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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의 힘', 앞치마 부대를 뭘로 보는 거야?

[분당을 사례로 본 정치 지형 변화] 넥타이 부대 움직이는 30·40대 아줌마 주목하라

등록|2011.04.29 20:01 수정|2011.04.29 20:01

▲ 분당을 투표소에서 만난 아줌마 ⓒ 김혜원




4·27 재보선 결과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저는 이번 재보선 지역인 분당을이 아닌 분당갑, 이매동에 살고 있습니다. 분당갑은 이곳에서 초선으로 시작해 3선까지를 무리 없이 거머쥔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의 철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분당은 이전까지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나라당 색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이번 선거에 투표권은 없었지만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저 역시 분당을 유권자 동향이나 투표성향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분당에 살면서 지난 몇 년간 급격히 분당의 정치 지형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어떻게 선거에 반영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대부분의 보도에서 이번 재보선 결과를 가지고 '넥타이 부대의 승리'라고 평가하던데, 사실 전 그 넥타이 부대라는 말에 조금 빈정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넥타이 부대의 뒤에서 출근 전 투표소에 꼭 들렀다가 가라며 힘을 보탰던 분당 아줌마. 즉 분당 앞치마 부대의 숨은 힘이 너무 무시된 것 아니냐는 서운함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낮시간 동안 투표소를 돌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투표를 하러 나온 아줌마 부대, 그러니까 '앞치마 부대'의 행렬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30·40대 젊은 주부들의 합리적 반란?



▲ 4.27 재보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에 출마한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미금역 앞에서 만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 4.27 재보선 경기 성남 분당을에 출마한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가 20일 정자동 버스정류장에서 출근하는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30·40대 젊은 주부들인 분당의 앞치마 부대는 정치적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특정 당을 지지하기보다는 정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내 가정과 내 아이, 내 살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당색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합리적이며 실리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서 아이 교육부터 장보기나 소소한 잡담까지를 온라인상에서 해결합니다. 비교적 젊은층인 이들은 주로 기존 포털사이트인 다음이나 네이버를 이용하기보다는 싸이월드가 바탕이 된 네이트를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활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커머스의 주요 이용자들도 이들 30·40대 주부층입니다.

분당 아줌마들이 이처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관심을 갖고, 이것들을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다보니 정치적 의식이나 사회참여도는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주축이 된 분당 앞치마 부대의 합리적 선택이 이번 4·27 재보선의 결과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송이나 한나라당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여겨졌던 분당이 어느 날 갑자기 표심이 바뀌어 오늘날의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이해하시면 큰 오해입니다. 초기에 분당에 들어와 살던 보수층들은 용인, 판교 등 새로운 거주처가 생기면서 많이 물갈이가 되었고, 지금은 분당 초기 입주자들에 비해 유권자의 층이 한결 젊어졌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29일자 <서울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분당의 주민 구조가 옛날 같지가 않다, 전에는 강남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았는데 이제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용인 수지 쪽으로 간 것으로 안다"면서 "이렇듯 지역구 유권자 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40대 이하 젊은 사람들이 68%를 차지하게 됐다, 그 사람들 절반만 투표한다고 해도 34%인데, 못 당한다"고 말한 것은 같은 맥락이죠.

분당지역 정치적 성향의 변화는 지난해 6월 2일 진행된 성남시장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경력이 없는 민주당의 출신 재야 변호사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된 것도 이변 중 하나였습니다. 분당지역 민심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3선 고흥길 의원님, 여성유권자 무시하지 마세요

▲ 남편과 함께 온 분당 여성유권자. ⓒ 김혜원

  다음 총선에 제가 살고 있는 분당갑에도 고흥길 의원이 4선을 목표로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제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 고흥길 의원의 망언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당시 문방위 위원장이었던 고 의원이 이동통신요금 인하 관련해 열린 '이동통신요금 과연 적정한가'라는 주제의 여야합동토론회에서 분당 아줌마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한 것이지요.  

"전철에서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해서 통신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요금을 더 비싸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부인들이 운전을 하면서도 이동통신 전화를 쓰고, 집에서도 2시간 30분씩 전화를 하고, 그것도 핸드폰으로 하고, 이런 생활 관습부터 고쳐야 한다." (출처 : "쓸데없이 부인들이 운전하면서 전화하고..." <오마이뉴스> 2009년 9월 18일자 보도)

그 기사를 읽은 순간 전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차마 우리 지역구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고흥길 의원은 자신의 지역 아줌마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보았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발언일 테니, 고 의원은 분당 아줌마들의 수준을 딱 저렇게 본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겁니다.

"쓸데없이 운전하면서 전화하고, 집에서 2시간 30분씩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지역의원이 지역 여성유권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 정도인데, 유권자라고 그런 국회의원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고 의원 말은 남성우월주의는 물론 여성 비하도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줌마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죠.

앞치마 부대가 만들어낸 이변, 주민들 사이에선 그리 이변도 아니다

▲ 이웃들과 함께 투표소에 나온 여성유권자들 ⓒ 김혜원



그렇게 '쓸데없이' 운전하면서 전화하고 휴대폰으로 길게 통화하는 분당의 아줌마들, 즉 앞치마 부대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변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변이라고 하지만 사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그리 이변도 아닙니다. 사실 분당의 정치지형은 수년 전부터 바뀌고 있었거든요. 돌아오는 총선에서는 또 어떤 결과가 드러날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분당 앞치마 부대들, 남편과 자녀들 아침밥 먹여가며 출근 전에 투표하라고 독려했습니다. 애들 학교 간 사이에 열심히 투표하러 가자고 전화를 돌렸습니다. 앞치마 부대의 활약이 넥타이 부대에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신호등도 남녀차별을 철폐하자는데, 기사에서도 넥타이와 앞치마를 동일한 비중으로 넣어주셔야지요. 저 역시 그 앞치마 부대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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