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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에 땅 잃었지만... 새 희망 일군다

사라질 뻔한 경남 양산 '원동딸기'를 지키는 농민들

등록|2011.04.13 14:18 수정|2011.04.13 14:18

▲ 먹음직스럽게 익은 원동딸기. ⓒ 엄아현


"원동딸기가 사라졌다고요? 천만의 말씀! 보세요. 이게 원동딸기예요."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서 출하를 앞둔 딸기를 포장 작업하던 최동명(63)씨가 손사래를 쳤다. 최씨는 "가진 기술도, 개발한 종자도 그대로인 당도 높고 향 좋은 원동딸기가 여전히 재배되고 있어요. 1970년대 중반부터 생산되던 대표 국산 품종인 원동딸기가 어디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있나요"라고 말하며 다시금 딸기 포장에 몰두했다.

4대강 사업... 평생 일군 딸기밭을 잃다

일본 품종이 대세를 이루던 딸기 시장에서 대표 국산 품종으로 자리잡은 원동딸기. 낙동강변 사질양토에서 자라 당도가 15.7브릭스(Brix : 과일이나 와인의 당도 측정단위)로 높고 향이 좋아 인근 대도시는 물론 수도권에서도 큰 인기를 누려왔다.

원동딸기 생산지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일대다. 90만㎡ 부지에 100여 농가가 매년 2800톤에 이르는 딸기를 생산해, 단일 재배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그 명성은 지난해로 사라졌다. 재배단지가 통째로 4대강 사업부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용당리에서 30년간 딸기농사만 지어온 최씨는 "진짜 막막했죠.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정부가 야속했죠. 이제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눈물만 났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농민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충분한 보상뿐이었다. 보상은 세 갈래로 나눠 이뤄졌다. 먼저 용당리 밭에 있는 비닐하우스 등을 보상하는 지장물보상, 감정가대로 땅주인들에게 땅값을 쳐주는 토지보상,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는 영농보상 등이다.

문제는 토지의 절반 이상이 소유자와 경작자가 서로 달라 보상금 쪼개기를 해야 했다. 결국 농지를 임대해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영농보상에 불과했다. 영농보상은 재배 중인 농작물의 2년치 총수입을 보상한다는 것이지만 1㎡당 3400원으로 낮게 책정된 보상가격 때문에 농민들의 한숨은 늘어만 갔다.

▲ 최동명씨가 딸기 포장 작업에 몰두 중이다. ⓒ 엄아현


그래도 농사만 지을 수 있다면

하지만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농지를 찾아 100여 명의 농민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상당수 농가는 딸기 시배지인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으로 이사했다. 한 농가는 배내골로, 또 어떤 농가는 원동면 중심지인 원리마을과 함포마을 등지에 자리 잡았다.

최씨는 용당리와 같이 대단위 재배농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을 찾다 12명의 농가와 함께 절대농지가 있는 원동면 화제리에 안착했다. 그리고 화제딸기작목반을 조직해 원동딸기의 명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최씨는 "3.3㎡당 1500~2000원 하던 임대료가 3500~4000원으로 급등해 당황스러웠어요. 4대강 사업으로 경작지를 잃은 많은 농민들이 대체농지를 찾아 헤맬 때였기 때문에 그나마 농지가 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죠. 모두들 경작지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기존보다 1/3로 축소해 임대했어요"라고 말했다.

4만2900㎡에 100여 동의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졌다. 90만㎡가 넘던 용당리 농지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작은 규모지만 이 땅에서 희망을 찾기로 했다.

흙도 물도 달라... 고군분투 끝에 딸기 되찾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농민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 찾아왔다. 흙 때문이다. 용당리 일대는 사질토였지만 화제리는 점질토다. 사질토는 모래가 섞여 있는 흙이라 알갱이 사이에 공간이 있어 물이 잘 스며들고 또 잘 빠진다. 반면 진흙 성분이 많은 점질토는 땅심은 좋지만 물이 잘 통하지 않아 밭갈이 작업이 녹록치 않다.

"1번만 하면 되는 밭갈이를 5번을 반복해서 겨우 일궜어요. 또 겨울 동파로 얼음이 떨어져 비닐하우스가 찢어지면 물이 밖으로 빠지지 않고 그대로 스며들어 겨울철 관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최씨는 과도한 수분으로 혹시 당도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질과 일조량도 달라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농민들이 아니었으면 첫 농사를 망칠 뻔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2~3배 이상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딸기농사에 매진했고, 지난해로 사라지는 줄만 알았던 원동딸기를 올해도 어김없이 생산해냈다. 지난해 11월 19일 첫 출하를 시작으로 올해 4월 중순까지 싱싱한 원동딸기를 계속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 딸기 수확을 하고 있다. ⓒ 엄아현


원동딸기 이어 수박도 재배

하지만 매년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듯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수질개선이나 시설지원이 되지 않는다면 맛에 대한 신뢰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이는 원동딸기라는 브랜드 네임을 잃게 되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질개선. 비닐하우스 살수 후 흘러내린 녹물이 하우스를 뒤덮어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비닐하우스 공기를 환기시키는 데 필요한 개폐기와 농지를 덮어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부직포 등 농업환경이 달라져 개선되어야 하는 시설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홍보 역시 중요하다. 원동딸기가 재배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찾지 않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딸기 수확이 끝나고 나면 이제 후작으로 수박 재배를 시작합니다. 원동딸기뿐 아니라 원동수박도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고, 어디 가서 소문 좀 내주세요"라며 변함없는 관심을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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