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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돈을 이렇게 많이..." 기분 되게 찜찜하네

[괴롭다, 5월③] 형편 빤한 자식들 선물, 받기도 부담입니다

등록|2011.05.10 14:13 수정|2011.05.10 14:30
어버이날을 일주일 남겨놓은 지난달 30일에 딸아이가 미리 왔다. 마침 그날은 비가 오락가락해서 간단하게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집에서 먹을 거라면서 사온 한우는 등심, 안심 부채 살 등 종류별로 골고루였다. 사온 고기값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하여 살짝 물어보았다.

"얘 나가서 이 정도로 실컷 먹으려면 몇 십만 원 나오겠다. 고깃값 많이 들었지?"
"엄마 신경 쓰지마. 맛있게 드시기만 하면 돼."

푸짐한 한우 대접에 용돈까지, 근데 마음이 왜...

▲ 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 아일랜드 픽쳐스


골고루 사온 고기 때문에 얘기 거리는 고기로 부터 시작해서 화기애애했다. 외식도 좋지만 이렇게 집에서 느긋하게 먹는 것도 좋다는 의견으로 일치를 보기도 했다. 술도 한잔씩 하면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 그때 딸아이가,

"동생이랑 함께 드리는 건데 이건 아빠 용돈, 이건 엄마 용돈. 엄마 며칠 있으면 여행도 가지. 거기에 여행경비도 조금 더 넣었어."
"뭘 여행경비를 따로 넣어 이거면 충분한데…. 고맙다 잘 쓸게."

딸아이가 주는 거기에 받긴 받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정말 크게 들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너무 많이 받은 것 같기에 여행경비는 되돌려 주려고 했지만 기어이 받지 않았다. 하긴 마음먹고 내민 봉투를 준다고 되돌려 받지는 않을 터. 한두 번 권하다가 어린이날에 아이들 선물 사주라고 나도 봉투를 내밀었다. '어버이날이니 시댁 부모님도 찾아봬야 하는데…' 은근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댁에는 언제 갈 거니?"
"아버님이 8일에나 시간이 난다고 해서 그날 가려고." 

어버이날에 양쪽 부모들 찾아보는데 드는 비용이 봉투 내놓고, 식사도 하고, 대충해도 오십만 원~육십만 원이 넘으면 넘었지 그보다 적지는 않을 거란 계산이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해서 8일 어버이날과 두 아이 모두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니 무시할 수 없는 스승의 날도 있다. 그 외에 16일 성년의 날 등 기념일이 정말 많다.

요즘은 어린이날도 동화책, 장난감을 선물하거나 간단하게 치킨 등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기념일도 챙기려면 자식들 등골이 휠 것 같다. 자식들한테 푸짐하게 대접은 받았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결혼한 자식들 잘 사는 게 최고 '효도'

마침 5월 8일 친구 딸아이 결혼식이 있어 친구들이 모였다. 어버이날이라 얼굴만 비치고 부모님 뵈러 가야 한다면서 바쁘게 식장을 떠나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처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 예식을 보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는데 K가 보이지 않자 한 친구가 "걔는 왜 안 왔어?" 묻는다.

"어버이 날이라고 아이들이 중국여행 보내줬잖아. 그래서 봉투만 가지고 왔어."
"누구는 좋겠다. 해외여행씩이나 보내주고."
"좋긴 뭐가 좋아. 요즘 자식들도 제 살기 바쁜데 그런 거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이런 행사 한번 치르고 나면 월급쟁이들은 얼마나 쪼들리겠어. 그 후유증이 몇 달은 가잖아."
"그래도 난 그런 선물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용히 밥만 먹는 친구가 눈에 띄었다. 그는 지난 번보다 무척 야윈 모습이었다.

"너 요즘 다이어트 중이니? 엄청 날씬해졌네."
"한가하게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

힘없이 한마디 툭 내던진다. 자세히 보니 흰서리가 머리 전체에 내려앉은 모습이 부쩍 늙어 보이기도 했다.

"머리 염색 좀 하고 오지. 진짜 파파할머니 같다."
"그러게 내가 많이 늙어 보이지?"
"집에 무슨 일 있어?" 
"어버이날 선물은 무슨 선물. 모두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다. 우리 딸아이 네 식구가 모두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잖니. 지들끼리 살 형편이 안 돼서. 몇 달 됐어."

▲ 영화 <친정엄마>의 한 장면. ⓒ 아일랜드 픽쳐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너무 배부른 투정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그러고 보면 자식들이 결혼해서 제 앞가림 잘하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고 선물이지"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B도 입을 열었다.

"내가 아들을 장가보내고 나니깐 우리 시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

그는 둘째 며느리이고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며칠 전, 문득 홀로 계신 시어머니가 생각나서 김밥 두 줄 사고, 과일도 조금 사가지고 시어머니한테 가니깐 그렇게 좋아하시더란다. 시어머니와 김밥 먹으면서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더란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사오는 비싼 선물, 현찰 등을 더 기다렸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결혼해서 지들 살기도 바빠 어버이날에 오지도 못한다고 하니깐 그게 정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 아이들이 꽃 한 송이라도 사들고 와서  얼굴 보여주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이 큰 감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 뭐니. 나 정말 어른 됐지."

어느새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앞으로 시어머니를 좀 더 자주 찾아 볼 생각이라고 했다. 왜 여태까지 시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티격태격하면서 몇 십 년을 살아왔는데  같은 여자끼리 지금은 못할 얘기가 어디 있겠냐면서. 그리고 올해 89세인 시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 하면서.

부모에게 정말 잘하는 건 무엇일까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도 왠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또 그분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제 앞가림 잘하고 사는 자식들이 정말 고마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전환도 할 겸해서 쇼핑몰에 들어갔다. 어버이 날이라 그런지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풍경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중에 쥬얼리 코너에서 장식장에 코를 박고 귀걸이를 고르고 있는 정겨운 두 모녀가 있었다.

"엄마 이거 해봐."
"얘 이건 너무 비싸 보인다. 이걸로 하자."
"아냐 엄마 이거 마음에 들면 이거로 해요.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잖아."

어느 새 친구들 발걸음이 그 앞에서 정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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