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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울림 깊은 명언을 따라서 2] 그레셤의 법칙에 대하여

등록|2011.04.25 14:46 수정|2011.04.25 14:46
처음에는 구두 이야기인 줄 알았다. 원래 영어로는 "Bad money drives out good."이다. 쉽게 옮기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가 된다. 16세기 영국의 무역상이자 왕의 재정고문이었던 토마스 그레셤이 한 말이다. 그래서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지폐 대신 금화나 은화 등이 쓰였다. 이런 주화는 그 액면가와 금속으로서의 실질 가치가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다. 만 원짜리 주화는 만 원어치의 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양화(good money)는 이런 원칙에 맞게 만들어진 주화이다. 

그런데 금화나 은화를 만들어 유통시켰던 당시 유럽 군주들은 이 주화에 몰래 불순물을 섞기 시작했다. 실질 가치가 그 액면가에 못 미치는 주화를 만들고 남은 금이나 은을 자기가 챙겼던 것이다. 규격에 못 미치는 이런 주화가 악화(bad money)이다. 

이런 사실은 차츰 일반 시민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러자 시민들은 실질가치가 더 높은 양화는 집에 쌓아두고 악화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양화는 자취를 감추고 악화만이 화폐로 쓰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 말은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좋은 것이 나쁜 것에 의해 밀려나는 현상이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댓글에 선플보다 악플이 난무하게 된 것, 막장 드라마가 대세인 것, 신망 있던 정치인들은 사라지고 비리, 호색, 철새 정치인들은 잡초처럼 살아남는 것 등이 그러하다.   

좋은 것이 퇴출되고 나쁜 것이 득세할 때 우리의 삶은 더 황폐해지고 고달파진다. 도대체 왜 나쁜 것이 더 번창할까. 스트레스 풀린다고 악플을 달고, 어쨌든 예산 많이 끌어 온다고 비리 정치인에게 표를 주는 경우처럼 우리 스스로가 나쁜 것을 선택하는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이기적 욕심 같은 '우리 안의 나쁜 것'을 극복해야 '우리 밖의 나쁜 것'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레셤 당시에 양화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사라졌다.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나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조화를 이루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화를 짓밟는 힘인 '보이지 않는 발'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발이 손보다 더 강력한 것일 수도 있다.

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기본적으로 더 무질서한 쪽으로 나아간다. 가만히 놓아두면 기계에는 녹이 슬고 밭에는 잡초가 무성해진다. 하지만 녹이 기계가 되고 잡초밭이 채소밭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 이렇게 세계의 보편적인 법칙이라면 나쁜 것이 득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밖의 것에 대해서도 항상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기업도, 법조계도, 군대도, 학교도 그냥 놓아두면 어느덧 잘못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우리 사회를 현재의 상태로 유지만 하려고 해도 감시의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덧붙여서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것은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양화'이기 때문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생물의 진화는 발전의 과정이고 그 정점에 인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진화의 원리에 의해 걸러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생명체란 보장은 없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에 캐롤라이나 쇠앵무새 이야기가 나온다. 이 새는 북아메리카에 살았던 매우 아름다운 새라고 한다. 이들은 사냥꾼이 총을 쏘면 도망쳤다가도 곧 돌아와 죽은 동료 곁에 내려앉아 '동정과 우려의 표정으로 내려다 봤다'고 한다. 그러니 사냥하기 너무 쉬었고 결국 멸종된 것이다. 

인류사를 보아도 가장 훌륭한 유전자는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진지하고 성찰적이었던 사람들은 대개 독신의 삶을 살았다.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고 부처도 그 아들과 일가친척 대부분을 출가시켜 대가 끊겼다. 현재의 인류는 그런 탁월한 사람들의 자손이 아닌 것이다.

사회적 신분이나 부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사리에 밝은 '고위층'이나 부자는 결코 기고만장하지 않는다. 그 지위나 부를 누릴 만한 자격을 자기보다 더 잘 갖춘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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