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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5년, 관음성지 '보문사 419계단' 올라보니

낙가산 중턱에 위치한 마애석불좌상 앞에 고개 숙인 사람들

등록|2011.05.09 17:51 수정|2011.05.09 20:33

석모도 선착장 여객선여객선이 석모도 선착장에 도착한 순간이다. ⓒ 이미진


불기 2555년을 초파일을 맞아 전국 주요 사찰에 많은 관광객의 출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 가족이 이틀 앞당겨 다녀온 곳은 인천 강화군 석모도에 위치한 보문사이다.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더라도, 작은 아이에 비해 유독 건강이 염려되는 5살 된 큰 아이를 위한 기도를 잠시 드리고자 찾은 것이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석모도 내포리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그 사이 아이들과 갈매기 떼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유희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석모도에 도착해 다시 차를 타고 보문사에 도착하는 데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주변 관광지 토담골·염전밭 등을 지나쳐 오후 1시쯤 도착한 보문사 출입구에는 이미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붐볐다. 보문사 낙가산일절문 앞에서 출입을 담당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초파일을 앞둔 이번 주말에 이곳을 찾은 사람만 2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당일 관광객 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보문사 곳곳 기도하는 자취 남아

보문사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법당에서 신도들을 만나고 계신 주지 덕문스님을 볼 수 있다. ⓒ 이미진



절벽처럼 가파른 고갯길을 300m쯤 걸어 올라서서 좌우를 살펴보니, 좌로는 부처님을 수호한다는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그 위로 눈썹바위에 조각된 마애관음보살상이 보였다. 다시 우를 살펴보니, 와불전・석실・대웅전・기와불사・법음루 및 범종각이 펼쳐졌다. 우리 가족은 먼저 탑전 뒤로 펼쳐진 오백나한상으로 다가가 잠시 합장을 드리고, 이어 와불전과 석실, 대웅전을 관람했다. 한편, 우리 가족이 관람 내내 눈에 띄게 볼 수 있었던 건, 탑전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붙여놓은 십 원, 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도음을 조용히 뒤로 하고 우리는 법음루(보문사에 있는 북)로 향했다. 기와불사 우편에 있는 법음루의 소리를 들으면, 진리로 어리석은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2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대신, 법당 앞에서 이곳을 찾은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나와 계신 보문사 주지 덕문스님과 함께 합장을 드릴 수 있어 좋았다.

이어, 이번 목적지이기도 한 마애관음보살상으로 향했다. 대웅전 너머 눈썹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보살상은 41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다. 언뜻 봐도 5살 된 큰 아이에겐 쉽지 않을 길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태어나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두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던 큰 아이의 건강만을 생각하며 손을 꼭 잡고 마치 수술대를 향하듯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다행이 아이는 기자보다도 더욱 기운차게 보살님을 향해 다가갔다.

계단 200여 개를 올랐을까, 갈증에 물을 찾던 아이의 모습을 본 신도 한 분이 계단을 오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해 보였을까 직접 떠 온 물을 건네주셨다. 박하사탕 한 알까지 쥐어주신 덕분에 아이는 더욱 힘차게 걸어 올라갔다. 길게 줄 이은 연등 기도문을 따라 드디어 도착한 낙가산 중턱! 높이 920cm, 너비 330cm 암벽에 조각된 관음보살상 앞으로 펼쳐진 서해 바다는 가히 장관이었다. 아직 지지 않은 벚꽃이 흩날리는 경관 너머는 안개로 자욱했지만, 민머루 해수욕장도 보였다.

보살님 앞에서 피리 부르는 아이, 무슨 이유일까

낙가산 중턱에서 바라본 서해 바다마애관음보살상으로 오르는 길, 자욱한 안개 너머로 서해 바다가 펼쳐진다. ⓒ 이미진


잠시 경치를 즐기던 우리는 108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서해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섰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용히 예불을 드리자고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이는 부탁을 거절하며 살며시 미소만 지을 뿐이다. 기자 또한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관음보살의 너그러운 미소에 기도만 드렸다. 아직 어려서인지, 아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게 더 신난 모양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가져온 피리를 눈치를 봐가면서까지 불어보았다. 이 또한 보살님은 너그러움으로 봐주시겠지 싶어 아이의 행동에 야단을 치진 않았다.

다하지 못한 기도에 아쉬움을 갖고 내려오는 길, 아이의 자발적인 마음을 자극하고자 기자는 곳곳에 세워진 돌탑을 가리키며 돌탑이 왜 세워져있는지, 돌을 쌓으며 사람들이 무슨 소원을 비는지 설명해보았다. 다행이 아이는 설명을 이해했는지, 기자의 부탁에 자그마한 돌멩이를 올리는 수고를 선뜻 해보였다. 아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라고 답하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번 여행길의 목적을 다 이룬 듯했다.

한편, 내려오는 길 바위 곳곳에 써진 이름들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다 같이 올 한해를 건강히 잘 지내보겠다는 마음으로 또는 마음을 비우기 위한 자세로 올라서는 길이건만, 소수 사람들은 오로지 관광 차 들린 기념으로 하나둘씩 새겨 둔 이름들이다. 설마하니, 기도하는 본인의 마음이 다 전해지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이처럼 새기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부처를 향해 하나둘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원을 정성스레 써 넣은 연등이 보문사 입구에서부터 낙산사 중턱에까지 이른다. 그 기도문을 다시 확인하고자 연세가 지극함에도 불구하고 재차 들리는 어르신들도 있다. 이곳을 찾아 고개 숙인 자들은 무엇이며, 이처럼 또 자연을 훼손하고자 찾은 이들은 또 무엇인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5살 된 아이와 무사히 계단을 다 내려오고 보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믿음만으로도 현실이 된 것처럼 기쁘기 때문이다. 다시 여객선을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은 들어설 때 흥분되고 설레는 느낌 대신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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