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투성이 우리아이, 누가 때렸을까요?
"오지게 감프게 논갑다, 온몸이 상처네"... 숲에서 노는 아이들, 비가 걱정입니다
▲ 흔적숲에서 신나게 논 결과입니다. 애들이 돌아오면 온 집안이 흙과 먼지로 가득합니다. ⓒ 황주찬
지난 3일 전남 여수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씻기지 못했는데 계절도 바뀐 터라 날을 잡았습니다. 욕실 안으로 두 아들을 몰아넣고 뜨거운 물에 30분 정도 몸을 불렸습니다.
정신없이 물장난하던 아이들이 슬슬 지겨운 듯 욕실에서 꺼내 달라 조릅니다. 빨리 나오려는 마음에 제게 몸을 선뜻 내맡기지만 녹녹치는 않습니다. 아빠의 억센 손에 보드라운 살결을 맡겨야 하는 고통스런 순서가 기다립니다.
이태리타월로 쓱쓱 아이 피부를 미는데 큰 녀석이 몇 군데 특정 부위를 문지를 때마다 아프다며 몸을 뒤로 뺍니다. 희뿌연 수증기와 비누거품이 다친 곳을 가려선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충 몸을 씻기고 밝은 곳으로 아이를 번쩍 들어 옮긴 후 벌거벗은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봅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몸에 멍든 자국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대뜸 아내에게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애들 몸이 왜 이래? 어린이집에서 맞고 다니는 거야?" 아내는 내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달려옵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합니다.
"숲속에서 지들끼리 놀다 다치고 멍든 거야. 숲에서 오지게 감프게 노나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3월 초 아내가 어린이집 입학식에 다녀온 뒤 지나가며 흘린 말이 떠오릅니다.
물장구치고 흙장난할 아이들, 걱정입니다
▲ 나무타기 대장어린이 집에서 나무타기 대장이랍니다. 다리 안쪽이 상처와 멍투성입니다. ⓒ 어린이 집 제공
두 아들을 여수의 모 어린이집에 함께 보내는데, 이곳이 전국에서 몇 곳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숲에 ON반'(숲 유치원이라 말하는데 이곳은 어린이집이기 때문에 명칭을 달리합니다)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숲에 ON반'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색다른데 온종일 아이들을 숲에서 머물게 합니다. 선생님들 역할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주위를 살피는 일입니다. 모든 일정은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합니다. 말 그대로 숲에서 신나게 노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그네도 탑니다. 또 작은 텃밭도 스스로 일굽니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흙장난은 기본입니다. 덕분에 온몸이 훈장같은 상처와 퍼런 멍투성입니다. 또 손톱 밑엔 까만 때가 한가득입니다.
그 말이 생각나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들 몸뿐 아니라 양 볼과 입술이 봄 햇살과 바람결에 심하게 텄습니다. 영락없는 시골 아이들입니다. 어린이집 가는 일이 즐거운지 큰애에게 물었더니 요즘 숲에서 온종일 나무 타고 흙장난을 하니 좋답니다.
두 녀석은 몇 년간 다닌 어린이집이 지루할 만도 할 텐데 숲에서 노는 일이 색다른지 마냥 좋은가 봅니다. 아침이면 눈뜨자마자 새로 산 작은 배낭과 등산화를 챙기기 바쁩니다.
아내가 저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지나가며 한마디 합니다. "우리 애들 둘이 숲에서 제일 잘 논데, 두 녀석이 모든 일에 일등이야." 아이들이 나무타기와 흙장난 대장이랍니다. 그 말에 높았던 목소리가 낮아지며 조금 위로가 됩니다.
방사능 비에 즐거워하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 흙장난비오면 물 웅덩이가 생기고 아이들은 흙장난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 어린이 집 제공
▲ 배낭과 등산화숲에서 놀 때 꼭 필요한 물품입니다. 배낭과 등산화입니다. 배낭은 비오면 덮어 씌울 수도 있습니다. ⓒ 황주찬
저는 "나무타기가 좋아도 다치지 않게 조심히 놀아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아이에게 던지고 물기를 열심히 닦는데 불현듯 한 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아내 말이 비오는 날에도 '숲에 ON반'을 진행한다는데 아이들을 보내야 할지 고민됩니다.
아이들은 내심 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합니다. 비 옷 입고 물장구며, 흙장난할 생각에 어른들 걱정은 관심 밖입니다. 반면, 저와 아내는 비 오면 애들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뉴스에선 일본 원전사고로 생긴 방사성 물질이 바람 타고 날아와 전국 곳곳에서 검출된다고 말합니다. 또 비와 섞여 내리기도 한다니 숲에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방사능이 미량이라 인체에는 해가 없다는 말은 빼놓지 않습니다만 아내와 저는 방사능에 오염된 비를 맞아 좋을 일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정부의 말을 무조건 믿고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지 망설여집니다.
어른들이야 우산으로 내리는 비를 피할 테지만 천방지축으로 놀이에 정신없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챙길 겨를이 없을 테니까요. 또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어른보다 약해서 조그마한 오염에도 당장 반응을 할 테니 시름만 두 배가 됩니다.
봄비 소리 듣는 즐거움, 저 멀리 달아났다
▲ 비옷멀쩡한 아침에 비옷을 입혀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방사능비에 안전할까요? ⓒ 황주찬
젊은 날 봄비 내리면 하염없이 걷는 습관도 이젠 그만둔 지 오래지만 아이들은 비만 오면 마냥 즐거워하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아내와 의논 끝에 너무 민감한 반응이라 결론내리고 계속 '숲에 ON반'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올 봄, 비 오면 마냥 들뜨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아침이면 아이들과 함께 이불속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봄비 소리를 듣는 즐거움도 저 멀리 달아났습니다.
빗소리에 황급히 일어나 아이들 비옷 잘 챙겨 입힐 생각뿐입니다. 이런 생각이 괜한 걱정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신나게 나무타기를 즐기고 있을 아이가 떠오릅니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니 감사해야 할까요? 이래저래 올 봄비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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