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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유출 3년, 봄은 왔는가?

[서평] 다시 쓰는 리포트 <태안은 살아 있다>

등록|2011.04.28 14:04 수정|2011.04.28 17:49

▲ <태안은 살아있다> 겉그림 ⓒ 동녘

<태안은 살아 있다>(희망제작소, 동녘 펴냄)는 우리에게 '기름 유출 사고'로 기억되고 있는 '태안 대재앙' 그 3년간의 기록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기름 유출 사고 3년째인 2010년 12월 7일. 지역과 현장 중심의 연구를 통해 살아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 희망을 모색하는 시민참여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책이다.

글을 쓴 사람들은 사회·환경·경제·사회복지·행정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11명. 이들은 3년 동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지역은 물론, 피해를 당하였음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자원봉사자의 손길마저 미치지 못한 곳까지 사고 현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6천억 쓰나미의 비극을 조사 연구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인 셈이다.

태안의 가장 큰 문제는 생활에 대한 만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기름재앙 앞에 할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억울함만 가득할 뿐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에서 소득이 3분의 1이하, 혹은 10분의 1 이하의 참혹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3년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본 태안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자연은 복원력, 치유력, 그리고 생명력으로 기름 재앙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태안에는 과거의 되새기고 싶지 않은 슬픈 추억과 아픔만이 가득한 상처받은 주민들이 남겨져 있다. 진정한 생태계의 복원은 인간 공동체의 복원과 동시에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태안의 파괴된 삶이 복원될 때 비로소 생태계의 치유와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태안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태안은 살아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고의나 과실 아니다" 삼성중공업 책임회피

2007년 12월 7일 새벽에 태안의 바다에 쏟아진 원유는 1만 500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유출량의 두 배이며,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선박 유류 사고의 유출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대참사는 삼성중공업 측이 바다에서의 안전수칙만 지켰더라면, 해상 예인은 위험하다는 경고만이라도 귀담아들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이다. 그럼에도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1월 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고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의 항해일지 조작이 탄로 나자 마지못해 일간지를 통해 <태안사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어쩔 수 없었던 사고인 것처럼.

이후 삼성중공업은 "태안 사고는 고의나 과실로 인한 사고도 아니고 크레인과의 충돌 자체보다 삼성중공업 소유가 아닌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조선에서 나온 기름 때문에 피해가 컸다"며 피해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50억 원으로 제한해달라는 신청을 했다.

2010년 1월 법원은 삼성중공업의 신청을 받아들여 56억 원 한도에서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태안 주민의 삶을 하루아침에 짓밟았지만 피해 규모야 어떻든 삼성은 56억 원 안에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는 이야기다.

태안 유류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법원이 삼성중공업의 편을 들어 제시한 56억 원은 피해 주민 한 사람 당 5만 원정도 배상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참고로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에 따르면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액은 5663억~6013억 원에 이른다.

자살자가 연이어 3명이나 속출하면서 설날을 앞두고 민심마저 흉흉해지자 다급해진 충청남도는 1단계로 1월 29일 1만 9397 세대에 482억 2900만원을 지급했다. 이것은 정부지원금 300억 원에 도비 75억 원과 성금 93억 6500만원을 합친 액수였다. 2단계 긴급 생계지원비는 생활 안정금 지원형태로 4월 21일 1만 4855세대에 431억 100만원이 지급되었다. 이것은 정부지원금 300억 원에 도비 75억과 성금 56억 100만원을 보탠 것이었다. 긴급 생계안정자금은 도합 913억 3000만 원이 지급되었다. 이중 57.8퍼센트인 527억 7400만원이 태안군의 몫으로 배분되었다. -<태안은 살아있다>중에서

눈먼 돈 앞에서 갈라진 주민들

가해자 삼성중공업이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 축소하고자 안하무인일 때 1차 생계지원비가 긴급 지원됐다. 지원금 중 300억 원은 정부가 이미 사고 1주일 만에 충청남도에 지원한 것이다. 이 지원금은 주민의 삶이 위협받건 말건 지원 대상 기준 등과 같은 행정적인 문제와 절차 때문에 3명의 자살자를 내고서야 40일 만에 주민에게 전달됐다.

300억 원은 정부가 공급하는 '눈먼 돈'이었다. 이웃사촌이었던 동네 사람들은 그 돈 앞에서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한 푼이라도 더 갈까 봐 모두 눈에 불을 켰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태안의 주민을 반목하게 한 것이다.

▲ 2011년 태안의 보상금 문제가 궁금해 검색해 봤더니 ⓒ 다음 뉴스 캡처


내 일이 아니라고 한동안 눈에 아른거렸던 태안의 검은 기름을 잊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남의 실수 때문에 화재로 갈 곳 없는 이재민이 되어 정부나 금융기관들이 재난·재해 때마다 약속하는 보상이나 금융지원 같은 것이 '빛 좋은 개살구' 꼴이라는 걸 혹독하게 경험했던지라 태안 사고 직후 쏟아지는 대책들을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그토록 많은 국민의 자원봉사와 관심이 이어진 만큼 어느 정도의 보상은 이뤄졌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3년을 훌쩍 넘긴 지금, 안타깝게도 태안의 봄은 너무 힘이 없어 보인다.

3년이 지난 지금 태안과 태안 사람들의 사정은 어떤가? 이후 사고 지역 일부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는 쇼까지 했던 삼성이 당시 약속한 것들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외국에서는 환경재앙 초래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는가? 삼성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3년 동안 태안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의 재난 대응,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에게 태안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태안을 왜 잊지 말아야 하는가?

사고 발생 초기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질 때, 다른 재난 현장처럼 한 달도 채 가기 전에 이 열기가 사그라지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을 뿐, 폭설로 아쉬운 발길을 되돌릴지언정 봉사행렬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해수욕장 개장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중단한다는 공식적인 발표가 나와도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태안사례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동원참여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적 참여가 봉사활동을 주도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가 스스로 정보 공유와 참여를 통해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분담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이것은 우리 시민사회의 성장과 시민운동의 성숙함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이다. 아울러 자연환경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과 해양 재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도 뜻 깊은 일이다.-<태안은 살아있다> 부록 '100일간의 기적' 중에서

태안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

<태안은 살아 있다>는 2007년 12월 7일 사고 발생부터 3년을 맞는 2010년 가을까지, 태안 기름 유출 사고 관련된 여러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자세하게 다룸으로써 태안 사태는 물론 우리 사회 크고 작은 재난 재해 시 바람직하고 마땅한 문제 해결을 모색하게 한다.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제1장 <검은 재앙>편에서는 사고가 나기 전 태안의 생태 현황,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전모, 가해자 삼성중공업의 책임회피, 태안 사람들의 꺾인 희망과 갈등, 정부의 적절하지 못한 재난대응, 민간과 기관과의 소통 부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방제 참여 현황 등을 들려줌으로써 거대한 환경재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어떻게 사회적 재난으로 발전하는지를 사회·생태·경제학자의 눈으로 분석한다.

제2장 <재난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3명의 행정전문가가 초기 재난관리의 실패를 반성하고 적절하고 바람직한 재난관리 매뉴얼을 제시한다. 제3장 <생존, 그 이상의 삶>에서는 사회갈등 전문가와 소비문제 전문가가 피해 보상 문제 등을 둘러싼 주민 간의 갈등 상황을 분석,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라 사고 직후 매일 급하게 전개되었던 태안 사태를 차분하게 정리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각자 진짜 굶어 죽더라도 우리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돼서 굶어 죽는 거고 살아남는 거면 그 사람 능력이 또 그만큼 살아남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해야지, 더 이상할 데는 없는 거야. 이제 아무리 떠들고 다녀도 누구 하나 우리 편 들어 주는 사람도 없고, 이제 우리들도 자포자기예요. 그냥 너 할대로 해라. 나 10원을 벌어도 내가 알아서 벌어먹을 테니까 신경 꺼라 그 식으로 배짱으로 막 나오는 거예요. 그 전에는 막 절망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그래? 너는 너 할대로 해, 나는 나 할대로 한다. 의지할 데가 없는 거죠. 누구 말도 믿을 것도 없고. 그냥 우리는 의지할 데도 없고, 오로지 우리 앞길 우리가 헤쳐 나간다, 그거밖에는 없는 거예요."(참여자2)

"원래 여기서 민박하면서 농사짓는 거야 우리 먹을 거지, 그냥 자식들 나눠주고. 이쪽 옆에도 고추가 되게 잘 되는데 방제작업 나가느라고 고추를 못 심었어요. 되게 잘 되는 집이거든요. 저 밭이. 근데 지금 풀이 무성해가지고 보기 너무 안쓰러워요. 일당이 7만원,6만원이라니깐 온 가족이 거기 다 매달린 거죠"(참여자 7)

이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이 가장 감명 깊었다는 사고 지역 거주자의 인터뷰 <피해 주민 8명에게 듣는 재난 이야기>는 나 역시 특별하게 읽었다. 제3자의 시각이 아닌 피해당사자들의 재난 발생 경험 그 목소리들이라 2007년 12월 7일 이후 태안의 현실을 가장 잘 알려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부록이지만 본문에 앞서 읽어 본다면 태안 사태를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태안은 살아있다>|희망제작소 기획 11명 공동 집필 |동녘|2010.12.7|값: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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