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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독자파' 완승, 진보대통합 적신호?

당대회, 북핵·3대세습 '반대'에 '연립정부론' 마저 부결

등록|2011.03.28 09:21 수정|2011.03.28 09:21

▲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3기 진보신당 지도부와 4.27 재보선 출마자들이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2011년 정기 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경태


'독자파'의 완승.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진보신당 2011년 정기 당대회의 결론이다. 이로써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출범 이후 약 3개월 간 진행됐던 통합진보정당 건설 논의에 '적신호'가 켜졌다.

진보신당은 이날 당 역량 강화 발전·새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당 집행부가 제출한 새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안에 대해 각 안건마다 수정안이 제출·가결됐다.

민주노동당과 '통합' 과정에서 민감하게 대두될 '북한 문제'에 대해선 보다 명확하게 전제가 마련됐다. 진보신당 대의원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은 북한의 핵 개발 문제, 3대 세습 문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원안을 "북한의 핵 개발 문제, 3대 세습에 반대하며"라고 수정했다.

일부 대의원들이 "북한의 핵 개발, 3대 세습 반대" 수정안에 대해 '민노당의 수용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표결 결과는 명확했다. 재석한 대의원 345명 중 211명이 수정안에 찬성했다.

또 "2011년 9월 전후 시기까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진보정치세력 간에 진보대연합을 중심으로 2012년 총선을 함께 치러낸다"는 원안은 "2011년 9월 전후 시기까지 모든 진보정치세력들이 참여하는 새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능할 경우, 합의하는 세력들과 함께 진보정당을 건설한다"고 수정됐다.

현재의 진보대통합 논의를 역진 불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수정안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속내'는 민노당에 대한 불신에 가깝다. 민노당과 '북한 문제' 등으로 합의가 불가능할 땐 진보진영 통합 방향을 사회당 등 좀 더 '왼쪽'으로 확장하겠단 얘기다.

반대 의사를 표명한 대의원들도 이 같은 점을 우려했다. 한 대의원은 "민노당이 동의하는데 사회당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나온 수정안이 아닐 것"이라며 "민노당의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또 다른 대의원은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를 꾸려놓고 잠정적 실패를 전제로 한 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당의 공신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표결 결과 진보신당 대의원들은 수정안에 손을 들어줬다. 재석 대의원 359명 중 193명이 이 수정안에 동의했다.

"연립정부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에 다름 아니다"

최근 진보진영을 향해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국민참여당에 대한 입장도 명쾌하게 정리됐다. 당내 '통합파'는 이날 국민참여당 등이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 등에 대해 '조직적 성찰'을 할 것을 요구하는 문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냈지만 표결(재석 350명 찬성 61명) 끝에 부결됐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갔다. 당내 '독자파'는 심상정 전 대표가 제기했던 '연립정부' 방안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야권 단일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제3지대 백지신당론', '빅텐트론' 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에 다름 아니다"는 원안에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연립정부론'"을 포함시켰다. 또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다"고 정리했다.

일부 대의원들이 "총·대선을 앞두고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을 소지가 있다", "양당제 구조의 단일정당론과 선거전술로서의 '연립정부론'은 그 위상이 다르다"고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표결 결과 60%의 찬성율(재석 374명 찬성 228명)로 수정안이 가결됐다.

진보대통합을 위한 집행부의 추진력도 일부 상실됐다. 대의원들은 전국위원회 산하에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당 대표가 위원장을 포함해 위원들을 임면하여 총 7인 내외로 구성"하도록 한 원안을 고쳐 "당 대표가 임면한 위원장은 전국위원회가 인준"하도록 수정했다.

또 "추진위원회가 (새 진보정당 건설)추진 과정 및 향후 계획을 전국위원회에 회기마다 보고하여 승인 받는다"고 규정, 진보대통합 실무 협상기구인 추진위를 전국위원회에 확실히 귀속시켰다.

'진보의 재구성' 실패 선언한 조승수 서한이 역풍 불렀다?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진보진영 복지 대토론회에 참석해 토론단상으로 나오고 있다. ⓒ 유성호


이 같은 당대회 결과는 최근 '적극적 통합'으로 선회한 조승수 대표 등에 대한 반발로 읽히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 25일 공개서한을 통해 "6월 내 진보통합 논의를 마무리 짓자"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늦어도 가을은 되야 가능하다"던 종전의 입장을 바꾼 셈.

무엇보다 조 대표는 이 글에서 "우리는 과거의 낡은 진보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혁신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창당 목표인 '진보의 재구성'의 실패를 '선언'했다.

그는 또 "우리 자신의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과거 우리가 낡은 진보로 규정했던 세력들이 모두 함께 진보의 혁신과 재구성을 함께 할 수 있는 상황과 계기를 마련했다"며 사실상 민노당과 함께 갈 것임을 밝혔다.

조 대표는 이날 당 대회에서도 이 같은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진보신당이 3년 전 얼어 죽을 각오로 창당했던 것은 우리만의 축제를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혁신으로 진보정치의 혁신을 이루고 한국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새로운 결의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의 답변은 기대와 달랐다. 한 대의원은 본격적인 안건 논의 전부터 "조 대표가 6월 임시 당대회까지 얘기하는 등 민노당과의 통합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신을 표했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의 위원장 임면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대의원은 "대표가 임면한 위원장을 전국위원회에서 인준토록 하는 것은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으로 읽힌다"며 반대의사를 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대의원은 "대표단에 대한 신뢰 문제가 아니라 같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라며 "조 대표가 당원을 못 믿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대의원 독자파 60%... 상반기 내 진보대통합 성과 기대하기 어렵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조 대표의 서한이 역풍을 불고 온 것은 사실"이라며 "독자파는 사실 전국위원회에서 채택된 원안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조 대표의 공개서한을 받고 이틀 만에 수정안들을 준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 대표가 통합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한 것 같다"며 "메시지를 일찍부터 전달하던가, 아니면 전달 이후 대의원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평가했다.

진보신당의 '간판'인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의 입지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심 전 대표는 6·2 지방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결정에 대한 당원들의 '비토'에 이어, '연립정부론'이 당 대회에서 '민주당 수혈론'으로 규정되면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제한됐다.

당초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유력시됐던 노회찬 전 대표의 사정도 마찬가지. 당대회 결정으로 인해 추진위원회가 통합 논의 과정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니게 돼 이제 누가 위원장을 맡더라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는 "누가 위원장을 맡으려고 할지 걱정되는 상황이긴 하다"며 "이번 당대회를 통해 독자파가 통합파에 비해 6대 4 정도로 우세하단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당법상 대의원대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당의 해산이 가능하다. 결국 이날 당대회로 드러난 진보신당 대의원의 성향으로 볼 때 사실상 상반기 내 통합의 실질적 성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노당은 오는 4월 2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진보정치대통합 방안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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