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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업무 폭증에 시달리고 있다

인문계 고교를 중심으로

등록|2011.04.28 18:47 수정|2011.04.29 09:15

▲ 업무 서류들이 교사들의 책상을 잠식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 신남호


현재 우리의 학교현장은 마치 격리된 오지(奧地)의 늪과 같고, 학생과 교사들은 공정성과 정의에서 멀어진 늪 속에서 상상력 계발과는 무관하게 메마른 경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는 트리나폴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들이 무작정 나무기둥을 오르며 경쟁하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현실이 학교에서의 불공정하고 불필요한 관행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널리 알리도록 만든다.

업무폭증 이유 1 : 민주적 공개행정, 경쟁기제에 집착하는 정부 때문이다.

이주호 장관은 MB정부의 출범이전부터 교육토론회를 통해 학교정보공개 방침을 가다듬어 왔다. 단위학교 교사들의 수나 학교규모 등을 넘어서, 학교의 주요 역점사업, 교사들의 주요 전공분야 등이 공개되면 중학교에서 기량껏 공부할 인재들이 고교를 골라서 진학하거나 인근 고교의 학생들이 심층적인 탐구를 위해 특정 학교에 와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 예컨대 자동차 디자인, 정비분야의 기능장 교사, 수학-과학영재 지도경험이 있는 교사가 어느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지 등을 공개할 때가 그 예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개작업을 기획하고 알리는 행정적인 업무를 교사들이 전담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교사들의 교과탐구와 상담 시간이 점점 사라진다. 교육선진국은 바로 이러한 폐단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교실에 교사를 돕는 보조교사, 나아가 보조원까지 투입한다. 교육경쟁력을 상승시키는 조건이 더 추가되는 바, 학급당 학생수가 OECD 평균 20명 이하로 15~20명선, 학생들의 선택적 이동수업, 고교생 10명중 3~4명만의 대학진학, 교사들 개인에게 연구실 제공 등 상황은 우리보다 월등히 좋다. 우리는 조건을 만들지 않고 서두르다 개혁에 실패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현재 학교의 수능성적을 공개하고 있다. 이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비공개원칙보다 바람직하다. 공개경쟁이 지니는 효과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적경쟁에서 처지는 원인을 해당학교 교사들의 능력요인 중 하나로 몰아가는데 있다. 성과급과 인사이동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 경쟁기제의 무기인데, 교사들의 능력여부가 한 가지 요인일 수 있지만 저학력의 원인은 당국에서 짚는 것과 같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문계 고교도 진학이 안 될 정도로 기초학력이 취약한 학생들 60~70여명이 다시 인문계 고교로 진학하는 현실에서 성취도 평가를 통한 학력경쟁은 출발 이전부터 우열이 가려져 있는 상황이다.

하나의 잣대로만 학교성적을 비교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입학 당시의 평균실력이 떨어진 학교를 골라 집중적인 문책성 장학지도를 한다. 어떤 학교는 자발적으로 장학지도를 요청한다. 그리고 은연 중 교사들 능력부족만을 성찰하도록 완곡하게 권고하면서 해묵은 '교실혁명'을 강조한다. 최하위권 학생들은 국영수, 탐구과목을 임시로 가르쳐 성취도 평가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기초학력이 미달되는 학생들은 전문계학교 및 직업학교를 확충하여 고교진학 때 이들 학교로 분류, 배치했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교육과정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한 학기는 체육을 하고 한 학기는 체육활동이 전혀없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철학자 플라톤은 교육론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체육활동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다음에 음악으로 정서를 안정시킨 후에 지적 훈련에 임하도록 권고하지 않았던가? 물론 체육활동은 생애내내 계속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담임반 아이들에게 교과수업을 한 학기 안하고 운영하면 학급관리는 여간 어려워지지 않는다. 선진국처럼 상담교사가 우리의 담임역할을 대신할 만큼 학교가 작아진 것도 아니다.

업무폭증 이유 2: 감독과 처벌위주의 장학과 감사관행 때문이다.

2년여 전부터 인터넷에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올해부터는 이원분류표를 탑재하고 있다. 전자문서의 형태로 인터넷에 올리면 종이서류는 보조장부로 검토하는데 쓴 후 없애야 좋지만 그렇지 않아 일이 늘어난다. 왜 일을 간소화시키지 못할까? 장학과 감사에서 지적받을 것을 우려하는 강박에 가까운 불안심리가 학교관계자들에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학급 출석부를 보조장부로 만드는 등의 업무간소화를 위해 교원노조와 눈높이를 맞춰 논의하는 겸허함도 이제는 사라졌다. 불안심리는 교육활동 곳곳에서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교육청이 교육지원청으로 명칭을 바꾸고 '장학사가 오면 대청소한다'는 이상한 규칙을 없애려고 하지만 학교현장은 실질적으로 여전히 감사받을 것을 일상적으로 의식하고 각종 서류를 생산, 결재하고 있으며 '손님맞이'라고 이름만 달리해서 여전히 청소를 하는 학교가 있다. 학교의 자율성은 여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의 시험문제 출제를 마치 국가단위 수능시험 출제하듯이 종용하는 학교도 있다. 수능시험과 학교의 정기고사는 유사할수록 좋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능시험 출제하듯 할 수가 없다. 교사들은 담임으로서 학급의 30~40여명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며, 주당 평균 18시간 수업에 보충수업이 추가되고 여기에 야간자습 감독이 자주 돌아온다. 이러한 생활을 수 개월하고 나면 교사들의 몸은 이미 생기를 잃는다.

▲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도 청소하지 않아도 됨을 알리는 신문 보도. ⓒ 신남호


게다가 교과부는 학교현장의 여건이 어떠한지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주관식 및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는 것까지 종용한다. 그러면 교사들은 주관식 단답형(서답형), 서술형의 모범답안, 유사답안의 채점기준과 채점표를 만들고, 시험 후에 채점을 하면서 기상천외한 학생들의 답안을 놓고 몇 점을 줘야 할 지를 고민한다.

문제는 이러한 고민이 학생들의 포괄적 사고력을 함양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업무만 가중시켜 교과탐구와 상담의 질적 향상을 저해할 따름이다. 수행평가를 전면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금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통해 행정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내밀하게 파고들어와 교사들의 평가권을 간섭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의 시책이 떨어지면 학교의 주무부서는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철저하게 서류를 갖출 것을 교사들에게 요청한다. 감사에서 지적받을 것을 걱정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또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계의 장학과 감사관행은 내면화된 감시체제로 작용해 온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감시망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푸코가 그 중요성을 환기시킨 원형감옥(판옵티콘)의 사례로도 설명된다. 즉 현대 관료주의, 공권력의 권위주의, 과학기술 등의 복합적 결합체에 의해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CCTV를 장착한 원형감옥의 감시망이 장학과 감사제도의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교장, 교감을 거쳐 모든 교사들에게 내면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업준비 자료를 보기보다는 장학과 감사에 걸리지 않도록 행정서류를 생산하고 점검, 재확인하는 것이 교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며, 심지어 어떤 부장교사나 관리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교사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궤변으로 설득한다. 행정업무로 인해 독서와 수업구상의 시간이 사라지면서 교육경쟁력은 그만큼 멀어진다.

업무폭증의 이유 3: 교육예산을 잘못 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교육예산은 학교현장에서 새고 있다. 교육환경 개선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확실한 토대가 되는 것이지만 이는 뒷전이고 즉시 실적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교직사회를 쫓기게 만든다. 교과부 장관은 임기 내에 실적을 내야 하고, 장관 주변의 연구관, 연구사 등은 물론이고 학교 현장의 승진대열에 합류하는 교사들 역시 학교예산도 중-장기 투자보다는 단기실적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인천지역에서 올해 15개의 학교를 잠재성장형 학교로 지정하고 한 학교당 5천만원을 지원한다. 입시실적이 좋거나 그 계획을 잘 수립한 학교 10곳은 '학력향상 선도학교'로 지정하여 2014년까지 1개교당 매년 1억씩 모두 4억을 지원한다. 다른 지역도 대동소이한 상황이라는 점은 주지된 사실이다.

▲ 잠재성장형 학교의 예산 지출계획서 사례 ⓒ 신남호


이렇게 투입되는 예산이 과연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 예컨대 기초과학의 이론과 기술, 역사-문학-철학-예술 등의 잠재력 계발로 이어지는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부분적으로는 교육적 효과가 없지 않은데, 이 부분적인 타당성을 놓고 예산의 용도 전체를 정당화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예산은 주로 다음과 같이 쓰여진다. 성취도평가 시험에서 평균점을 깎아먹지 않도록 성적 최하위 학생들에게 저녁 5~7시경 사이에 보충수업을 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대학생 멘토를 정해주어 입시실적을 내도록 한다. 학생들에 대해 학습동아리를 조직, 운영하면 교양서적 1권을 끝까지 독파하지 않은 채 참여하는 독서토론에서 얻는 바가 얼마나 될 것인가?

또 수업과 업무부담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학술동아리를 조직, 운영할 경우 이는 또 하나의 업무부담으로 다가온다. 전반적으로 무익한 일이다. 예산을 이렇게 쓸 것이 아니라 학교부지를 추가로 확보해서 학교를 더 지어 학급당 학생수를 10~15명으로 줄이고 전면 이동수업이 가능하도록 물리적 환경과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요 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출산으로 학급당 학생수가 줄고 있으니 기다리자는 주장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이 예산이 단위학교 각 부서로 배분되면 행정보조원 한 명 없는 대다수의 학년 교무실에서는 교사들이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지출내역을 갖춰야 하므로 업무가 가중된다. 그래서 예산을 안 받고 안 쓰기를 원한다.

결국 교실에서 첨단 프로젝터에 의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도 학생수가 30~40여명의 과밀학급에 교사 1명뿐이라면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양서를 읽고 토론, 발표하는 수업이 전면 불가능한데 이동이 안되는 붙박이 교실에서 오로지 교사의 설명과 참고서에 의지하여 공부하는 상황이라면 해마다 수천 만원에서 억대의 학력 향상비용이 내려온들 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 단기간에 실적을 내려는 조급함, 사안을 가리지 않는 공개행정과 경쟁기제의 주술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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