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스승의 날 주눅 드는 교원가족, 이젠 벗어나고 싶다

등록|2011.05.14 19:14 수정|2011.05.18 10:54

▲ ⓒ 이재연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교사와 결혼하면서 '교원가족'이 된 저에게도 학창시절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담임선생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꽂아 드리고, 친구들 몰래 곱게 접은 손수건 한 장을 교무실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도망치던 학창시절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스승의 날 존폐여부 설문조사에서 학부모 65%가 스승의 날을 없애는 것은 반대하되 학년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말로 날짜를 변경하길 바란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1964년에 병중이거나 퇴직한 교사들을 위문한 사은행사가 계기가 되어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 오늘에 이르게 된 역사적인 이 기념일이 교사가족인 저에게는 반갑지가 않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스승의 날'을 폐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비롯해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성년의 날 등 모든 기념일은 존속되면서, 스승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되새기기 위한 스승의 날을 폐지하는 것은 교사들에게는 서운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스승의 권위가 땅으로 곤두박질 친 세태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스승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존속은 해야겠지요.

그렇다면 가르침을 주는 스승, 존경하는 스승, 잊지 못할 진정한 '스승'께 감사를 드리는 기념일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존속시키되, 비교적 소속감이 덜한 2월의 마지막날은 학부모들이 부담을 덜 수 있는 날이며, 아이들도 한 해 동안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면 '스승의 날' 의미에 조금 더 다가서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

의무적으로 주는 선물, 차라리 주지도 받지도 말자

그러나 근본적으로 마음의 짐을 완전히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스승의 날을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부모는 부모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양쪽 모두에게 중압감만 주는 스승의 날 선물,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과 학교장 재량 휴일 등의 온갖 방법에도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학부모와 교사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 가족인 제 입장에서 보면 그날의 중압감을 마치 교사가 조성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너무나 고착화 되어 있어 보입니다. 매년 5월 15일이 되면 하루종일 들어야 하는 매스컴의 무차별적인 교사책임론에 지은 죄도 없이 주눅드는 사람이 바로 우리 같은 평범한 교사들과 그 가족입니다. 

매스컴에선 수백 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에 몇 백만원의 촌지와 부촌에선 자동차를 사주었다고 떠들썩하지만 우리 같은 평교사와 가족들은 정말 누가 받긴 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소문에 스승의 날마다 죄인처럼 움츠려 듭니다. 그럼에도 마치 촌지의 은덕으로 누리는 호사라도 있는 사람 마냥 매도당 할 때, 항변 한마디 못하고 고개 숙여야 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교사인 남편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9년 동안, 단 돈 10원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근무지가 서울의 서민 동네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눈 먼 돈과 고가의 선물, 구경조차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주변에서 받았다는 사람을 목격한 경험도 없습니다. 

교사도 아이 시절을 거쳐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었습니다. 촌지와 선물로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작든 크든 누군가에게 선물하려면 돈 있어도 뭘 사야 할지 고민이고, 적은 돈으로 실망시키지 않고 주는 사람도 부끄럽지 않을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물며 내 아이를 맡긴 교사에게 줄 선물이라면 고뇌에 가깝습니다. 2011년에는 스스로 옭아 맨 고리를 끊고 자유로워지면 어떨까요.

뇌물과 선물은 '마음'을 담은 것의 차이

고가의 선물이니 촌지니 하는 말폭탄에 짓눌려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는 스승의 날을 견디는 교사들도 학부모들과 같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입니다. 학부모가 음료수라도 가져오는 날이면 혹시 봉투가 감춰져 있을까 살펴봐야 하고, 교우관계와 성적 때문에 꼭 의논할 일 있어서 부모님께 전화하려면 몇 번이나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가 놓았다가 망설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교사 스스로 갖는 피해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왜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성을 감당해야 하는 본업에 몰두하지 못하고,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야 하는가 하는 대목에서 또 화가 납니다.

제 생각은 하루 종일 비슷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목청 높여야 하는 교사의 특성상, 목마를 때 다른 반 교사들과 나눠 마시라고 오렌지 주스 한 박스 사주는 것, 그것까지 뇌물이라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사한 이웃집에 갈 때 세제와 비누를 주며 거품처럼 부자 되라고 빌어주던 그런 덕담을 담은 선물처럼, 교사는 또 그 마음을 감사하며 마실 수 있는 정도는 서로에 대한 예의이며 인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왜 학부모와 이런 인정과 마음을 나누는 교류조차 단절해야 하는 지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만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겠죠.

스승을 존경하고, 또 존경받는 스승이 되기 위한 서로의 자리 찾기를 위해 우리 어른들 모두가 2011년 과감히 용기를 내어 보시면 어떨까요. 내 아이만을 위한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작지만 세상을 바꾸는 소중한 일에 동참하는 의미로 촌지, 뇌물,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나란히 서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약속을 실천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는 실천하는데 남들이 다 주면 우리 아이만 혹시?'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것.
둘째, '누가 그러는데', '이렇다더라'는 등의 소문에 흔들리지 말고,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내 신념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에 자부심과 옳다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스승의 날 선물은, 아이가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의 선물입니다. 언젠가 분필 한 통을 흰 종이에 곱게 포장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라고 연필로 쓴 카드와 함께 받았던 스승의 날 선물을 가장 인상깊게 기억합니다.  모두가 이렇게 아이의 마음으로 감사를 표한다면 앞으로 최소한 이 논제만은 투명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수정한 내용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