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자전거 여행길에 마주친 '야동마을', 진짜 있네!

자전거 타고 달린 섬진강변...그러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등록|2011.04.14 11:48 수정|2011.04.15 14:19

▲ 섬진강가의 저런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픈 소망을 품고서 일년을 기다렸다. ⓒ 김종성


올해는 겨울이 떠나면서 남겨둔 꽃샘추위의 기세가 참으로 끈질기다. 4월달에 들어섰는데도 아침, 저녁엔 시려운 손을 호호불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다. 동네 개천가를 노랗게 물들이며 무성하게 피어나는 개나리꽃을 보니 곧 벚꽃이 피어나겠구나, 올해는 꼭 소망을 이루어야지 하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소망이란 건 바로 섬진강변 벚꽃나무 아래서 하룻밤 야영을 해보는 것이다. 일명 '낭만 야영을 위한 자전거 여행'.

서울에서도 벚꽃이 핀다하고 혹시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구례읍 문화관광과에 문의해보니 웬 걸 올해는 꽃샘추위가 2번이나 와서 평소보다 늦은 이번 주에 와서야 벚꽃이 활짝 피고 있단다. 세월이 그러하듯 벚꽃도 사람 안 기다려 주기로는 만만치 않기에 열일을 제치고 섬진강을 향해 가는 무궁화호 밤기차를 타러 갔다. 애마 자전거에 낭만 야영을 위한 텐트와 침낭을 싣고서.

텐트외에 코펠과 버너도 같이 넣을까 했는데, 짐도 많아지거니와 별미로 유명한 섬진강변의 식당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야박한 여행자가 되고 싶진 않아 야영장비만 챙겼다. 가뜩이나 자전거도 작은 사이즈인데 텐트, 침낭, 매트를 매달으니 살찐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낭만이 될지 만용으로 끝날지 걱정은 좀 되었지만 아무튼 떠나 보기로 했다. 우물쭈물하면 벚꽃은 어느새 지고 마니까.

▲ 고맙게도 철도공사 직원이 알려준 넓은 자리에 애마 잔차를 보관해 두니 기차 여행이 더욱 편안하다. ⓒ 김종성


신새벽 남원역의 추억

서울 용산역에서 10시 50분 발 무궁화호 야간 열차를 타고 춘향이의 고향인 남원역을 향해 달린다. 기차표를 살 때 철도공사 직원이 자전거 헬맷을 쓴 나를 보더니 열차의 3호차 칸에 가면 장애인의 휠체어를 놓기 위한 넓은 자리가 두군데 있으니 그곳에 묶어두라고 고맙게도 귀띔해준다. 쿠궁쿠궁 바퀴소리 정다운 기차여행이 오랜만이어서인지,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떠올라 설레서인지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이 흐르더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에 기차는 남원역에 잠시 멈춰서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고요함과 적막함이 안개와 더불어 감싸안고 있는 새벽녘 기차역의 분위기는 딴세상에 온듯 묘한 기분을 준다.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며 같이 내린 한 무리의 여자분들은 한동안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더니 그새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고, 나 혼자 대합실로 들어가 가지고 온 매트와 침낭을 바닥에 깔고 기차에서 못다한 잠을 청해본다.

아침 6시 반, 대합실 불을 환하게 켜서 눈이 부시게 날 깨운 사람은 역내 매점 아저씨.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점잖게 생긴 어떤 아저씨로 다가와 말을 붙이더니 예수님 얼굴이 그려진 안내장을 읽어 보라고 주면서 짐도 많은데 하며 미안해 하신다. 이 시간에 부지런도 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아저씨의 그런 전도가 밉지 않아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어쩌다보니 주로 전라도 지역 관광이 주제가 되었다. 남원에는 처음 왔다고 하니 기념으로 사주겠다며 매점에서 두유 한 병을 사서 건네 주신다. 이른 아침엔 초겨울처럼 추웠는데 따뜻한 두유를 마시니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 운동장에 크고 멋들어진 나무 한 그루가 학교의 역사를 말해주는 금지면에 있는 금지 중학교 ⓒ 김종성


남원에서 화개까지 봄날의 섬진강변  

남원에서 가고 싶었던 광한루를 향해 달려 갔더니 시간이 너무 일렀다. 입구의 커다란 나무 대문 사이로 광한루를 감상하는 꼴이 안 돼 보였던지, 보수 작업을 하던 아저씨가 잠깐 들어가 맛만 보고 나오라며 문을 열어 주신다. 그 덕에 속성이지만 가까이에서 광한루를 감상했다. 광한루 앞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따라 난 산책로 강둑을 달려 곡성으로 향한다. 이곳에도 이른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분들이 많이 보인다. 나무나 정자 기둥에 반복해서 등짝을 부딪치는 것이나, 어색한 폼새로 뒤로 열심히 걷는 모습은 전국 공통의 운동방식인 것 같아 아침부터 실없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없이 역사만 남아있는 쓸쓸한 주생역을 지나 얼마쯤 달렸을까 길가의 작은 팻말에 금지 중학교라고 써있고 저 앞에 소담한 교정이 보인다. 팻말 옆 비석에 이곳은 김주열 열사의 고향으로 그는 금지중학교 6회 졸업생이라고 써 있다. 그는 고교 1학년때 이승만 정권 의 3·15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시위에 갔다가 4·11일 마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후 4· 19 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네에 그를 기억하게 하는 기념관과 묘역이 크게 지어져 있다. 나는 그가 졸업했다는 금지중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크고 멋들어진 나무 한 그루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 심청이의 고향인 곡성군은 이제 아름다운 기차마을로 유명해졌다. ⓒ 김종성


하천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섬진강으로 변해 눈 앞에 나타난다. 강변을 오가는 명물 증기 기관차 소리가 정겹기도한 곡성군에 도착한 것이다. 자전거 탄 여행자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게 된다. 지금껏 달려온 매끈한 찻길인 국도에서 벗어나 수더분한 산책로겸 강변길로 들어서니 흐르는 강물소리가 청명하게 들리고, 화려하게 핀 벚꽃나무까지 나타나니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온다.

구제역 파동으로 섬진강 십리 벚꽃축제까지 취소된 마당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소 몇 마리가 강가에서 풀을 뜯고 있는게 아닌가. 소리까지 내며 맛나게 잡초들을 먹고 있는 소들이 더없이 행복하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일년중 잔칫날에나 가끔 고기를 먹어도 좋으니 가축들을 공장같은 좁은 축사에 몰아 넣어 키우지 말고, 종종 저렇게 햇살 가득한 야외에서 자유를 누리게 했으면 좋겠다.

▲ 벚꽃나무는 푸릇푸릇한 신록으로 변하고 있는 강변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고 멋스럽다. ⓒ 김종성


강변길이 끝나면 다시 만나는 찻길인 17번 국도를 타지 말고, 앙증맞게 작은 구름다리인 '세월교'를 건너 곡성 섬진강 천문대가 있는 건너편 강변길로 건너간다. 차량들과 같이 달려야 하는 17번 국도와 달리 길가에 핀 벚꽃나무들을 벗삼아 한가롭게 달릴 수 있는 13킬로미터의 아주 좋은 길로 구례구역 앞까지 쭉 나있다. 이 길위에서 처음으로 단체로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마주쳤는데 서울 한강에서와 달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반갑게 흔들며 "안녕하세요!" 인사말까지 나눈다.

길가엔 벚꽃 이외에도 하얀 목련과 보기드문 자목련, 개살구꽃나무가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개를 잠시 숙이면 땅 위에선 노오란 민들레와 색이 곱기도 한 귀여운 봄까지 꽃, 제비꽃이 웃음지으며 얼굴을 들고 있다. 벚꽃나무가 워낙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그쪽에 시선이 쏠리다보니 자칫 그냥 스쳐 지나갈뻔 했던 봄날의 소중한 선물들이다.

▲ 섬진강가의 마을엔 벚꽃외에도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 김종성


섬진강변을 아우르는 절벽위의 암자, 사성암

구례구역앞을 지나 만나는 861번 국도를 타고 전라남도를 건너서 경상남도 하동에 있는 화개장터까지 달려간다. 굳이 유명한 쌍계사 벚꽃 십리길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강변로 양옆엔 화려하게 서 있는 벚꽃나무들이 치렁치렁 하늘을 가릴 정도다. 봄꽃놀이에 춘심을 못 이긴 관광객들은 아예 섬진강가에 들어가 강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무릇 강변이란 이런게 진짜 모습인데 내가 사는 동네의 한강도 강이지만 한가로이 발을 담글 수 있는 강변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울뿐이다.

▲ 야동마을 버스 정류장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시골 버스를 기다려 본다. ⓒ 최은경


달리던 애마 자전거를 급히 세우게 한 표지석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야동 마을'이다. 인터넷에서나 보았던 것으로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칠 줄이야. 버스 정류장에도 분명히 쓰여있는 야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보니 피식 웃음도 나고 의도하지 않은 그 얄궂은 운명이 안 됐다. 사람 이름 고치듯 '이상한' 동네 이름도 개명을 한다니 내년에 이 길을 다시 오면 어떤 이름으로 바뀔는지도 모르겠다.

▲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의 풍모와 지리산, 구례읍의 풍경이 정답게 바라다 보이는 곳이 사성암이다. ⓒ 김종성


높은 곳에서 섬진강의 유장함과 논밭들 구례읍 그리고 지리산까지도 시원하게 조망하는 유명한 곳이 이 강변길에 연결되어 있다. 바로 사성암이란 암자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란다. 밑에서 보니 까마득히 산꼭대기의 깍아지른듯한 절벽에 두 채의 암자가 정말 신묘하게도 붙어있다. 해발 500여 미터 정도의 산이라니 굳이 왕복 3천원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 올라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마을 버스를 이용하는덴 이유가 있었다. 높이는 낮은 산이었으나 허벅지가 터질것 같은 가파른 경사는 사성암까지 가는 1시간여 동안 끝없이 이어진다. 고행의 반복끝에 도착한 사성암은 그 독특한 모습 말고도 섬진강이 흘러가는 풍경하나로도 만족감을 안겨다 주는 곳이다. 사성암을 품은 오산엔 산행하기 좋은 등산로가 있다니 다음엔 그곳으로 올라가야 겠다.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즈음 섬진강변의 낮과 밤은 너무도 다르다. ⓒ 김종성


긴 시간의 자전거 라이딩에 가파른 사성암 산행까지 치르고 나니 다리가 절로 후들거린다. 겨우겨우 페달을 밟아 남도대교를 건너 화개장터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흥겨운 장터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벚꽃나무가 서 있는 강가의 공터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펼치자마자 바로 들어가 누워본다. 아, 드디어 일년을 기다린 소망을 이루는구나. 감격때문인지 피로때문인지 자는 지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싹한 추위가 느껴져 벌써 아침이 왔나하고 눈을 떠보니 아직 한밤중이다. 다시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화개장터내의 어느 민박집 문을 두드렸다. 주인 아저씨는 봄철 강가에서 TV 오락 프로그램 1박 2일을 흉내내다간 입돌아간다며 걱정해주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섬진강가의 봄은 아직 다 오지 않았다.

▲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남원역에 내려서 곡성역, 구례구역을 거쳐서 화개장터까지의 풋풋한 섬진강변길을 달려갔다. ⓒ NHN


덧붙이는 글 4월 12일 화요일날 다녀왔습니다. 2번의 꽃샘추위로 인해 이번 주말까지 섬진강 벚꽃의 향연이 계속된다는게 주변 상인들의 중론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