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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 글짓기대회 수상작 글 담은 문집 배포

등록|2011.03.30 17:46 수정|2011.03.30 18:20

▲ 2월 22일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열린 '죽도및북방영토반환요구운동현민대회'에서 1900년 초반 울릉도 개척민에게 시상하고 있다. ⓒ 김현중


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민회관에서 독도・북방영토반환요구운동현민대회(竹島・北方領土返還要求運動県民大会)라는 이름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2010년 일본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케시마(독도) 및 영토문제'라는 주제의 글짓기대회에서 시마네현 지사(한국으로 말하면 도지사)상을 비롯 시마네현 민회의회장상, 시마네현 교육장상 등을 받은 6명과 입선을 한 10명 등 총 16명의 수상자 글과 1월 28일 있었던 시상식 내용을 담은 문집을 배포했다.

총 256점의 응모작을 접수한 해당 글짓기대회는 2010년
처음 열렸는데 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땅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측은 '현' 즉, 한국으로 따지자면 '도'에 해당하는 관에서 주도적으로 대회를 열고 있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말, 2월 22일 해당 토론회에 참석해 문집을 받은 김현중 독도수호대 운영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이희두 원광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에게 글짓기 내용 번역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 사이 일본 지진이 발생해 기사 작성을 잠시 보류했다. 그러나 이런 기다림이 무색하게 30일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자국 중학교 교과서 검정 승인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관에서 주도한 글짓기대회 실시 등과 함께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마네현 글짓기 대회 수상한 일본 학생...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일본 땅"

문집시상자들의 모습과 지사상을 받고 있는 학생, 그리고 기사내용이 담겨 있다. ⓒ 스캔


그렇다면 글짓기 대회의 대상격인 지사상을 받은 일본 학생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애오키 시마(島) 설립의 사이고 중학교 3학년생인 카도와키 유우카양이 쓴 글을 이희두 원광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가 번역한 내용을 살펴보면, 글은 '내가 3학년 종합학습 시간에 시 공무원으로부터 독도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설명을 들었을 때, 솔직히 뭐가 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해당 학생은 이어 '그렇지만 독도를 반환받고 싶은 그런 기분을 절절하게 느꼈다'며 '그때의 절실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케시마(독도)는 우리들의 애오키 도리쵸에 속해 있는 섬,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적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경비대원을 두고, 건물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3대 원칙에 평화주의를 내걸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무척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표현했다.

이 학생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다케시마(독도)는 애오키의 섬이라고 믿고 있다'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케시마(독도) 문제를 이해하고 관심을 계속해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카도와키 유우카양은 '이런 나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만큼 다케시마(독도)에 대해 알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 애오키가 독도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끝맺었다.

다른 입상자들의 글 역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전제 하에 쓴 것이기에 내용이 비슷비슷하지만 지사상이라는 상징성에 의미를 두고 위 학생의 글 내용을 살펴보았다. 학생의 글에서 보았듯이 일본 공무원들이 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점을 알리고 교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몇 년 후 일본의 많은 학생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 인식하도록 해 향후 국제법원에서 재판이 열 경우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현중 독도수호대 운영위원은 "우리나라가 너무 조용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화 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며 "또한 일본 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땅임을 교육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너무나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사실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독도가 내 땅인데 무슨 상관이냐'라며 무관심하고 있을 때 일본은 계속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기에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독도는 한국땅임을 분명하게 알리는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다케시마(독도) 및 영토문제'라는 주제의 글짓기대회에서 지사상을 받은 카도와키 유우카양이 쓴 글 ⓒ 오명관

제목 : 독도(다케시마)문제

애오키 시마(島) 설립 사이고(西郷) 중학교 3학년 角脇優花(카도와키 유우카)

* 편의상 다케시마는 '독도'로 일한문제는 '한일문제'로 표기함.

독도(다케시마), 영토, 한일문제, 울릉도?

내가 3학년 종합학습 시간에 시공무원으로부터 독도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설명을 들었을 때, 솔직히 뭐가 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독도를 반환받고 싶은 그런 기분은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 때의 절실했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독도문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독도에 대한 생각을 깊히 가지게 되었다.

독도는 우리들의 고향과 애오키 도리쵸에 속해 있는 섬.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이미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한국과 이 문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1952년, 한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주권의 선언 라인(Line) 이른바 '이승만 라인'을 설치하여, 한국은 독도주변의 수산자원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독도문제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은 계속해서 독도에 경비대원을 상주시킴과 동시에, 축사와 감시소, 등대, 접안시설 등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독도를 놓고 한일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나는 한국의 일련의 행동들이 '제멋대로 식'이 아닌가란 생각에 참을 수 없었다. 서로 타협을 하여 결론을 내는 것이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본이 바라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경비대원을 두고, 건물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3대 원칙에 평화주의를 내걸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무척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일까? 나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도 생각도, 여러 부분이 우리 일본사람들과 일치하는 것이 많지 않다. 여기에서도 역시 영토문제의 복잡성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현대에서는 서로 교섭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독도문제는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들은 서로 타협함으로써 현대적이고 평화적인,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써 해결을 도출해야만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독도는 애오키의 섬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독도문제를 이해하고 영토문제의 복잡함을 받아들여 관심을 계속해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애오키 사람들 그 후는 독도 사람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들이 이 독도문제에 대해 알고 생각하는 사고로써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가까운 우리 애오키 사람들이 절대 독도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나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만큼 독도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 독도를 애오키가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익산시민뉴스,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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