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대출이자 때문에 마리화나에 손 댄 남자
[서평] <타임>지 선정 10대 소설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 시인들의 고군분투기<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아무리 땅이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르고, 아무리 누군가 짓밟고 또 짓밟아도 살아남아 마침내 꽃을 피우고야 마는 민들레를 닮았다. 물질이 한 가정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 아래로 아무리 처박아도 사람이 끝없이 꿈꾸는 희망까지 제멋대로 꽁꽁 묶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바다출판사
"현재 우리네 삶을 보여 주는 가장 웃긴 올해의 책.-타임 / 제스 월터는 교묘한 유머리스트이자 파국론자이다. 위험스러울 정도로 날카롭다.-뉴욕타임즈 /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였던 제스 월터는 경제 위기에 빠진 미국의 황량한 풍경을 따뜻함이 담긴 재치 있는 풍자로 담아냈다.-퍼블리셔스 위클리
엉망이 되어버린 어떤 아메리칸 드림을 익살맞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린 이야기... 음울한 탐정과 평범한 남편의 역할 사이에서 방황하는 맷 프라이어는 때론 날카롭지만 감성이 어린 놀란 시선으로 겹겹이 관료화되고 말장난으로 넘치는 세상을 예리하게 쳐다본다.-워싱턴포스트
돈에 관한 어리석은 행동들과 파국에 대한 경고로도 읽혀지는 이야기-캔자스시티 스타 /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게 천만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월터가 구성한 중산층의 위기는 단연 압권이다.-뉴욕 데일리 뉴스 / 작가는 때로는 쓰라리고 웃기지만 엄밀한 실제의 감정의 순간들을 통해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뉴웨스트"
집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 존재가 깃드는 장소
"원고를 읽는 내내 웃었다. 시적인 돈은 없다. 돈이 되는 시도 사라졌다... 지독하게 현실적이기에 재미있고도 슬픈 이 책은 지금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어느 한순간 빵 터져버린 자본주의를 버텨가는 모든 사람들의 넋두리다. 그리하여 이 책은 거대한 무덤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비비적거리는 우리 모두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자화상이다."-김별아(소설가)
언론인 출신 미국작가 제스 월터가 쓴 장편소설 <시인들의 고군 분투기>(오세원 옮김)가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지난 2009년에 미국에서 나온 이 책은 자본주의가 낳은 신기루를 한 시인이 겪는 가없는 절망과 새롭게 싹트는 희망을 통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200년 최고작으로 평가받으며 <타임>지가 가려 뽑은 10대 소설 가운데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다른 7' '신문산업의 마지막 나날' '링컨의 콩나무집 시절의 꿈' 등 모두 30꼭지로 이어지는 이 책은 서브프라임 사태 뒤 무너지는 미국 중산층과 그 중산층들이 지니고 있었던 '끝없는 번영', 그 속내에 꼭꼭 감추어진 거짓과 허상들을 비꼬는 우스갯소리와 깊은 슬픔이 한 땀 한 땀 기워져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란 지난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영어: subprime mortgage crisis)로 신용도가 일정 기준 이하인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미국 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이 사태는 미국 톱 10에 드는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가 파산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이라는 엄청난 경제위기를 낳았다.
이 책을 옮긴 오세원은 '옮긴이의 말'에서 "집은 그저 얼마의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깃드는 장소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책의 번역을 끝내면서 콘크리트로 지은 집을 팔았다"라며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집을 찾아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썼다." 이 말은 실제로 집을 팔았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콘크리트를 팔았다는 뜻이다.
소설 속 주인공 맷, 집값 거품 일었다 빠지는 우리나라 자화상
"2년 전 부동산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 리사와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우리는 변동금리의 수렁에 빠지지는 않았으니까. 우리의 주택 대출은 정상적인 30년짜리 확정금리 상품이었고 몇 차례 비싸게 돈을 들여 집을 리모델링하느라고 자산을 매각하는 우를 범하긴 했지만 아직은 견딜 만했다."-'소셜 네트워크' 책 중에서
이 책은 주인공 맷이 '닷컴 바람'에 뒤늦게 올라타기 위해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금융에 관한 정보를 시 형태로 보여주는 사이트를 열면서 먼 길을 떠난다. 맷은 이 사업에서 곧 망한 뒤 다시 옛 신문사로 들어가지만 인터넷 영향 등으로 신문사 경영이 심하게 나빠지면서 곧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집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계속 불어나기만 하는 대출이자로 차압당할 위험에 빠진다. 맷은 취직도 어렵고 잇따르는 경제위기 속에 가족관계도 차가워지면서 집에서조차 쫓겨날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다. 그는 어느 날 새벽 아이들이 시리얼에 부어 먹을 우유를 사러 세븐일레븐에 들렀다가 그 곳에서 젊은이들이 주는 마리화나를 피우게 된다.
맷은 그때부터 마리화나 향수를 지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그는 꽤 위험하지만 수입이 짭짤한 마리화나를 몰래 들여올 계획을 세우고 젊은 친구들을 통해 마리화나 밀매조직에 다가선다. 그는 우선 앞가림만 할 수 있을 돈만 벌고 재빨리 손을 뗄 마음으로 마리화나 밀매에 손대지만 그 조직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마리화나로 짭짤한 돈을 손에 쥔 그는 마리화나 밀매조직으로부터 마리화나 재배시설과 판매망, 노하우를 받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하지만 곧 마약 단속반 레이더에 걸려 수사관들 끄나풀이 된다. 그는 마약을 단속하는 수사관들 끄나풀이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본다.
페이스북으로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내 옛 연인, 자신을 해고한 무능한 신문사 경영진, 허황된 신기루를 보여주며 자신과 같은 중산층에게 거품을 집어넣은 재정상담사 등. 그러나 맷이 지닌 이러한 꿈은 곧 꺾이고 만다. 마약 단속반 수사관들이 맷 같은 피라미 마리화나 소비자를 을러댄 또 다른 이유가 있었고, 맷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지내는데···.
이 장편소설 속 주인공 맷은 우리나라 강남을 비롯한 신도시 곳곳에서 집값 거품, 주식 거품 등이 일었다 빠지는 우리나라 자화상이다. '21세기 보릿고개'라 불리는 끝없는 경기침체, 치솟는 기름값, 전셋값 대란, 빈부 양극화 등.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으뜸 경제대국 미국사회 곳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가 낳은 정신박약아다.
지구촌 곳곳 서브프라임 사태, 한국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내가 아까 말했던 큰 물고기는 주로 이 연못에서 끝나게 되어 있어요.' 그는 연방 법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우리는 잔챙이들은 관할 지역 경찰과 검찰에 넘겨버리죠. 그런데 그 때문에 좀 묘한 상황이 나올 수 있어요. 우리들은...... 이런 사건들 중 어떤 것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메슈? 우리가 모든 잔챙이 마약 사범들을 반드시 경찰에 넘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내 파일에 들어 있는 서류철을 집어든다."-'아, 그래, 이제야 모든 이유를 알겠어, 하이쿠 3번' 책 중에서
지구촌 곳곳을 울린 서브프라임 사태. 이 장편소설은 화려하면서도 몹시 위험한 '경제'라는 올가미에 걸려 나락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 미국 중산층 속내를 파헤친 소설이다. '아름답지만 금방 꺼지는 거품'을 영원인 것처럼 품에 꼬옥 껴안고 흥청망청 살아가는 미국 중산층이 거품처럼 꺼지는 모습. 그 모습은 우리나라라고 피해갈 수 없다.
이 소설은 '아차'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신자유주의라는 지뢰밭을 걷고 있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너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 맷이 마리화나라는 밀매에 손대는 것도, 그 마약 밀매에 손댄 맷을 거꾸로 이용하려는 마약단속반도 미국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 <That Old Cape Magic>, <Empire falls>를 쓴 리처드 루소는 "종종 나에게조차 요령부득의 나라로 느껴지는 나의 모국, 미국을 풀어내는 데 있어 현존하는 작가들 중 제스 월터만큼 뛰어난 이는 없다"며 "이번 새로운 소설,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의 문장 하나하나는 그의 예지와 촌철살인의 위트, 묘사하는 대상에 대한 따스한 교감이 넘쳐난다"고 높이 평가했다.
<The King of Kings Country>, <The Huntsman>를 쓴 위트니 터렐은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이번 경제 위기를 일으킨 주범들(즉, 우리)에게 조너선 스위프트나 앤서니 트롤럽 같은 작가들이나 가능할 법한 혹독한 채찍질을 가하면서도 그가 최고의 작가들의 대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며 "이 책이야말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들만큼 웃기는 영웅이 주인공인 걸작 중의 걸작이다. 녹아 흐르는 금에다 비교를 할 수 있을까?"라고 추켜세웠다.
희망은 욕망을 내팽개칠 때 비로소 손 내민다
"상점가에 앉아 나는 내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며 그녀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 조심스럽게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은 내가 세 달에 걸쳐 모은 20달러로 영화를 보고 있다. 허울뿐인 중산층의 모든 굴레와 의무, 부채에서, 쓰러질락 말락 아슬아슬한 나뭇더미처럼 우리들 머리 위에 쌓아올리던 거짓에서 벗어난 지금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세븐일레븐 이후' 몇 토막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는 아무리 땅이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르고, 아무리 누군가 짓밟고 또 짓밟아도 살아남아 마침내 꽃을 피우고야 마는 민들레를 닮았다. 물질이 한 가정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 아래로 아무리 처박아도 사람이 끝없이 꿈꾸는 희망까지 제멋대로 꽁꽁 묶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은 크고 넓은 집에서 외제 자동차를 굴리며 돈을 펑펑 쓰는 부잣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더 큰 집에서 더 좋은 가구들을 비치하고 자가용을 두 대 굴리며 살았을 때, 네 식구 모두 같이 영화를 볼 돈이 있었던 그때, 왜 더 행복할 수는 없었을까?"처럼 희망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욕망을 내팽개칠 때 비로소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제스 월터(Jess Walter)는 언론인 출신 작가로 뉴스위크, 워싱턴 포스트, 보스턴 글로브 등에 글을 썼으며 지금까지 소설집 다섯 권을 펴냈다. 그가 펴낸 작품은 지구촌 15개국에 소개되었으며, <시티즌 빈스>로 에드거상, <제로>는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그는 O. J. 심슨 재판 사건을 다룬 베스트셀러 <경멸>(공저)을 비롯해 논픽션 작품들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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