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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식권 받으려 살림 내다 파는 미국인들

[해외리포트-복지④] 미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등록|2011.04.11 19:46 수정|2011.04.11 19:46
멀게만 느껴졌던 복지 문제가 어느새 한국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됐습니다.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될 전망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 제도를 먼저 구축한 유럽과 미국의 경험을 살펴 한국 사회 복지 논쟁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외국에 거주하는 해외통신원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말

▲ 네브래스카 주(위)와 아이다호 주(아래)에서 사용되는 '푸드 스탬프'용 EBT 카드. ⓒ 네브래스카 주와 아이다호 주의 보건부 웹사이트

미국의 대표적인 복지 프로그램으로 푸드 스탬프(Food Stamp)가 있다. 미국 정부가 정하는 빈곤선의 100~165%(가족 중 노약자 유무에 따라 달라짐) 이하에 속하는 개인이나 가정이 식품 구입을 위해 정부로부터 받는 복지 지원책이다.

2011년 현재 4인 가족 기준의 빈곤선은 연소득 2만 2350달러(약 2460만 원)로 연소득 3만 6877달러(약 4056만 원) 이하는 푸드 스탬프를 수령할 자격이 있다.

미국 농림부가 연방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푸드 스탬프의 정식 명칭은 2008년 10월 '보조 영양 지원 프로그램(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줄여서 SNAP)'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변화는 정부가 종이 쿠폰 형식의 푸드 스탬프를 EBT(Electronic Benefits Transfer) 카드로 대체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을 대폭 늘리고자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1939년에 처음 생긴 이래 70여 년간 푸드 스탬프로 불린 까닭에 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보조 영양 지원 프로그램이나 스냅이 아닌 '푸드 스탬프'라는 이름이 훨씬 더 익숙하다.

미국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현재 푸드 스탬프를 수령하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인 4400만 명에 이른다. 2007년 푸드 스탬프 수령자가 2600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2007년 겨울에 시작된 경기 침체의 여파로 3년여 만에 빈곤층이 무려 1800만 명이나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성인 7~8명 중 1명, 아동 4명 중 1명이 푸드 스탬프를 받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1인당 132달러, 가족당 282달러 정도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말 푸드 스탬프 수령자의 약 18%인 600만 명 정도가 수개월간 현금 수입이 단 한 푼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 내 239개 카운티 중에는 카운티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푸드 스탬프 수령자인 곳도 있었다.

"머리 위에 지붕 둘지, 식탁에 음식 둘지 선택하도록 내몰린 사람들"

내가 사는 아이다호 주는 2010년에 푸드 스탬프 수령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주로, 전년도보다 무려 43%나 증가했다. 이것은 푸드 스탬프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이 크고 이를 운영하기가 어려운 주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2010년 6월,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로지 엔두자는 지역 신문인 <아이다호 스테이츠맨>에서 "아이다호 사람들은 '내 힘으로 먹고살자'는 정신이 강하고, 의존하려면 (정부가 아니라) 차라리 종교기관으로 가자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로지 엔두자는 전국의 푸드 스탬프 수령 가능 인구 중 실제로 신청하는 비율이 평균 66%(2007년 기준)인 것에 비해, 아이다호 주에서는 약 50%만이 신청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게다가 아이다호 주에는 다른 주와 달리 푸드 스탬프 신청 업무를 거들어줄 협력 기관도 전혀 없다.  

로지 엔두자는 역사적으로 아이다호 주에서는 여름이면 고용률이 증가하면서 푸드 스탬프 수령자가 줄어들곤 했지만, 2007년 가을 이래로 그러한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만큼 경기 침체로 인해 아이다호 주가 입은 충격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그런 아이다호 주에서 지난 2008년 버치 오터 주지사는 푸드 스탬프 수령자의 자격 조건에서 자산 평가 부분을 일시적으로 제외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연소득에 따라 푸드 스탬프 수령 자격이 결정되지만, 아이다호를 포함한 12개의 주에서는 소득 이외에 자산의 가치까지 평가해왔다.

▲ 풀뿌리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티파티 구성원들이 2010년 4월 15일 아이다호 주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일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유경

가령 2009년 자산 평가 없이 연간 소득 수준만으로 푸드 스탬프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오하이오 주의 워렌 카운티에서 고급 벤츠 승용차를 몰고 온 한 여성이 푸드 스탬프를 받아가는 일이 있었다. 그녀는 30만 달러짜리 주택(융자부채도 전혀 없는)도 소유한 것으로 밝혀져 당시 오하이오 주의 일부 정치인들은 푸드 스탬프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까지 들고 나온 바 있다. 

아이다호 주의 경우 집과 자동차(1대까지), 살림살이 및 보석, 그리고 가축 등을 제외한 자산 가격 총액이 일정액(2011년 이전에는 2000달러, 현재는 5000달러로 인상)을 넘을 경우 푸드 스탬프 수령 자격을 잃는다.

그런데 오터 주지사가 자산 평가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이유는 2008년 당시 경제적으로 어렵던 사람들이 무료 식권인 푸드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자산 가치 기준선(2000달러)에 맞추고자 저축 및 은퇴 연금 계좌를 깨고, 심지어 집안 세간까지 팔아치우는 일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단 결정에 로지 엔두자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 위에 지붕을 두고 사는 것과 식탁 위에 음식을 두고 사는 것 사이에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었다"며 탄식한 바 있다.

극한 상황만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미국의 저소득층 복지 프로그램들

푸드 스탬프 이외에도 미국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돈이 없더라도 임신을 하면, 윅(WIC)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임산부와 태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은 섭취할 수 있다. 또, 메디케이드(Medicaid)를 통해 임신 기간 내 정기 체크업은 물론 출산 비용 일체를 정부가 지급하기도 한다.

이런 복지 프로그램은 진료소 내에서 바로 신청할 수도 있고, 진료소에 상주하는 사회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도 있다. 

윅(WIC)은 'Women, Infants, and Children'의 약자로 미국 농림부가 주관하며 연방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미국 연방정부가 정하는 빈곤선의 185% 이하(2011년 현재 4인 가족 기준 연소득이 4만 1300달러-한화로 약 4543만 원- 이하)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의 임산부나 5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가정은 윅을 신청할 수 있다.

수령자는 '윅 바우처(WIC voucher)'라는 일종의 식료품 구입 쿠폰을 갖고(일부 주에서는 현금카드처럼 생긴 EBT 카드로) 윅이 지정하는 식료품(우유, 치즈, 콩, 시리얼, 채소, 주스 등)만을 구입해야 한다. 미국 농림부에 따르면 미국에서 출생한 유아의 45%가 윅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케이드는 기본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제도다. 그러나 이것은 연방정부 예산과 주정부 예산으로 같이 운영되는 까닭에 그 수령 자격 조건이 주마다 다르고, 연소득이 낮다고 해서 모두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너무나 가난해서 임신을 못하고, 병원에서 출산을 거부당하며, 어린아이들이 굶주려야 하는 극한 상황만은 미국에서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복지 프로그램은 여기까지다. 그나마 복지 프로그램은 저소득층에게만 집중돼 있다(이마저도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정부가 정하는 기준선보다 조금이라도 소득이 많으면,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충당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곳, 미국이다. 

▲ 오리건 주의 윅 프로그램이 발행하는 윅 바우처. "10달러어치의 냉동 혹은 생야채 및 과일을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이며, 10달러 이상을 구입하게 되면 잔액은 구입자가 지불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 오리건 주 보건부 웹사이트


'재정 적자의 원인'으로 공격 받는 사회복지 프로그램들

물론 저소득층이 아닌 미국인들도 참여하고 있는 복지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은퇴연금(Social Security Benefits)과 메디케어(Medicare), 실직자 보험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은퇴 이후 연방정부로부터 받는 연금과 65세 이상의 미국인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는 미국 중산층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매우 중요한 장치로서 미국 사회보장 제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프로그램이 정부의 재정 적자를 더 악화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이 프로그램들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젊은 미국의 노동자들은 이 두 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어디까지 받을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적어도 65세가 지나야 의료 관련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미국의 중산층은 작년 3월까지만 해도 오로지 값비싼 사보험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러다 2010년 3월 23일부터 시행된 의료개혁법안으로 65세 미만의 미국인들도 국가가 지원하는 의료보험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복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국민 의료보험 제도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설상가상으로 과반수의 미국인이 의료 개혁안에 반대하고 일부 주에서는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마저 활발해, 의료 개혁안이 앞으로 어떻게 변질될지 알 수 없는 딱한 상황이다.
  
실직자 보험도 수혜 범위가 좁기는 마찬가지다. 파트타임과 임시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은 수령 자격이 없다. 또한 수령액이 적어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기도 매우 어렵다. 또한 실업 후 26주 동안만 기본적인 지급이 보장되고 그 이후는 경기상황에 따라 미국 의회가 임시로 지급 기간을 늘리는 탓에, 각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볼모로 잡혀 연장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서, 혹은 해고를 당해 실업자가 되는 일이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시련이지만, 미국 중산층은 이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조금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처지다.

WOW 보고서 "생존만이 아닌 중산층 보호 위한 사회 안전망 마련해야"

▲ WOW의 연구 보고서 중 싱글 노동자에게 1년간 필요한 기초 소득을 정부 기준과 비교한 표. ⓒ www.wowonline.org

4월 1일, 미국의 '여성을 위한 더 많은 기회(Wider Opportunities for Women, WOW)'에서는 "기초 경제 안정표(Basic Economic Security Tables, BEST)"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BEST Index for the United States(미국에서 기초 경제 안정 지표)는 보육비, 집값(월세 또는 모기지 지출), 의료보험료, 교통비, 저축, 연금 등을 포함한 미국 가정의 기초적인 지출 및 월소득을 계산해 만들어진 지표다.

공화당 의원들은 지금 있는 저소득층 지원책도 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달리, WOW는 미국인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책이 현재 수준에서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연구 결과를 통해 반박했다.

가령, 미국 통계청의 최신 자료(2009년)에서는 싱글 노동자에게 필요한 연간 기초 소득을 1만 830달러로 봤지만, BEST에서는 최소 3만 12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두 자료 간에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WOW의 연구가 단지 생존 자체가 아닌 경제적 안정성을 목표로 두고 비용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즉, 이 연구에서는 연금과 긴급 상황에 대비한 저축액도 기초 소득에 포함시켰다. 싱글 노동자가 퇴직 후의 생활과 갑작스런 위기 상황에 대비하려면, 연방정부가 지정한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당 14달러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앤 쿠리앤스키 WOW 소장은 1일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해고를 당하면 중산층은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우리는 한 개인의 일생 동안 경제적 안전성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층의 충격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자 했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 WOW의 연구 보고서 중 맞벌이 가족에게 1년간 필요한 기초 소득을 정부 기준과 비교한 표. ⓒ http://www.wowonline.org

BEST에 따르면 두 명의 자녀를 둔 외벌이 가족은 최소 연간 약 5만 7756달러, 같은 수의 자녀를 둔 맞벌이 가족은 최소 연간 6만 7920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정부의 빈곤선에서 전자가 1만 8310달러, 후자가 2만 2050달러로 책정돼 있는 것과 차이가 크다.

이번 BEST 연구에 참여했던 워싱턴대학 사회발전센터의 마이클 셰라덴 소장은 "중산층 가정이란 최소한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해 BEST 지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이클 셰라덴 소장은 "만약 우리가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약간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가정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이것(BEST)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방식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는 중산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기는커녕, 주거비 보조 및 자녀 양육 부분(BEST에서 가장 많은 지출이 발생한 부분) 등의 예산을 더 삭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기초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미국인이 더 큰 고통을 겪을 전망이다.

무너지는 미국의 중산층

올해 초 위스콘신에서 시작해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등에서 미국 중산층의 한 축을 이루는 공무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보수적인 이곳 아이다호에서도 교사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공무원 임금 삭감, 의료 보험과 복지 혜택 축소, 공무원의 단체교섭권 박탈을 추진하는 주정부의 움직임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국 지난 3월 말 아이다호 주 의회는 공립학교 교사 800여 명을 해고하고, 기존 교사들의 임금 및 각종 혜택을 삭감하며, 단체교섭권을 대폭 제한하는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 아이다호의 한 교사는 이곳 지역 신문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교사라는 직업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에서 은퇴했을 때 안락한 삶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산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 올해 3월 아이다호 주 의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교사들과 학부형들. ⓒ 아이다호 교육위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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