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거리 '제로' 최악 흑풍폭이 한반도 덮친다면?
우리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중국의 황사와 사막
▲ 2010년 3월 20일 발생한 황사가 중국 베이징 쯔진청(자금성)을 뒤덮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2002년 3월 중순 어느 날, 당시 베이징에 머물렀던 기자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창문을 열었다. 여전히 밤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조금 지났다. 저녁 8시처럼 바깥은 암흑이었다. 하늘은 온통 모래먼지로 가득했다. 일 보러 나가서도 종일 황사 때문에 낮을 잊은 하루였다.
물론 그 해 이후 그날처럼 심한 황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얼마 전 올해 황사 예상 보도가 나간 이후 잠시 사람들은 마스크는 물론 눈만 빼고 얼굴까지 가리고 다녔다. 지금 베이징 날씨는 이상하리만치 맑다. 최근에는 비가 와서 그런지 구름 한 점 없지만 언제 어떻게 폭풍처럼 날아올지 모를 황사인지라 걱정이다.
모래폭풍 사바오(沙暴)와 먼지폭풍인 천바오(尘暴)를 합쳐서 부른다. 강한 바람이 지면에 있는 모래먼지를 일으켜 공기를 혼탁하게 한다는 뜻으로 1킬로미터 앞 시야가 보이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중국은 먼지에 대한 낱말들이 우리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겨우 10킬로미터 정도만 시야가 보장되면서 먼지가 떠다니면 '푸천(浮尘)', 10킬로미터에서 1킬로미터 사이의 시야일 경우, 모래가 휘날리는 '양사(扬沙)'라 부른다. 이에 반해 시야가 1킬로미터보다 심해 500미터조차 보이지 않으면 '챵사천바오(强沙尘暴)'라고 한다.
지난 1일 '정저우 사천바오로 가시거리가 200미터도 안 된다'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정말 눈 뜨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모래를 동반한 편북풍이 강풍에 가까운 6급이니 도시 전체가 사막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당일 허난·허베이·산둥은 물론, 아열대성 기후의 하이난다오까지 경보가 내려졌다. 서서히 모래 공포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헤이펑바오'은 가시거리가 0에 가까운 '흑풍폭'
▲ 2011년 4월 8일 오후 5시 현재 중국 황사 발생 현황 ⓒ 중국기상국 사천바오망
간쑤(甘肃)성 기상국이 주관하는 전문사이트가 있다. 사천바오(황사) 관련 인터넷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6차례 이상 황사가 발생하는 지점의 모래먼지 농도와 예상 이동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도표에서 색깔로 표시된 부분이 사천바오(황사)의 정도를 표시한다. 하늘색,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으로 올라가는데 1입방미터(㎥) 당 미세먼지의 무게를 기준으로 한다. 백 만분의 1그램을 뜻하는 단위인 마이크로그램(ug) 숫자가 높을수록 점점 붉게 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800ug/㎥ 이상이면 황사경보가 내려지는데 숫자만으로는 그 상황이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다.
중국은 좀 더 구체적으로 황사의 정도를 구분하고 있다. 4개 등급으로 나누는데 풍속과 가시거리를 기준으로 한다. 풍속이 4급(和风, 5.5~7.9m/s)에서 6급(强风, 10.8~13.8m/s)이고 가시거리(能见度) 500미터에서 1킬로미터 사이를 '뤄사천바오(弱沙尘暴)'라고 한다. 이 정도라면 약하다는 것이다.
6급에서 8급(大风, 17.2~20.7m/s)의 풍속에 가시거리가 200~500미터 사이를 '중급(中等)챵사천바오(强沙尘暴)'라 하며 9급(烈风, 20.8~24.4m/s) 이상의 풍속에 가시거리가 50~200미터 사이는 중급이란 말을 빼고 챵사천바오라 부른다. 정말 강력한 황사는 11급 폭풍(暴风)보다 강한 12급 구풍(飓风, 32.7~36.9m/s) 이상 불면서 가시거리가 50미터 이하이다. 이를 '터창(特强)사천바오'라고 하는데 심지어 가시거리가 0에 가까울 때도 있고 '헤이펑바오(黑风暴)'라고도 부른다. 흑풍폭? 무섭다.
풍속 나누는 말도 참 많아 모두 17급까지 있다. 얼마나 바람이 다양하기에, 아니 어느 정도 굉장하기에 구(具)풍이라 하나. 회오리치며 날아오르고 허리케인처럼 강렬하고 급격한 '싹쓸바람'을 말한다.
실제로 2010년 4월 26일, 간쑤성 민친(民勤)현이 엄청난 모래폭풍을 동반한 최강의 사천바오(황사), 헤이펑바오로 뒤덮였다. 당시 둔황(敦煌)·주취엔(酒泉)·장예(张掖) 등 13개 도시에 사천바오가 닥쳤지만 민친의 경우 한때 가시거리가 0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했다.
중국 사막은 '자연 공격'과 '인간 수비'가 격렬하게 싸우는 전쟁터
▲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황사의 발원지 중 하나인 쿠부치 사막 모습. 2007년 6월 21일 촬영 ⓒ 최종명
3일자 <신화망> 보도에 따르면 네이멍구 기상국이 최근 15년 동안의 사천바오 발생현황을 발표했다. 네이멍구에는 사천바오가 다발하는 지역이 5곳이나 되고 터챵사천바오도 2곳이나 된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사천바오도 15년 동안 9차례나 발생했다고 전한다. 그야말로 네이멍구 사막에서 발발한 사천바오가 편북풍을 타고 남쪽으로 진출하면 도시는 정말 가관이다.
한편, 1993년 5월 5일 발생한 사천바오(황사)가 중국 100년 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헤이펑바오'는 최대 풍속이 초당 34미터에 이르렀고 가시거리가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실크로드 허시저우랑이 있는 간쑤(甘肃), 회족자치구 닝샤(宁夏), 중원 산시(陕西)와 네이멍구에 이르기까지 72개 현 100만 제곱킬로미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 사천바오로 85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됐다니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정말 '흑풍폭'이라는 말답다.
예보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황사 발생 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발생할 뿐 아니라 바람의 방향도 기복이 심해 완벽하게 대처하기란 힘들다. 게다가 중국 북방은 온통 사막 천지다.
지구의 1/3은 사막이다. 사막화 진행속도도 가파르다. 중국은 국토면적의 27%인 262만 제곱킬로미터가 사막이다. 서북부터 신장(新疆)을 뒤덮고 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타커라마간(塔克拉玛干, Taklamakan)부터 네이멍구(内蒙古) 서쪽의 바단지린(巴丹吉林, Patanchilin), 텅거리(腾格里, Tengger), 산시(陕西) 북쪽과 네이멍구에 이르는 마오우쑤(毛乌素, Ordos), 네이멍구 중부 황허 남부의 쿠부치(库布齐), 네이멍구 중동부의 훈산다커(浑善达克) 사막지대(沙地)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황폐하다.
수천 킬로미터나 퍼져 있는 중국 사막은 '자연의 공격'과 '인간의 수비'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전쟁터다. 실크로드를 지나 둔황에 이르는 312번 국도와 우루무치에서 카스를 달리는 314번 국도는 거의 사막 한복판을 달린다. 심지어 도로 이름도 타리무사막고속도로(塔里木沙漠公路)라고 부른다. 이 도로는 점점 사막화되면서 도로가 모래에 잠길 위기가 오자 무려 436킬로미터의 도로 주변에 나무를 심는 녹화공정을 벌이기도 했다.
민과 관이 함께 황사 막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 실크로드를 지나 둔황으로 가는 중국 312번 국도. 양옆은 사막화가 진행되어 황폐하다. 2007년 6월 30일 촬영. ⓒ 최종명
중국은 오래 전부터 사막지역을 녹화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싼베이팡후린(三北防护林)을 만들어 4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녹색장성(绿色长城)을 만들자는 것이다. 시베이(西北), 화베이(华北)와 둥베이(东北)를 다 포함하는 방대한 공정이다.
녹색장성이 곧 사천바오를 줄이는 결정적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무 심는 것 외에는 특별한 대책도 없다. 보통 겨우내 눈이 많이 왔으면 사천바오가 줄어든다고 한다. 봄철 식물 성장을 촉진해 먼지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6일자 <베이징일보>(北京日报)에 실린 "그렇지만 사막의 경우 눈이 왔더라도 자라날 것이 없으면 별 영향이 없다"는 기상전문가의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바람의 방향과 거리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 심한 영향을 미치는 곳은 앞에서 말한 쿠부치 사막이다. 사막화가 늘어나면서 주민 생활공간까지 침범하고 있다. 북위 40도 부근으로 베이징과 위도가 엇비슷한데다가 직선거리로 약 60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막이니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권병현 전 주중대사는 일찌감치 쿠부치 사막화 방지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천명했다. 2005년 7월 8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미래숲(韩中未来林) 주관 행사에서 권 대사의 이런 집념을 눈여겨 봤는데 지금은 그 성과가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듯해서 흐뭇하다.
지난 2월 13일에는 김두관 경남지사가 쿠부치 사막에 생태원 조성을 위해 가는 길에 베이징에 들러 사막화 방지를 위해 지방정부가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민과 관이 모두 나서 자연재해이자 인재인 황사를 막기 위한 노력에 나서길 바란다.
'20년 만의 최악의 황사가 예상'된다고 예보됐다. 혹시 말조차 무서운 흑풍폭이라도 온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은 현재 황사가 심하지는 않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예보와 다를 수도 있다.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덜 했으면 좋겠다. 베이징에 황사가 오면 중국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나라도 바로 영향권 안에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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