 아프면 차라리 출근했다가 오후에 조퇴하는게 좋아요. 결근하면 주차 2개가 다 빠져요. 1년후 년차가 나오는데 그러면 평일날도 하루 년차 써서 쉴 수 있어요."
▲ 하루 낀 장갑비닐을 만지며 작업하는데도 기름투성이가 되었고 코팅이 다 닳아 버렸다. ⓒ 변창기
2차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와 일한 지 5개월 된 분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곳에는 또 노동자들의 쉼터가 따로 없었습니다. 큰 샤워시설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 탈의실을 쉼터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작업복도 그곳에서 갈아입고 점심때 모두 그곳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작업강도가 얼마나 높으면 점심시간 모두 누워 잠들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샤워장에서 보니 대부분 노동자들 등에 부항 뜬 자국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오래 일한 사람들 모두 골병 안든 사람들이 없어요. 어깨와 등, 허리가 많이 아파요. 하도 아파서 회사에 말했더니 알아서 하라 했어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그냥 일하고 있어요."
다닌 지 10년 됐다는 원청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파스 달라고 하면 현장 관리자가 즉시 가져다 주었습니다. 작업자들은 일하다 말고 여기저기서 파스 바르느라 윗옷을 벗었습니다. 가장 많이 아파하는 곳은 역시 팔과 팔목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목과 어깨, 등, 허리, 다리 순으로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곳 노동자는 그렇게 골병에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산재처리는 엄두도 못내고 공상처리 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현장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아픈 것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 돼."
현대자동차는 제조업이고 제조업은 파견업종을 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현대차를 불법파견업체로 판결한 것입니다. 현대차와 연결된 1차 부품업체인 그곳도 제조업체이고 저는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파견노동자로 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다를바 없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어 간접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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