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3000원짜리 비닐 우산 속에서 본 세상

[변자매의 양화 ②] 비닐우산 쓰고 산책하기

등록|2011.05.11 09:32 수정|2011.05.11 10:36
양화(陽畫)사진은 필름에 피사체의 색채나 톤이 실제의 피사체와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어로는 'positive film'이라 표기하지요. 글 써 먹고사는 '쓰새' 언니 변지혜와 사진으로 먹고 살길 소망하는 사진학과 '찍새' 변지윤은 자매애로 뭉쳐, [변자매의 양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순간이! 자칫하면 지나치고 말았을 아름다운 무언가를, 선명하고 긍정적인 느낌의 사진으로 담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말
집 청소하듯, 방 정리하듯 마음도 때로는 정리정돈이 필요합니다. 설명 불가능한 감정들을, 내뿜고 싶은 말들을 쌓고 쌓아두다 보면 어느 순간 폭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접어두며 살아갑니다. 때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슬픈 날도 있지만, 나만의 마음 정리법을 가지게 되면 순간을 넘기기가 한결 수월해지거든요.

홀로 있는 섬처럼 외로운 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립니다. 계속 집에 있다가는 '잉여인간' 되기 딱 좋다는 생각에 핸드폰과 우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얼마 전 폭우가 쏟아졌을 때 편의점에서 구입한 3000원짜리 비닐우산입니다.

▲ 비닐우산 쓰고 산책하기 ⓒ 변지윤


▲ 우산에 송골송골 맺힌 빗방울 ⓒ 변지윤


우산에 송골송골 맺히는 투명한 빗방울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핸드폰에 다운받아 놓은 비틀즈의 명곡 'In my life'를 빗소리와 함께 BGM으로 깔고는 다소 청승맞은 산책을 시작합니다.

때로 세상은 명확하고 또렷한 '매의 시선' 보다는 조금 흐릿한 '두더지의 눈'으로 봐야 편한 것 같습니다. 비닐우산 위로 맺힌 빗방울,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다소 불투명해 아름답고 아늑합니다.

▲ 빗방울, 하염없이 맑은 ⓒ 변지윤


▲ 비닐우산 너머로 보이는 꽃밭 ⓒ 변지윤


삶은 날씨와도 같아서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일기예보가 때때로 혹은 자주 틀린다는 사실도요. 예상과 달리 차고 습한 날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그런 날조차도 나를 위한 공간은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물기가 어린 비닐우산 속.

▲ 알록달록 자판기 음료들 ⓒ 변지윤


산책과 사색을 통해 마음 속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냅니다. 자동반복 시켜둔 비틀즈의 노래 가사에 귀 기울이다 문득, 그들도 힘겨운 무명시절이 있었고 그 때마다 '우리는 지금 가장 높은 곳으로 가고 있어, 최고의 정점으로!' 라고 외치며 불안감을 떨쳐냈다는 에피소드를 기억해냅니다.

▲ 루돌프의 뿔같은 나뭇가지 ⓒ 변지윤



▲ 초록빛 솔잎에 맺힌 빗방울 ⓒ 변지윤


비에 젖어 더 향긋한 나무내음을 들이마시며 이 시간을 마무리해봅니다. 마음 안에 생긴 한 뼘의 여유 공간에 가슴 한켠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