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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현대차 노조, 영원한 건 없다

[주장]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길

등록|2011.04.21 10:55 수정|2011.04.21 12:34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19일 밤, 또 소줏병을 따고 말았다. 아이들 앞에서 아빠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교육상 좋지 않다고 해서 가급적 자제하기로 약속했는데 며칠을 가지 못했다.

이날 BC <PD수첩>에서 방영된 '우리는 살고 싶다 - 쌍용자 해고자 2년'편을 보면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해고 노동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내가 작년 4월 생을 마감하고 열 달 만에 당신마저 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등졌다는 해고자 임씨의 소식을 접하며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참담했다.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2년. 14명이 죽었고, 그중에 절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해고자 193명을 대상으로 한 건강진단에서 10명 중 8명이 중증도 이상의 우을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전기와 물이 끊긴 채 파업을 이어가다 77일 만에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고, 5천 명의 직원 중 절반이 해고되거나 무급휴직을 하거나 희망퇴직을 해야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무급휴직자 순환근무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죽어가고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다. 세간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져간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절망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옥쇄파업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정부의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행진하는 모습. ⓒ 유성호


쌍용차 해고 노동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차는 2010년 매출액 15%, 영업이익 44%, 당기순이익 77%가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이 5조2천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조 원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1월 22일 신문마다 일제히 실렸다. 순이익 5조. 그 액수의 크기가 얼마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사상 최고라는 영업이익의 발표 뒤 작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 떠올려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2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는 파견법에 따라 도급노동자가 아닌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해야 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깡그리 무시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162억여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현대차. 사상 최고 5조원 순이익에 뒤따를 성과급 등 각종 잔치상에,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한자리 끼어들 수 있을까?

작년 11월에 있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투쟁은 연행자 속출, 16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 등 적지 않은 휴유증을 남겼다. 비록 어렵게 타협의 실마리를 찾긴 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현대차 측의 고소고발·손배소 철회, 지도부 신변보장, 정규직화 대책 등에 대한 특별협의체 대화는 별 진전을 만들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 조계사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조합원 2명이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 30m 광고판 위에 올라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올해 2월 16일 뉴스였다. 여전히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그렇게 계속됐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노동을 하면서 임금과 대우에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이 기회에 해결해야 되지 않는냐는 여론이 들끊었다. 국회와 민주노총, 사회단체가 나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나서야 되지 않느냐, 곧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과 희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12월 8일 비정규직 투쟁 지원을 위한 현대차 정규직 노조 파업 찬반 투표가 있었다. 개표 이전에 협상이 이루어져 개표 결과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나중에 알려진 개표결과는 씁쓸했다. 전체 조합원 4만4093명 가운데 3만5867명(투표율 81.3%)이 투표해 9004명(20.4%)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는 2만5795명(77.2%), 나머지 1068명(2.4%)은 무효표를 던졌다고 한다. 비정규직 투쟁 지원 파업이 부결된 것이었다.

2004년 이래 생산 정규직 신규채용 동결... 노조 책임 없나

이런 현대차 노조가 정규직 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채용을 요구하는 단체협약안을 마련하고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난 여론이 높다. 이미 다른 기업에서도 실시하고 있고, 장기 근무한 노동자에게 보상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라고는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조 이기주의', '정규직 대물림'이라는 비난에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 언론, 그리고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단체까지 가세하고 있다.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안건을 제출하고 노조간부들이 모인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겼다고 하니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차는 2004년 이래 생산직의 정규직 신규채용이 동결되고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8천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기업의 고용유연화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정규직 노조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저항다운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인원 감축을 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고, 같이 일하던 동료가 비정규직 옷을 입고 옆에 섰을 때 모른 척 고개 돌린 것은, 보여주지 말았어 할 정규직 노조의 모습이었다. 비정규직 투쟁 지원을 위한 파업 찬반 투표 반대 77.2%, 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 채용 단협안 대의원대회 통과. 두 가지 사안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역사 진보의 수레바퀴'라고 자처하는 노조의 이런 모습, 낯부끄럽지 않은가?

▲ 2월 16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광고판에서 고공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두 명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쌍용차 해고자와 당신들, 언제까지 다를 수 있는가

정규직, 비정규직, 임시직, 영세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같은' 존재이다. 예전에 정규직으로 했던 일을 비정규직으로 해야 하는 비참한 노동 현실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몰아치고 있다.

이 무서운 신자유주의의 광란. 정권은 그 광란이 우리 경제를 지켜줄 것이라고 맹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대형자본은 노동자에게 값싼 노동을, 서민들에게 대형마트에서 하는 일방적인 소비를 강요하면서 부를 축적해가고 있다.

누구나 비정규직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대형마트 시장 잠식에 빚을 안고 문을 닫아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될 수 있다. 자녀의 일자리가 걱정이라서 정규직 장기근속자 자녀의 우선채용안을 상정했다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일자리 지키기를 원한다면, 자식이 정규직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비정규직 해소에 나서야 하는 것이 현대차 노조가 할 일이다.

<PD수첩> '우리는 살고 싶다 - 쌍용차 해고자 2년'. 현대차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 그 비극적인 이야기를 보지 않았으면 꼭 한번 보길 권한다. 쌍용차 해고자와 당신들은 언제까지나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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