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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님아, 니 시어머니 불쌍해서 못 보겠다

나이 60에 두 집 살림, '황혼육아' 두 달 만에 몸과 마음에 병 난 친구

등록|2011.05.11 18:12 수정|2011.05.12 09:01
며칠 전 자주 만나는 A와 B, 나 셋이 만났다. A는 우리를 보자마자 "요즘 어깨가 너무 아파서 침 맞으러 다닌다"고 말했다. 나와 B는 "왜 또 어깨가 아파?"하고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A는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두 달 전부터 친손자를 봐주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봐준다기에 "그럼 할 만하겠네" 했다. 하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만 봐도 힘든데 양쪽 집 살림까지 하려니 병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손자를 봐준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한결같이 걱정을 했다. A는 유난히 혼자 있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다. 우선 외출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마음의 병까지 생긴 듯했다. 가만 있다가도 갑자기 무언가 가슴 속에서 불쑥 불쑥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분명 어디에 탈이 나도 단단히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보기 두 달 만에 재발한 '어깨통증'... 두 집 살림까지 도맡은 친구

▲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와 손자 ⓒ CJ엔터테인먼트


거기에 아들집과 제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림에 육아까지 하고 있으니 몸인들 성할까? 평소 A는 건강한 편이었지만 고질적으로 어깨가 많이 아팠다. 병원에 가고 한의원에도 가서 치료도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경락 마사지를 받아보라고 해서 받아본 후론 괜찮아졌다고 했다.

그런데 무리한 탓인지 손자를 본 지 두 달 만에 또 다시 양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심할 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십견도 아니란다. 침 맞으러 며칠을 다녔지만 좀처럼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친구. 그에게 "남편하고 같이 보는데, 어깨가 왜 또 아프니?"하자 "내가 일을 만들어 해서 그렇지 뭐"라고 말한다.

나도 손자를 봐줄 때 손자를 안고 침대에서 내려오다 손자를 놓친 적이 있어 그의 어깨통증이 정말 걱정이 됐다. 앞으로 손자가 점점 자라면 어깨통증 때문에 안아 주기도, 업어주기도 무척 힘들 텐데. 만약 계속 그렇게 했다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플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들 내외한테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왜냐하면 지금 무작정 참는 것이 병을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오전 6시에 일어나 남편과 함께 아들 집으로 간다. 그의 집에서 아들 집까지는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친구가 남편과 아들집에 도착하면 아들 내외는 출근을 한단다.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나면 친구는 아들 집에서 청소, 빨래를 하고 주방 일까지 한다. 그리고 아들 내외가 돌아오기 전까지 손자와 씨름을 한다. 남편하고 함께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일 것이다.

그러다 저녁 때가 되면 시장에 다녀와서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아들 내외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저녁을 차려주고 손자 목욕시키고 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제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11시가 다 되고 그때부터 친구의 집안일은 시작된다. 어떤 때는 돌아와서 옷도 못 갈아입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 때도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내가 바빠지는 듯했다.

친구는 그렇게 아들집 살림을 돌보면서도 제 집에 일이 있으면 중간에 다시 나와 은행으로, 주민자치센터 등으로 볼일을 보러 다닌다. 주말에는 아들집에 가지는 않지만 요즘처럼 결혼식이 많을 때에는 그나마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그와 약속이 있으면 그의 아들 집 근처에서 만나곤 한다.

"며느리 집에 가서는 대충하지... 그렇게 구석구석 닦아주고 치워주니깐 병이 나지. 그렇지 않아도 내가 먹을 밥도 하기 싫어질 나이인데."
"나도 그래야지 하고 가지만 막상 걔들 집에 가서보면 맨 일투성이라 그냥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

친구 말을 듣고 있자니 나 같아도 지레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럼 며느리 들어오면 밥은 지들보고 차려 먹으라고 해. 뭘 밥까지 차려 주냐. 하루 종일 집안일에 손자 돌보는 일까지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 애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왔는데…."
"가만 보니깐 너무 잘해서 병이 났구만. 옛말에도 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말도 있잖아. 적당한 선을 그어야지. 그러다 자기 골 빠진다."
"그러게. 내가 이러다 골병들지 싶다."

옆에 있던 B도 "그 말이 맞아, 애초부터 너무 잘해주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라고 말한다. A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B와 나는 손자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지라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며느리 집 살림까지 한다는 말에 우리 둘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A에게 "두 달 되었는데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어떻게 견딜 거야, 남편하고 의논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했지만 A의 남편은 적어도 1년은 봐주어야 나중에 할 말이 있다면서 꾹 참고 1년을 채우잔다. 아직도 10달이나 더 남았는데 어떻게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을런지 걱정스러웠다. 친구의 상태가 저러면 정말 몸과 마음에 큰 병이 날 것 같았다.

"손자를 할머니 집에서 키워주면 어때?"... "엄마가 아이를 자주 봐야지"

▲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와 손자 ⓒ CJ엔터테인먼트


그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에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아들, 며느리 불러놓고 이야기를 해. 애를 안 봐준다는 것이 아니고 손자를 봐주되 할머니 집에 데리고 가서 봐준다고.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 애들이 데려가고, 일요일 밤에 데려오면 되잖아. 그렇게 하면 서로 조금은 편할 수 있지."
"그래 그거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해. 애를 안 봐준다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A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했다. 옆에 있던 B가 답답했는지 "왜 좋은 방법이잖아, 자기 남편하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봐"하고 거든다.

꼭 그렇게 아들집에 가서 애를 봐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궁금해서 A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엄마가 아이를 자주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말은 누구 말이냐고 물으니 며느리가 그랬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난 그 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럼 방법이 없네, 지금처럼 아들집에 가서 봐줘야지, 앞으로 둘째 낳으면 어떻게 할 거야?"하고 물으니 그때는 모른단다. 글쎄 내 생활이 아니니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으면 뭘 할까.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모두 소용 없는 일인 것을.

친구가 결정을 못 내리니 B와 나도 더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본인의 문제란 생각 때문이었다. 다만 저러다 더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됐다. A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한지 긴 한숨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자식이 그렇게 원하니 끝내 본인의 의견을 내세울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A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맞벌이 부부들과 할머니들의 육아걱정은 언제나 끝날런지 친구 A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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