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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들이 군대를 거부한 진짜 이유

[서평] 임재성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등록|2011.04.08 15:32 수정|2011.04.08 15:32
대학의 한 강의실. 오늘은 학생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쟁점들을 언급하기가 무섭게 교실은 술렁인다.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학생부터, 거부감을 표출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면, 논의는 의외로 쉽게 정리된다.

국제인권기준과 세계적인 현황이 '분단상황의 특수성'을 서서히 제압한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에서…" 이 한 마디에 '글로벌 코리아'의 꿈돌이 학생들이 생각을 바꾼다. 군대보다 길고 힘든 대체복무제는 악용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말로 안심을 시키고, 실제로 우리 국방력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말로 논의의 '쐐기'를 박는다. 정연한 논리와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 이제 찜찜했던 마음까지 모두 사라진다.

"그래, 이제 우리 사회도 소수자에게 그 정도 관용은 베풀어야지…."

물론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나의 강의실에서처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는다. 병역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이기 때문이다. 논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적인 반응까지 설득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는 결국 도입될 것이다. 이번 정권 들어 정부정책이 후퇴한 듯 보이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 정도 수준에 오기까지 병역거부운동에 함께 한 수많은 당사자와 운동가들의 싸움이 있었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훌륭한 책들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병역거부운동은 황무지에서 출발했지만 그들의 그런 노력 덕에 우리는 병역거부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고, 언젠가는 그 성과가 대체복무제라는 진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5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는 여기까지였다. 임재성의 책,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한다. 스스로 병역거부자였던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병역거부자들에게 "삼켜야 했던 그 무엇", "말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반전과 평화였다.

병역거부자였던 저자가 말하지 못한 건...

▲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겉그림. ⓒ 그린비


그들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해 왔지만, 사실 그렇다고 병역의무이행자들이 수행하는 전쟁이 옳다고 얘기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징병제보다는 모병제가 낫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직업군인들의 전쟁이 정당하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대체복무를 도입해 달라'는 것을 넘어, 전쟁에 대한 반대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저자는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평화론이나 정전론과 같은 '논리'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병역거부자들의 고통과 감정을 통해서 접근하는 "'공감'이라는 평화학의 방법론"을 택한다. 이를 위해 그는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저자가 포착한 병역거부자들의 모습은 '투사'가 아닌 '인간'이다. 그에게 병역거부자들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하고,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고, 법정에 서서 대체복무제 도입의 정당성을 멋지게 연설하는 전사나 투사가 아니었다. 아니 그들에게는 '전사'나 '투사'같은 피비린내 나는 수식어 자체가 부당했다.

그들은 그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나요?"라는 당연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일 뿐이었다. 그들은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고 절규하고, 침략전쟁에 힘을 보탤 수 없다고 분노하는 인간이었다. 그들의 그런 인간적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거창한 이론보다 급진적이고 그 어떤 실천보다 적극적인 반전·평화운동의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반전평화운동에 가장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이제 피해자로서 인권을 보호받아야할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반전평화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하고, 병역거부운동은 '인권운동'에서 '평화운동'으로 전환된다. 저자는 이 역사적 전환을 '주장'하는 대신, 그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고 전한다.

투사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담은 책

하지만 이 책은 병역거부자와의 대담집이나 소견서 모음집이 아니라 엄연한 연구서이다. 병역거부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것은 '평화학의 방법론'의 일환으로 시도된 것이다. 그동안의 병역거부운동의 담론들도 잘 정리되어 있고, 인권학이나 평화학의 이론적 논의들 또한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 사이에 체계적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연구서'라면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주로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을 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남긴 유산과 그들의 목소리를 사실상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그동안 병역거부운동의 주체가 특정종교의 신도들이었다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적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저자는 그 선택의 정당성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책의 '후기'에서처럼) '이해와 용서'를 통해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강의실이다. 이번에는 헌법과 인권이라는 '안전한 언어' 대신, 평화라는 '위험한 언어'에서 시작한다. 전쟁이 정말 인류의 필요악인지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국방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라는 논거 대신, '왜 전쟁을 해야 하는가'라는 발칙한 질문을 던져본다. 대체복무제 도입 논리에 압도당했던 학생들도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연한 '논리' 대신, 병역거부자들이 진정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총을 들 수 없다며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력과 전쟁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저항했던 그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를 들려줘야 겠다. 우리가 그 이야기들에 공감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이미 급진적인 평화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책을 챙겨갈 것이다. 그리고 병역거부자의 소견서 한 자락을 읽어주는 것으로 오늘의 수업을 시작한다.

"제가 들어야 할 총은 누구를 겨누고 있습니까. 그 총이 슬픈 눈물을 간직한 사람들을 향한다면, 그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겨누고 있다면, 저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김태훈의 병역거부 소견서 중)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제352호 (2011.03.30)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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