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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농협 못가! 한바탕 했거든..."

전산장애 빚은 농협 때문에 '오버' 좀 했습니다

등록|2011.05.18 19:15 수정|2011.05.19 11:43
"농협으로 가자구? 나 못가! 민망해서…. 한바탕 했거든!"

얼마전 그러니까 농협의 전산장애가 있은 후의 일이다. 거슬러 가면 전산장애가 있은 후 첫 일요일이었으니 아마도 지난달 17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성화를 부리기에 가지고 있던 농협 기프트카드를 주고 농협하나로마트에 다녀 오라고 했다. 잔돈이 몇 만 원쯤 남아 있는 것으로 기억됐기에 원하는 만큼 양껏 사오도록 했다.

아이들이 마트로 향하고 얼마 후 아이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대로 가서 기프트카드를 내미니 계산원 아줌마가 "등록이 되지 않은 카드라 신용사업부서에 가서 사용등록부터 하고 오라"고 했다며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순간 울컥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썼고 잔액까지 남아 있는 카드인데 등록을 다시 하라니. 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등록도 됐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용했던 카드니 다시 한 번 계산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이들이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가 빨리 와야 한다"며 사정이다. 부랴부랴 달려가니 마트 한쪽에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안절부절이다. 고르기는 했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계산이 안 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카드등록을 요구했던 계산원을 찾으니 자리에 없다. 다른 계산원에게 결제가 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아마도 농협의 전산장애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현금으로 결제를 하고 아이들과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그래도 엄마가 오니까 친절하다며 한 마디 한다. 왜냐고 물으니 자기들한테는 쌀쌀맞게 화를 내면서 말했단다. 순간 울컥했다. 애초부터 전산장애로 인한 농협 탓이라고 말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을 등록되지도 않은 카드를 사용하겠다는 소비자의 탓인양 말한데 대한 울컥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참았다.

아이들에 대한 계산원 태도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쌀쌀맞다거나 화를 냈다는 등의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기에.

그런데 그 일이 가슴에 맺혀 있었나 보다. 농협 전산장애에 대한 원인이 밝혀지고 모든 거래가 정상화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카드사용내역 확인을 위해 농협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잔액과 전산에 기재된 잔액이 다르다.

순간 전산장애로 인해 카드거래내역에 오류가 생겼구나 싶으면서 내가 피해자가 됐구나 싶었다. 당시 전산장애로 인한 잘못을 내 탓인양 돌린 데 대한 앙금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다른 가능성은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모아놓은 영수증을 찾아보니 11일 저녁에 내가 구매한 내역이 있다. 옳다구나 싶으면서 내가 피해자가 됐다는 증거를 찾아 다행이다 싶었다.

해서 농협으로 달려가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그날 내가 카드로는 결제한 기억이 없고 영수증을 보니 현금으로 결제한 것 같은데 카드로 결재한 내역이 뜨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그런데 직원들의 답변이 내 피해의식을 더 높여 준다. 아마도 전산장애로 인한 오류인것 같다며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저도 전에 기프트카드를 썼는데 결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현금으로 결제했고, 그런 경우가 서너 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가 전산장애의 피해자가 됐다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다음날 전산에는 분명히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며 확인을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거래내역 확인을 위해 농협 측으로부터 받은 카드 거래내역서와 현금영수증의 결제 시간을 근거로 당차게 따졌다.

"거래내역서에는 내가 카드로 오후 9시 45분 38초에, 영수증에는 40초에 3만 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한 것으로 기록됐는데 그렇다면 계산원이 그만한 양의 물건을 2초 만에 계산했다는 것이냐"며 따졌다. 그랬더니 직원도 내 논리에 수긍을 한다, 그럴 수는 없다고. 그러면서 다시 확인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쯤 후인가. 다시 연락이 왔다. 당시의 CCTV를 확인했는데 내가 딸아이와 함께 마트를 방문했고 분명히 카드로 한 번 결제를 했다는 것이다. 농협 매장 내부에 CCTV가 설치돼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농협 전산장애는 12일 오후부터 시작됐고 내가 오류인 것 같다고 주장하는 거래 날짜는 그 앞날이기에 농협 전산장애와는 상관이 없음도 강조했다.

CCTV까지 확인한 결과인데다 전산장애가 있던 날도 아니라는 말에 슬쩍 기가 죽었다. 나도 확인을 해 보겠다고 말한 후 영수증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영수증 하단에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신용카드 매출전표(고객용)'이라는…. 헐!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보니 2초의 시간차가 이해가 되는 듯도 했다. 나는 38초에 카드를 긁었고 이를 인식하고 영수증이 발급되는데 2초의 시간이 걸린 듯했다. 진작 농협 측에서 논리정연하게 이를 설명해 줬다면 내가 궁시렁거릴 이유는 없었을 것인데.

사실 CCTV까지 확인했다는 말에 수긍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썩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뭔가 내가 속고 있고 피해를 입은 것 같은 생각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CCTV까지 확인했다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고 남편의 급여통장이 농협으로 되어 있어 농협거래를 하고 있지만 농협에 대한 믿음도 깨졌다. 한 번씩 통장을 확인할 때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잔액과 통장에 기록된 잔액이 다를까 봐 조마조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미안해서 농협 마트는 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전산장애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농협 측의 피해보상 약속이 있었지만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농협에 대한 나의 신뢰와 그로 인해 농협 마트를 피할 수밖에 없게 된 내 발걸음, 그리고 나한테 호되게(?) 당해야 했던 그 직원들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일 수 있는데 그 피해는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하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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