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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미래는 남은 자들의 유서이다(12)

제1장7

등록|2011.03.31 11:46 수정|2011.03.31 11:46
4.
점령자들은, 그들이 영국점령기에 이주했던 동유럽의 아쉬케나지든, 오랜 기간 이베리아반도에서 살던 세파르딤이든 에티오피아의 팔라샤이든 최근 러시아에서 집단이주했든 광신적인 미국 출신이든 영국이든 프랑스든 아르헨티나든 몰다비아든 간에,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든, 그들의 할아버지가 러시아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든, 조상이 중세 마녀사냥의 희생자였든, 폴란드나 베니스 게토에서 태어난 조상을 열 명이나 두었든, 아니면 대대로 예루살렘에서 살았든 간에 모두 동일한 의지의 실행자들이다.

팔레스타인을 영구히 지배하는 것.

그들은 합세하여 우리 땅을 빼앗고 집을 부수며 오렌지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뽑고, 토마토와 가지를 시장에 팔거나 따먹지 못하도록 밭을 뒤집어엎는다. 또한 동일한 의지로 팔을 부러뜨리며 폭행하고 부러뜨린 다리 위로 차를 타고 넘어가며 고문을 일삼고,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모욕을 주어 우리의 영혼을 증오와 분노로 오염시키려 애쓴다.

한 명이 저항하면 가족까지 집단 처벌하여 폭행하며 체포하고, 그 수가 늘어나면 주민 전체를 살해하거나 추방하고 마을을 지도에서 영구히 지워버린다.

고문이 합법적으로 용인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신베트가 예루살렘에서 운영하는 조사실, 일명 러시아수용소에서 몸과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나는 테러리스트조직에 가입한'으로 시작되는 히브리어 자술서에 서명토록 하거나, 무작정 체포하여 무한정으로 구금하는 것도, 점령지에서 누구에게나 총을 쏘거나 아무 데나 폭발물을 설치하여 살상을 일삼는 것도 동일한 의지의 다른 모습이다. 땅 주인들을 쫓아내고 '주인 없는 땅'이라고 우기는 것.

단지 군인으로 정치인으로 의사로 기업가로 농부로 작가로 아내로 남편으로 부모로 학생으로 역할이 분담된 것이며, 그에 따라 강탈해 간 전리품들의 배분비율이 다를 뿐이다.

나블루스는 다시 한 번 파괴되었다.

붉은 석류꽃과 장미꽃 사이를 오가던 꿀벌의 기억도, 이층 창문의 투명한 사각 꽃병에 꽂힌 자스민과 카네이션 향기도, 어느 슬픈 가을 하늘의 보드라운 비 푸르른 약속들도1), 결혼식 전날 오후 정원의 레몬나무 아래에서 들었던 남편의 밀어도, 지중해로 넘어가는 태양이 남긴 진하고 투명한 남청색 하늘조차 에발 산 위에서 쏘아대는 포탄의 섬광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In sha'allah! 사피나는 탄식을 터뜨렸다. 택시에서 내리기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시가지 입구에서부터 부서진 건물들이 보이더니, 시내로 들어갈수록 더욱 심각했다.

정부청사, 경찰서, 학교, 사회단체 등 주요 관공서들은 거의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2), 파타운동3) 등 독립투쟁조직 사무실이 있는 건물들은 훨씬 심하게 파괴되었다. 미사일에 맞아 건물 중간이 뻥 뚫렸고, 폭발충격으로 균열된 건물들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졌다. 그 위로 사무집기들이 흉물스럽게 쏟아져서 내장을 드러낸 시신들처럼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침략군의 만행은 40인의 도적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비열했다. 불법무기를 찾거나 저항자들을 색출한다는 구실로 입주자들을 모두 건물 밖으로 나오게 한 후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돈이나 귀중품들이 있으면 남김없이 쓸어가거나 음식물들을 먹어치웠다. 값나가는 가구나 가전제품들은 대부분 엎어트리거나 부숴놓았다. 온갖 분탕질로도 모자라 철수할 때는 집안 곳곳에 오줌을 싸놓거나, 심지어 배변을 해놓는 일조차 있었다. 영역을 표시하는 개새끼들과 똑 같은 짓이었다. 

도시에 대한 전면 공격이 없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가지로 포탄들을 쏟아 붓거나, 불시에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들이 날아와 독립투쟁 지도자들을 향해 미사일을 쏘았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무자비한 공격의 목표가, 평화협상 재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우겼다.

협상을 위해 먼저 협상 상대자들부터 살해하는 것이 저들의 방식이었다. 팔레스타인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 아부 알리 무스타파, 하마스 에제디네 알 카삼여단의 지도자 베이커 함단과 카이스 이드완, 파타운동 알 아크사 여단 지도자 나세르 아와이스가 그렇게 폭사되었다.

샤론의 목표는 하나였다. 아라파트를 제거하고 팔레스타인을 직접 통치하는 것.

지난 20년 동안 아라파트를 죽이기 위해 레바논에서부터 쫓아다녔던 그였다. 아라파트를 제거하면, 살라미를 자르듯 점령지는 나눠먹기로 한 오슬로협정4)까지 무효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시기가 좋지 않았다. 지금 베이루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왕세자가 제안한 '아랍평화발의'를 의제로, 아랍정상회의가 진행 중이다.

주장은 간단했다. 이스라엘이 1967년에 빼앗은 골란고원과 시리아영토를 포함한 '모든5)' 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주권독립국가 수립을 수용할 경우, 모든 관계를 정상화하겠다. 그것은 유엔 안보리의 해묵은 결의안이기도 했다.

점령지 철수는 안보리결의안 242호, 338호이고, 쫓겨난 난민의 귀환권리 보장은 194호이다. 그렇지만 수십 년 동안 안보리 결의안을 상습적으로 위반했음에도 어떠한 제재도 받은 적이 없다.

아라파트 역시 당연한 참석자였다. 국제사회는 샤론에게 참석을 허가해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베이루트에서 아라파트를 꼭 만나고 싶다며 분위기를 띄었고, 유럽연합 중동대표도 커피 값은 자기가 내겠다며 호응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부시는 퉁명스럽게 조언했다. 니 꼴리는 대로 해. 죽이지만 말고. 정리 끝!

1)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어느 먼 가을의 보드라운 비> 중에서

2) 1979년경에 기존의 작은 규모의 정치조직들이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목표로 가자지구에서 창립되었다. 하마스와 성향은 비슷하나, 비밀결사체의 형태로 운영된다.

3) 아라파트, 파루크 알 카두미, 살라 칼리프, 할릴 이브라힘 알 와지르 등이 1959년경에 쿠웨이트에서 창립한 팔레스타인민족해방운동 조직. 정식 명칭은 알-하라카트 알-타흐리르 알-팔레스틴(al Harakat al Tahrir al Filastini)이며, 알-파타는 그 이니셜을 거꾸로 이어 만든 것이다. '시작', '정복'의 의미가 있다.

4) 1993년 9월 아라파트 PLO의장과 이스라엘의 이츠라크 라빈총리 사이에서 체결된 협정. 정식 명칭은, '잠정자치에 관한 제 원칙 선언'이다. 인티파다에 불안을 느낀 이스라엘 정부가 아라파트를 협상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성립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회담을 통해 협정을 성사시켜 '오슬로협정'이라고 불린다. 협정 체결로 아라파트와 라빈, 페레스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과도적 자치기간을 거쳐 1999년 5월까지 점령지에 대한 최종지위 협상을 마무리하여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이룬다는 것이다.

5) 그동안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캠프 데이비드협정을 맺으며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한 것으로,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의안 242호에 '그(the)'가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모든'이라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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