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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이보다 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뒤늦게 보고 감동받은 <내 깡패같은 애인>

등록|2011.04.23 13:51 수정|2011.04.23 16:50
작년에 개봉한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은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저예산 영화(8억 2천만원)라는 측면에서 손익분기점을 훨씬 넘기는 선전을 했으며, (거의) 국민배우급인 박중훈(오동철 역)과 젊은 연기파배우로 인정받는 정유미(한세진 역)의 출연은 이 영화의 '내적의미'가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했다.

지방에서 대학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서울로 취업한 20대 후반의 한세진은 회사가 부도나자 깡패가 사는 반지하방 옆집에 들어가게 되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시대적 트렌드가 '88만원 세대'이니, 두 명의 루저가 등장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시사적이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단순히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같은 공간적 처절함만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거다. 즉 20대를 '신기한 관찰대상'으로만 설정한 것이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아픈 것'임을 (관객이) 공명하기를 원했다는 거다.

<내깡패같은애인>의 명장면 "어깨 펴~ 니 잘못 아니야" ⓒ (주)JK필름


동철은 깡패치곤 조금 어설프다. 자주 맞고 다닌다. 나름 서열은 높지만 그것 빼곤 사실 시체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그 세계에서조차) 루저다. 세진은 성적우수장학금을 4년내내 받아봤자, 또 토익점수가 상위 3%안에 들어간다 한들, 사회적 차별의 최전방에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방대 출신이자 여성이라는 조건을 갖춘 루저에 불과하다.

현실은 이런 조건을 '정당한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으로. 어떤 면접관은 시간 없다고 질문조차 하지 않고, 어떤 면접관은 손담비 춤을 추라면서 모욕을 준다. (과장된 묘사이지만, 기업의 압박면접은 사실 이것과 다르지 않다!) 누구는 취업을 빌미삼아 성관계를 요구한다.

사회라는 것이 '정상'이라는 껍데기로 포장만 되어있지, 실상 그 내면은 더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제대론 된 사회'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 껍데기만 보아도 '비정상'의 극치인 깡패 동철이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착해요. 뉴스 보니까 프랑스서는 백수들이 일자리 내놓으라고 다 때려부수고 난리든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그게 다 지 탓인줄 알어.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너도 취직 못한다고 욕 하고 그러지 마라. 정부가 다 잘못해서 그런 거야 이게. 니 탓이 아니라구. 그러니까 당당하게 살어."

승자독식사회의 신기한 점은 이 (지랄같은) 구조가 (매우 견고히) '유지'된다는 거다. 이건 이 사회의 희생자들조차 이 시스템에 동의하기에 가능한 거다. 희생자가 스스로의 피해를 묵인하는데 가해자가 사회적 제재를 받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피해자는 가해자를 '멋지다'고 하며, '롤 모델'로 삼는 판에, 가해자가 더욱더 가혹하게 이 체제의 존속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최초의 피해자는 더욱 '힘들어진' 장벽을 만나게 되고 이는 '도전'에 대한 동기부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 상황에 이르면, 사회는 이들을 루저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동반설명 첨가. "저렇게 게을러터졌으니 저 모양이지." 이 구조의 악순환은 이렇게도 간단하면서도 폭력적이다. 모두가 다 바보이지만 마치 그게 정상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동철만이 이를 정확히 꼬집는다.

그런 동철이 보기에 이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는 깡패라서, 루저의 삶이 대수롭지 않은데, 대학원까지 나온 멀쩡한 옆집여자에게 자신의 찌질한 모습이 투사되는 건 상식적으로 어색하다.

<내깡패같은애인>"나랑은 진짜 다른 앤데요. 그냥 놔두면 꼭 나처럼 되겠어요!" ⓒ (주)JK필름


그래서 동철은 세진이가 취업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 면접을 앞두고 고향에 끌려가게 된 세진이에게 "무조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통보를 한 다음, 동철은 면접실에서 난동을 부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자 한다. 그리고 면접관에게 무릎꿇고 말한다.

"나는요. (…) 만날 쌈질이나 하다 보니까 어영부영 시간이 가드라구요. (…) 그래서 지금 요모양 요꼴로 살고 있어요. 밑바닥에서. 그런데요. 한 애가 있는데요. 걘 나랑은 진짜 다른 앤데요. 그냥 놔두면 꼭 나처럼 되겠어요. 그게 아까워요."

우리가 왜 88만원 세대에 주목해야 되는지 이보다 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는 그만큼 깡패에 눈에도 잘못된 세상이다. 이 세대의 궁극적 비극이 깡패'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경쟁사회'라는 담론에 덮어져있는 (패자는 무엇인 된들 상관없는) '승자독식사회'의 본모습이다.

이런 이야기는 "경쟁을 '하지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좋다는' 경쟁이라는 '이면'이 얼마나 극단적일 수 있는지 알고 좋아하라는 거다. 그래도 좋아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동덕여대 학보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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