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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예방 공무원,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다

"할아버지 담배하나만 주실래요?" 인화물질 압수방법

등록|2011.04.03 16:29 수정|2011.04.03 16:29

▲ 제가 맡은 산불예방 구역입니다 ⓒ 화천군


청명한식을 앞두고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산불예방 활동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토요일) 산불 예찰 담당구역인 화천군 신읍리로 나섰습니다.

전날 안동과 예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소식을 들은 터라 직원들이 산불예방 근무에 임하는 태도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담당구역으로 지정된 코스를 차를 타고 반복 순찰하기를 수차례. 입산을 하시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산위에 밭이 있는데 돌을 주우러 가신답니다.
"할아버지 혹시 담배 있으세요?" 

'이 후레자식 놈 같으니라고 젊은 놈이 어디서 늙은이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느냐'며 역정을 내실 만도 한데 산불근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고생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담배를 한 대 주십니다.

"죄송합니다만, 라이터도 좀..."
'이놈이 돌았나' 하는 표정으로 한번 흘낏 보시고는 라이터를 켜주시기에 그것을 받으며, "할아버지! 라이터와 담배를 제게 맡겨 놓고 다녀오세요. 오실 때 그대로 다시 돌려 드릴게요" 라고 말씀을 드리자, 속았다는 눈치십니다.

이것이 라이터를 소지하고 입산을 못하게 하는 저만의 수법입니다. 사무적으로 "산에 라이터나 인화물질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있으면 꺼내 놓으시죠!"라고 말하면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욕심에 대부분 없다고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정말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표정으로 '담배 하나만...'이라는 부탁을 드릴 때 담배를 주시는 분들 100%는 성냥이나 라이터를 소지하고 계십니다.

봄이라 농사 준비를 위해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일일이 찾아다니며, 산불조심에 각별히 신경을 써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공무원은 아닙니다

▲ 밭에 불을 피우는 현장 발견 ⓒ 신광태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가 산불감시활동 시간입니다.
'공휴일인데 쉬지도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저녁 6시면 6시지, 7시 반은 또 뭐냐!' 지난해부터 구제역방역이다 산천어루어낚시터 프로그램 운영이다 해서 지칠 대로 지친 직원들의 불만도 있지만, 농촌 노인들이 '공무원들은 6시면 퇴근한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6시 이후에 밭이나 논두렁에 불을 놓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연장 조정한 것이랍니다.

저녁 어둠이 내리기 시작 전인 6시 30분, 이젠 철수하자는 제안에 파트너인 이영승 예산담당은 마지막으로 한 바퀴 더 돌아보고 퇴근하자고 하십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민가도 별로 없는 곳에 들어섰을 때 개울 건너 산과 인접한 밭에서 열심히 잡초를 태우시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할머니 거기 가만히 계세요!"
큰 소리로 말하고는 달려가서 허겁지겁 불부터 껐습니다.

"할머니! 이렇게 밭에 불 놓으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잡혀가서 300만 원 벌금도 내셔야 해요!"
"내 밭에 내가 불을 놓는데, 니들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해?"  

안 되겠다 싶어서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절대로 성함을 밝히실 것 같지 않기에 휴대폰을 이용해 할머니 사진을 찍고 경각심을 심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내일 군청에서 연락이 오면 꼭 다녀가시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제야 '한번만 봐주면 안 될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안 됩니다. 제가 봐 드리면 할머니 또 불을 놓으실 거 아네요. 성함 말씀 안 하실 거예요?"
재차 물어도 절대로 밝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밭이나 논두렁 등지에 불을 놓으면 안 된다' 는 것 쯤은 알고 계시면서도 저녁시간이니까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에서 불을 놓으신 듯 합니다.

▲ 성함을 밝히기를 거부하시는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것도 완강히 반대를 하십니다 ⓒ 신광태


한 번만 봐 달라도 할머니 말씀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면서 '다시 가서 할머님께 다시는 불 놓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봐 드릴까'라는 생각을 했던 건 틀림없이 할머니께서 300만 원 벌금이라는 말에 밤새도록 큰 걱정을 하실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 경각심을 갖게 할 좀 더 큰 효과가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장님댁을 방문했습니다.
"조금 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성함을 말씀을 하시지 않아요, 이분이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라며 사진을 보여 드렸더니, "아~ 박씨 할머니!"라며 금방 알아보십니다.

"이장님께서 지금 이 할머님께 전화를 드려서 조금 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그 공무원들이 고발을 하겠다는 걸 이장인 내가 간신히 말렸으니까, 걱정 말라고 말씀드리고, 다시는 불 놓지 말라고 말씀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장님의 말씀은 잘 따르실 테니까요."
이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이장님이 할머님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할머니! 오늘 뭐 그런 일이 있었다며? 내가 몇 번 말했어요. 밭에 불 지르면 큰일 난다고 수십 번 말했잖아요. 할머니 이제 큰일 났어요. 벌금 300만 원 어떻게 낼 거유? 할머니 돈도 없잖아요?"

이장님의 말씀에 전화 건너편의 할머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큰 걱정을 하시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장님께 그만 하라는 눈치를 하자 이장님이 할머님께 말씀을 하십니다.

"근데, 할머니 걱정 말아요. 안 된다는 걸 내가 사정사정해서 봐 달라고 말해 놓았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 옆집 이씨 할머니에게도 조심하라고 꼭 말해줘요. 한 번 더 그런 일 있으면 나도 못 빼 줘. 오늘 할머니가 만났던 그 공무원 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사람들 이라구요."

헐~ 이장님이 너무 오버하신 바람에 오늘부로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공무원으로 낙인이 찍힌 겁니다. '그렇게라도 함으로 산불을 예방할 수 있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돌아 나오며 이 봄이 지나면 그 할머니를 꼭 한 번 찾아뵙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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