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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백남준의 '최초의 휴대용 TV'랑 똑같네!

'미디어스케이프-백남준의 걸음으로' 전시회, 백남준아트센터에서 7월 3일까지

등록|2011.04.20 11:16 수정|2011.04.20 11:16

▲ 배남준아트센터(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번지) '미디어스케이프전' 대형포스터 ⓒ 김형순


'미디어스케이프-백남준의 걸음으로'는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가 올 들어 선보이는 첫 전시로 7월 3일까지 열린다. 백남준의 작품만 아니라 백남준의 기발한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에서 영감을 받는 국내외작가의 것도 50여 점이 소개된다.

백남준(1932~)은 동경대와 뮌헨대에서 음악을, 쾰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역으로 세계미술사에서 유래가 없는 시간이 공간이 되고, 음악과 철학과 테크놀로지가 미술이 되는 비디오아트를 창시했다. 이우환도 점은 공간이고 선은 시간이고 점이 모이면 선이 된다고 했는데 그와 비슷한 원리다.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그 후예들은 컴퓨터를 만나면서 비디오아트를 미디어아트로 발전시킨다. 이런 매체의 등장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180도로 바꿔놓았고 백남준의 말대로 시간적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하게 했다.

서양기술과 동양사상 짝짓기

▲ 백남준 I '최초의 휴대용 TV(First Portable TV)' 1973. 이런 작품은 'TV 촛불'과 발상법이 다르지 않다 ⓒ 김형순


백남준은 1965년 TV 모니터로도 시적 분위기가 넘치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을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번에 백남준아트센터 1층에서 선보인 '최초의 휴대용 TV'도 그렇다. 그 모양은 비록 단순하지만 미디어적 상상력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스마트폰이 여기서 왔구나(첫 번째 사진참고) 싶다.

이 작품을 보면 한국이 IT강국인 것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서양의 기술이 완전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정신을 만나야 한다는 백남준의 예언이 모바일시대에 적중한 것인가. 백남준의 이런 장난감 오브제가 IT혁명을 가져올지 누구 알았으랴.

"빌 클린턴이 내 아이디어를 훔쳤다"의 후속작

▲ 백남준 I 'W3' 64개의 TV모니터 1994 ⓒ 김형순


역시 1층에 전시된 1994년 작인 'W3'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64대 컬러 TV 멀티모니터로 된 이 벽면설치작품은 천정과 벽면을 타고 지그재그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W3'은 '월드 와이드 웹(www)'을 연상시켜 웹과 디지털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1974년 '전자초고속도로(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를 록펠러재단기금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1992년 미대통령 선거 중 클린턴이 느닷없이 미국경제회생이라는 명목으로 '정보초고속도로'를 세우겠다고 하자 1993년 백남준은 '빌 클린턴이 내 아이디어를 훔쳤다'라는 위트 넘치는 작품을 발표해 그의 도용을 꼬집었다. 'W3'는 그 후속작이다.

소리가 그림 되는 '사운드 드로잉'

▲ 김기철 I '사운드 드로잉(Sound Drawing-Solo, Duo, Trio, Quartet)' 혼합매체 2001-2011 ⓒ 백남준아트센터


2층은 백남준뿐만 아니라 그의 영감을 받은 국내외작가들 작품도 선보인다. 위 한국작가 김기철의 작품은 백남준이 청각(sound)을 시각(sight)으로 전환한 것처럼 턴테이블에 전도체인 흑연에 드로잉을 그리면 소리가 난다. 요즘 유행하는 '사운드 아트'와 닮았다.

또한 그런 방식으로 백남준의 육성이 8개 트랙에 담겨 있어 관객이 턴테이블에 드로잉을 그리면 "존 케이지, 뒤샹"을 부르는 백남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건 백남준의 영감을 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래의 미디어환경 제시

▲ 백남준 I '문학은 책이 아니다(Literature is not book)' 1988. 'TV 샹들리에(Chandelier) 1번' 1989. 미술관에서 이곳을 'TV 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특별코너로 만들었다 ⓒ 김형순


2층에 있는 이 작품은 백남준이 미래의 유동적인 미디어환경(Mediascape  미디어스케이프, 미디어지형, 미디어방식, 미디어풍경 등 해석)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코너에 전시된 'TV 소파', 'TV 샹들리에', 'TV 시계'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주 3천년대를 언급하곤 했는데 "당신은 아는가? 언제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TV 의자가 놓이게 될는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런 작품을 만든 건 너무나 백남준스럽다.

각별한 영웅 이순신의 화신, 거북선

▲ 백남준 I '프랙탈 거북선(Turtle Ship)' 350×670×400cm 1995. 1995년 대전엑스포 때 출품된 작품으로 400여개의 TV모니터와 100여개의 오브제가 혼합 ⓒ 김형순


이번 전에서 역시 큰 볼거리는 거북선이다. 이순신장군은 알다시피 군인이면서 시인이었고 지략가이면서 발명가였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우리에게는 각별한 영웅이다. 그의 창의적 발상과 위기관리의 리더십 그리고 조국애는 백남준에게도 큰 감동을 준 것 같다.

이 작품은 이순신장군이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발명한 상상력에 대한 백남준 나름의 경의일 것이다. 인형, 선풍기, 차 문짝 등 100여 개의 버려진 잡동사니를 400여 개의 TV와 함께 설치되었다. 거북선을 형상화한 작품 중 이처럼 웅장하고 위력이 있어 보이는 건 처음이다. 마치 방황하는 현대문명에 길을 제시할 듯한 기상이다.

백남준의 조수 겸 제자였던 얀 페르벡 외 작품들

▲ 얀 페르벡(Jan Verbeek) I '눈앞의 밝은 미래(Bright Future Ahead)' 2006. 왼쪽부터 백남준아트센터 박만우 관장, 이수영 큐레이터, 얀 페르벡 작가 ⓒ 김형순


또한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이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미대)에서 교수일 때 배출한 외국제자들 작품도 많다. 네덜란드출신 얀 페르벡은 그의 제자면서 조수였다. 위 작품은 일본에서 3년간 작업한 것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하지 않는 움직임을 포착하여 탄탄하게 안무된 무용처럼 보이게 한다.

이밖에도 역시 백남준의 미국제자인 빌 비올라를 비롯하여 루카스의 '녹아내리기'와 90년대 웹아트의 선구자인 조디의 '스크린 오류', 에이케의 '유토피아-미래의 과거', 댄 마이클셀의 '인공기관' 그리고 한국작가 양민화의 '묵상'과 조은지의 '변신' 등도 선보인다.

서울역 앞에 설치된 백남준의 공공미술

▲ 백남준 I '모음곡(Suite) 212 중 '패션 애브뉴(Fashion Avenue)' 1975 ⓒ 백남준아트센터


그리고 이번에 백남준이 미국 13번 채널 WNET를 위해 만든 '모음곡(Suite) 212' 연작도 선보인다. 이것은 연작 30개로 구성된 5분짜리 비디오작품이다. 백남준이 뉴욕에서 개인적으로 스케치한 풍경으로 미디어 통제사회에 대한 백남준의 비판이 담겨 있다.

이 시리즈 중 하나인 '패션 애브뉴(Fashion Avenue)'가 가나갤러리와 협력으로 지난 4월 15일부터 31일까지 서울역 앞 대형 LED화면에 담겨 전시된다. 백남준이 콜라주 기법과 화려한 채색으로 디자인한 이 비디오작품을 당분간 거리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여간 이번 전을 통해 서구인들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백남준의 다원예술의 진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천재의 후예들이 백남준의 정신과 철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 백남준 라이브러리 내부모습 ⓒ 김형순

백남준 라이브러리는 백남준아트센터는 기존 도서관개념과 다른 백남준의 독특한 사유를 체험할 수 있다. 위치는 백남준아트센터 1층에 있고 4월 15일에 개관했다.

이 도서관은 시각 및 기능적으로 진일보된 문화예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 백남준과 관련한 자료를 비롯하여 예술, 인문학, 사회학 등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2500여 권의 도서자료와 미디어자료를 비롯한 500여 건의 비도서자료가 비치되었다.

또한 아트센터를 방문하는 관람객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라이브러리 비치 자료 이외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 아카이브 컬렉션 및 비디오 아카이브를 비롯한 희귀자료는 이메일예약을 통해 이용가능하다. 국내에서 희구한 백남준 관련자료를 볼 수 있다.

주 구조물과 주변 공간 및 시간과의 통합성을 지향하는 이 도서관의 설계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인 황나현(Nahyun Hwang)와 데이비드 문(David Eugin Moon)[NHDM]이 맡았고 설계 및 시공은 인타크(Intarc)가 담당했다. [미술관자료 참고]

끝으로 백남준아트센터 새로 부임한 박만우 관장과 짧은 대담을 여기에 소개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운영의 차별화 전략을 묻자 "2011년도 그렇지만 특히 2012년 백남준 탄생 80주년, 그의 스승 격인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이라 이와 맞물려 있어 그런 점에 초점을 두는 전시가 될 것 같다"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기존의 특정매체중심에 안주하지 않고 그걸 넘어서 다원예술 쪽 특히 현장성, 즉흥성이 강조되는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 쪽에 관심을 두어 국내미술에 활력을 주고 너무 지적이거나 차갑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획전략에서는 "백남준은 지적, 인문학적, 미술사적으로 다 소화하기 힘든 큰 자산이기에 우리가 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제적 자문도 폭넓게 수용하고 다만 백남준 담론의 장을 열어주는 플랫폼이나 허브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개발전략으로는 "백남준의 외연을 확장하여 미술뿐만 아니라 인문학, 건축, 디자인, 문화콘텐트 등과 연계하고 싶고 그밖에도 외국의 제안들 예컨대 프랑스국립미술사연구소에서 내년에 나올 어린이용 백남준위인전 출판에도 간접적으로 관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http://www.njpartcenter.kr/kr/ 관람무료. 약도는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 참고
관람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8시까지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소 446-905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번지 031)201-8553 031)201-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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