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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할인 혜택인가

고(高)물가에 절름거리는 '할인 시대'의 초상

등록|2011.04.11 11:08 수정|2011.04.11 11:08
[휘발유 1리터] 기름을 넣으러 집 근처에 있는 모 대형 정유사의 주유소를 들렀다. 리터당 1950원. 모 은행의 '축구사랑'카드를 제시한다. 할인된 가격은 리터당 1880원. 태어나서 한 번도 축구장을 가본 적은 없다.

[짬뽕 2인분] 오랜만에 소식이 닿은 친구와 밥 한 끼를 했다. 자칭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는 친구 녀석이 신촌의 한 짬뽕집으로 앞장섰다. 2인 메뉴가 1만8300원. 친구 녀석이 요즘 TV 광고에 자주 나오던 한 소셜커머스(Social commerce) 업체의 할인 쿠폰을 내민다. 할인된 가격으로 9100원. 어렵사리 구했다는 친구는 "요 티켓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며 생색을 낸다.

[콘 아이스크림 3개]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담배가 떨어져서 편의점에 들렀다. 이제 막 학원을 마친 듯 보이는 여학생 셋이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고 있다. 개당 1500원하는 콘 아이스크림이다. 때마침 [2+1] 행사 품목에, 한 여학생이 하루 한 번 15% 할인해주는 통신사 카드를 내민다. 계산가격 2550원. 개당 850원에 구매한 셈이다. 친구들의 칭찬에 그 여학생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투덜거린다. "이렇게 안 하면 엄마한테 받는 용돈으로 며칠 쓰지도 못해."

치솟는 물가에 허덕이며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초상이다.

기자는 지난 10일, 한 공립대 캠퍼스에서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가>에 대해 간단한 설문 조사를 벌였다. 대상은 흔히들 '주머니 사정이 가볍다'고 일컫는 대학생. 그중에서도 사회·경제의 현실을 절실히 체득하고 있을 취업준비생(4학년) 60여 명.

앞서 소개한 세 품목에 대한 이들의 희망적정가는 얼마일까. 휘발유는 평균 1876원, 식사 두 끼 가격 8200원, 아이스크림 한 개 741원. 카드사 할인, 인터넷 쿠폰 할인, 통신사 멤버십 할인…. 이른바 '있는 할인 없는 할인을 총동원'해야 얼추 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

정부는 고삐를 매지 못한 물가에 대해 "불가항력적"이라고까지 얘기했다. 조금 더 싼 곳, 조금 더 큰 할인을 찾아 국민들은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를수록 할인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카드 광고, 보험 광고, 패스트푸드 광고, 심지어 청바지 광고까지. TV 광고마다 할인 혜택과 저렴한 가격을 직설적으로 피력한다. 소셜커머스 업체도 2010년 한 해 에만 97개가 새로 개업했고, 올 1분기에 집계된 업체 수는 6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과연 '위대한 할인'이라 받들 만하다. 하지만 '할인 경제'의 본질은 그리 위대하지만은 않다.

'할인 경제'의 초라함

할인 경제는 특권 지향적이다. 할인 혜택은 특정 집단의 소속일 경우에만 제공된다. 통신사가 되었든, 카드사가 되었든, 심지어 작은 대학가 식당의 회원이든 간에, 할인 혜택의 수혜자는 그 집단에 친화적인 사람들로 한정된다. 해당 카드사에 일정 연회비를 내는 사람, 전월 사용금액이 일정량이 되는 사람, 최소한 해당 통신사를 이용하는 사람만 할인받는다. '제값(할인가)'에 사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그 집단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고스란히 '비싼 값(정상가)'에 구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만약 할인의 수혜자가 사회적 약자 중심이라면 할인 경제는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칭 '복지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할인 경제는 아직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측면에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할인을 하는 입장에서도 문제는 드러난다. 혜택이라는 말로 포장은 되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할인 경제는 철저히 자본 지향적이다. 할인이라고 '떠벌릴' 수 있는 곳은 대형 마트나 거대기업의 계열사들이다. 동네 음식점에서 할인이라고 말이라도 꺼내보려면 그만큼 정상가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중소상인들도 우리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행태를 무턱대고 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허울뿐인 할인'이 경제활동 전반에 팽배해졌을 때, 우리에게 돌아올 악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 마트의 할인가가 '참된 할인'이라고도 쉽게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광고 속 입에 발린 말처럼 정말로 손해 보고 판다고 느끼는 국민이 있겠는가.

'할인 경제'의 끝은 인간 소외

할인 경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소비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가진 할인 자격이다. 늘 할인 받고 이용하던 주유소도 카드를 두고 오면 비싼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앞선 이야기의 여학생은 오늘 하루 더 이상 편의점에서 15% 할인을 받을 수 없다. 할인 조건에 하루 한 번이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가게에 다시 돌아가 같은 아이스크림을 사려면 4500원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할인 자격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거래 속에 인간으로서 구매자는 아무 가치도 존엄성도 없다.

지금은 사라진 동네 장터에서, 혹은 어린 시절 군것질을 하던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보던 인심은 없다. 얼굴 대 얼굴의 거래는 사라져 가고, 멤버십 대 멤버십의 거래만 가득해 간다. 사람들은 돈과 함께 자신들이 확보한 멤버십을 지불해서 물건을 산다. 19세기 사회학자들은 화폐의 등장에 대해 '물질이 돈으로 추상화될 것'을 염려했지만, 이 시대는 심지어 인간도 멤버십으로 추상화 되어 팔린다. '할인 경제'의 어두운 단면이다.

'절름발이' 대한민국

끝으로 소개하고픈 한 마술사 이야기가 있다.

19세기 영국, 시골에서 부푼 꿈을 안고 도시로 상경한 그는 런던 변두리의 한 허름한 극장에서 마술을 공연하고 받는 돈으로 살아간다. 그의 장기인 공간이동 마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10펜스씩을 기꺼이 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10펜스를 내고 그의 공간이동 마술을 보려는 사람은 줄어든다. 그는 고심 끝에 절름발이인 양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절름발이가 무대 위에 설치된 두 상자 속을 잠깐 사이 넘나드는 것에, 사람들은 다시 10펜스씩을 내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공연은 여전히 10펜스에 팔리지만,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계속 절름발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술을 그만두기까지는.

이 시대의 '할인 경제' 속에서, 우리는 이제 '절름거려야만' 제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 모두가 똑바로 걸어도 치솟는 물가와 불안정한 서민 생활을 다잡기 힘든 시기다. 모두를 절름발이로 만드는 기만적 세태에 대한 반성 없이, 표면적인 물가안정에만 골몰하고 있는 정·재계의 흐름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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