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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소재사에 봄이 왔다!

참꽃축제 진행 중인 비슬산 자락 소재사의 봄 풍경

등록|2011.05.09 13:47 수정|2011.05.09 13:47
소재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자락에 있다. 본디 유가면에서부터 걸어 올라간다면 20리 길도 더 되는 멀고 가파른 오르막 험로이겠지만, 절 바로 턱밑까지 매끄러운 도로가 닦여 있는 탓에 그런 노고는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주차장에서 소재사까지 걸어서는 한 방울의 땀조차도 날 겨를이 없으니,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려는 분은 소재사에서 2시간 가까이 산을 타고 대견사지까지 올라야 한다.

비슬산 소재사에 봄이 왔다(왼쪽 사진) 소재사는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다. (숙박객을 제외한) 등산객 등의 차량 출입을 제한하는 초소 바로앞에 '비슬산의 사계'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그 아래에 핀 철쭉까지 함께 찍으니 그게 곧 환상적인 봄사진이 되었다. (오른쪽 사진) 조금 더 들어가 소재사 입구에 가면 약수가 졸졸 흘러나오는 샘이 나타난다. 누군가가 연록색 나뭇잎을 그 가느다란 물줄기 아래에 받쳐 두었다. 사람들이 감탄을 거듭한다. "누가 저렇게 해 두었을꼬!" 그 덕분에 물맛은 정말 '꿀맛'처럼 더 좋아진 듯하다. ⓒ 정만진




소재사(消災寺)라는 이름은 '재앙을 없애준다'는 뜻이다. 물론 불자라면 누구가 사찰을 찾아 부처를 만남으로써 재앙이 없어진다고 믿겠지만, 그런 신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봄에 소재사를 찾아가면 어쩐지 근심과 걱정이 스르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늘과 땅, 계곡과 산자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봄의 빛깔 덕분이다.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비슬산자연휴양림'과 '요산요수'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 둘이 좌우로 늘어서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둘레에 백화만발한 꽃들과 사람들의 울긋블긋한 옷색깔이 어우러져 더욱 봄빛을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연하게 푸른 나뭇잎들도 멋진 배경이다. ⓒ 정만진



다리를 건너면 소재사가 나온다아직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탄한 길을 대략 500미터쯤 걸어가면 작은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편이 바로 소재사 경내이다. 소재사를 바라보고 섰노라면 오른쪽에 봄꽃과 함께 단정히 서 있는 돌탑이 나란히 어깨를 겨룬다. 저 돌탑 왼쪽으로 보이는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오르면 유명한 대견사지에 닿게 된다. ⓒ 정만진



돌탑과 소재사 사이의 계곡돌탑과 소재사 사이의 계곡도 봄빛이 완연하다. 연초록 나무들 사이에 운집한 돌들과 그 위를 흐르는 물까지도 어쩐지 봄의 기운으로 가득찬 느낌이다. 멀리 보이는 비슬산 능선까지 치솟아 오르는 분수가 사람의 마음을 한껏 상기시켜 준다. ⓒ 정만진


소재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전한다. 하기야 신라가 국가적으로 불국정토를 추구한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절은 둘 중 하나가 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니 소재사가 그런 역사를 내세운다 한들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비슬산 자체가 신라 도성국사가 득도를 한 곳이고, 훗날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도 머문 곳이니, 그만 하면 소재사가 신라 고찰이라는 말을 무턱대고 허언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재사에도, 우리나라의 다른 신라 고찰들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소재사 일주문에도 봄이 가득저 문을 들어서면 거기부터 소재사 경내이다. 이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가벼운 입을 닫고 자못 경건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다. 일주문 뒤로 보이는 비슬산 능선도 아득한 봄으로 가득찼다. ⓒ 정만진



일주문에서 바라본 소재사의 봄 풍경내일모레 초파일을 앞두고 일주문에는 연등이 달려 있다. 붉고 푸른 그 연등의 빛도 때가 때인 만큼 저절로 봄기운을 돋워주는 느낌이다. 발 아래는 철쭉이, 머리 위는 소재사 대웅전 뒤편의 봄나무 잎새들이 이곳의 자연스런 봄 풍광을 자랑한다. 그런데 오른쪽에는 어인 단풍나무가 한가을 같은 색깔을 드러내고 있나! 아니다. 단풍나무도 봄을 맞아 꽃을 피운 것이다. ⓒ 정만진



봄빛 가득한 소재사 전경일주문에서 한발 더 들여놓고 바라보는 소재사의 봄 풍경, 그만 눈이 아찔할 지경이다. 왼쪽으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보이고, 단풍나무 붉은 빛으로 반쯤 덮인 (오른쪽의) 길다란 와가는 스님들의 숙소와 강당 등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그런데! 여느 때엔 눈에 거슬리던 현수막들도 오늘 따라 그저 봄빛으로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만 춘향(春香)에 취해버린 탓일까! ⓒ 정만진



연녹색에 물든 대웅전과 명부전소재사 대웅전과 명부전(오른쪽)이 하늘부터 땅, 왼쪽과 오른쪽을 남김없이 가득 채운 연녹색으로 포릇포릇하게 물들어 있다. 꽃빛으로 흔히 인식되는 붉은색도 생명의 기운을 상징하는 연녹색 봄빛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가 보다. ⓒ 정만진



대웅전에도 봄이 왔다대웅전으로 가기 직전, 첫 번째 돌계단에 발을 올릴 때, 눈앞에 핀 작은꽃들이 대웅전보다도 더 크게 활짝 피어 있다. 대웅전에도 봄이 왔구나! ⓒ 정만진



소재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명부전에는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44호인 목조 지장보살좌상이 있고, 아담한 대웅전도 있고, 대웅전 앞에는 아직 꽃봉오리가 달리지 않은 오래된 배롱나무도 있지만, 나는 무엇을 볼 것인가. 그렇다고 대단한 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내며 꿋꿋하게 버텨남은 거대담론이 전해지는 것도 아닌 이곳 소재사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볼 것인가.

나는 소재사에서 봄을 본다. 예로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을 '철이 들었다'고 했으니, 소재사에서 봄을 보는 일도 그리 만만한 가벼움은 아닐 것이다. 봄이 와도 봄이 봄 같지 않은 요즘 세상에서, 그래도 잠시나마 한가하게 봄을 느껴보는 것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시간이리라. 사진과 글로 사람들에게 소재사의 봄 풍경을 널리널리 전해주는 이 작은 노고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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