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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기사, 태국에선 10초도 안 돼 어김없이 나타난다

[3인 가족 말레이반도 여행기] 개의 나라 태국, 고양이의 나라 말레이시아 5

등록|2011.03.28 20:53 수정|2011.03.28 20:53
오후에는 북부터미널에 가서 아유타야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현지인보다 푸른 눈의 배낭여행객들이 더 많다.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

태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성했던 시절이 바로 아유타야 왕국(1351~1767)였다. 아유타야 왕국이 15세기 초 크메르의 앙코르 왕국을 일거에 쑥대밭 만들었다면 그 위용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아유타야 제국도 버마의 몽족에게 초토화 되고, 그 몽족마저 현재엔 존재감을 찾을 수가 없으니 긴 역사의 호흡으로 보면 나라의 흥망 역시 하루살이처럼 무상하다. 아유타야 왕국이 흔적 없이 사라지자 그 후예들이 남쪽에서 옮겨 라타나코신 왕조(1767~1932)를 세우고 새로 도시를 세웠으니, 그곳이 바로 바로 방콕이다.

영화로웠던 아유타야제국의 수도였으니 만큼 도시 자체가 유적지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우리나라로치면 경주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시내에 들어서자 다 왔다고 해서 내리고 보니 길거리였다. 터미널 건물이 있으리라고 예상했었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잘못 내린 줄 알고 당황했다. 내가 찾는 게스트하우스는 버스터미널을 끼고 돌아 우측으로 이백미터 어쩌고 하며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미널 건물이 없는 것이다. 버스는 어디론가 출발했다. 나는 혹시 간이정류장에 미리 내렸는가 싶어 맞은 편 편의점에 들어가 계산대 아가씨에게 버스터미널이 맞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다른 배낭객들을 보니, 그들은 그러려니 하고 가이드북을 들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때 등장하는 툭툭기사. 태국 어느 도시에서나 외국인이 서성이면 십초도 안 돼 어김없이 툭툭이 나타난다. 삼년 전도 그렇고 작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툭툭기사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나는 툭툭이에게 경계심이 많은 편이다. 그들은 조금만 틈만 보이면 바가지를 씌우고 엉뚱한 데 데려놓기 일쑤다. 더구나 이번에는 가족까지 있으니 나는 경계심의 강도를 한층 올렸다. 까놓고 얘기하면 가족의 안위에 앞서 아내와 딸 앞에서 속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컷 본능이 더 강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유타야의 툭툭삼륜차에 뒷칸을 승객이 탈 수 있도록 좌석이 있다. ⓒ 황인규


십년 전 필리핀에서 보트를 타고 어느 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배삯을 지불하는데 기사가 돈을 더 요구했다. 그런데 단순히 팁을 더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진지하고도 격렬하게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처럼 굴었다. 일행 중의 A가 나서서 추가 요금은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했다. 기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A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상승작용 일으키며 점점 더 높아졌고 인상은 더욱 구겨졌다. A는 당시 마닐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필리핀을 잘 알고 현지인도 잘 다룬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일행을 안내하는 차원에서 맨 앞에 나서곤 했다. 나머지 일행은 A가 알아서 뒤처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선착장을 먼저 빠져나갔다.

그런데 A와 기사의 말다툼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내가 돌아보는 순간 기사가 칼을 집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되돌아 가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기사가 쥔 칼은 살상용이라기보다는 선반에 있던 요리용 칼이었다. 그래도 칼이란 사용하는 사람 맘에 따라 살상이 될 수도 있고 요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 끼어들어 사태를 모면할 수 있게 되자 A도 기사도 한풀 꺾였다. 나는 기사에게 얼마를 요구하냐고, 묻고 그가 원하는 돈을 줬다. 기사는 돈을 받고도 자기는 받을 걸 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A를 데리고 나왔다. A는 씩씩거렸다.

사태를 되짚어 보면 여행사에서 배를 렌트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된 모양였다. 여행사에서는 기사의 임금을 현장에서 지불해야 된다고 한 것을 우리는 렌트비에 기사의 임금도 포함된 것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쩜 그 기사가 남달리 팁에 집착해 과격하게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당시의 상황에서 그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이국인들과 맞닥뜨리는 상황에선 언제든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설령 나의 생각이 확고하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선 양보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 상황을 게임이나 대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결 그 자체에 집착한다. 옳고 그르다거나 어느 쪽이 상황을 개선하느냐의 문제보다 이기고 지는 문제로 생각한다. 승패가 갈리는 경쟁에선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승부의 세계에선 이해나 납득은 불필요한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본능처럼 내면화된 한국인의 습성이다. 사실 그 기사에게 준 돈은 우리에겐 라면 한 그릇 값의 간식비에 불과했다. 기사에겐 절박한 하루치 노동의 대가였지만.

그날 저녁 남국의 별들이 초롱초롱 수놓은 아름다운 밤바다에서 A는 나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권총을 구해야겠어요."

칼을 꺼내든 상대에게 아무런 무기가 없는 이쪽에선 움찔할 수밖에 없고, 그 상황에서 내가 와 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을 것이다. 흥분이 미처 가라앉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황에서 벗어난지 꽤 시간이 흘렀고 더 이상의 위협도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그는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낮에도 얘기했던 커뮤니케이션의 착각 가능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가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는 다음에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의 사건을 경험 삼아 상황을 달리 해석하기보다는 더욱 강력한 무기로 상대를 압도할 생각만 하는 것이다. 과거의 패배를 곱씹으며. 사회 전체가 구조화된 경쟁에 의해 지탱되고 그 속에서 다져진 한 인간의 심리는 이토록 피폐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A는 요즘 말로 최고의 스펙만 쌓아 온 엘리트였다.

툭툭기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나도 모르게 승부근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절대 이 툭툭기사가 하자는 대로 안 해야지. 이상하게도 내가 선택하는 기사에게는 반감이 덜한데 기사가 먼저 나를 선택해 접근해 볼 땐 한껏 경계한다. 따지고 보면 어느 쪽이 먼저 접근한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기사가 바가지 씌우지 말란 법은 없고, 먼저 접근한 기사가 교활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먼저 접근하는 기사에겐 경계심이 더 한다.

흥정을 하는 툭툭 기사사실 이분은 본문에 나오는 기사가 아니다. ⓒ 황인규


기사를 쳐다보니 인상이 험하다. 시커먼 피부에 전체적으로 울퉁불퉁하다.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툭툭은 안 보인다. 일단 협상에 들어갔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SK게스트하우스'를 말하자, 기사가 대뜸 그곳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건 지극히 고전적인 방법이자 아주 유치한 방법 아닌가. 어딘가를 가자고 하면 대뜸 그 집이 수리 중이거나 문을 닫았으니 가봤자 소용없다. 내가 더 좋은 곳을 소개해 주겠다. 오래 갈 것도 없다. 작년에 프놈펜에서 당한 적이 있다. 공항에서 툭툭을 타자 내가 약도를 건네며 가달라는 게스트하우스는 분명 문을 닫았다. 나는 하는 수없이 기사가 데려다 준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방에 짐을 넣고 뭘 좀 물어보려 카운터에 다시 가니 기사가 커미션을 받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기분 좋은 장면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분명히 게스트하우스는 문이 닫혀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버젓이 영업 중이지 않은가. 

내가 믿지 않고 다른 기사를 찾을 기색을 보이자 기사가 '오케이' 하며 타라고 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갔다. 골목골목을 빠져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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