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하면 중소기업 도산? 전혀 틀린 말"
[10만인 클럽 특강]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①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2012년과 노동집권플랜'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열린 '10만인 클럽' 특강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44)이 노동조합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푸른 조끼를 입고 등장했다. 지난 2010년 1월 6대 위원장에 취임한 그는 역대 최연소 위원장이다.
당선 당시 김 위원장은 투쟁의 무리수를 두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온건파'로 분류됐다. 예상대로 취임 초기에는 "뻥파업은 하지 않겠다"며 상정돼 있던 총파업을 철회하기도 했고 연중 가장 큰 규모의 집회인 노동절 집회도 '평화적'으로 치렀다. 불필요한 충돌로 전력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기력'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실리'를 찾기는 불가능했다. 정부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복수노조법에 반발하는 노동계의 요구에 철저히 귀를 막았다. 결국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정책 연대를 선언했던 한국노총도 정부와 절교하며 돌아섰고, 민주노총 또한 권력누수 현상이 뚜렷해진 정권에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강연에서도 "노동조합의 보다 적극적인 정치투쟁", "노동집권을 위한 진보정당 통합"을 강조하며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상당한 실력행사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노동과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 법·제도 바꾸는 정치투쟁 있어야"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향한 '강성노조', '정치투쟁 몰입'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더욱 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며 "노동과 정치는 뗄 수 없는 태생적인 동일선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조합원들의 복지나 고용 등 본연의 일에만 신경 쓸 일이지 정치에 관심을 두느냐는 비판은 흡사 5공 시절이나 군사정권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예컨대 민주노총이 심혈을 기울이는 최저임금 현실화는 '최저임금법'이라는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비정규직 또한 '비정규직법'으로 강제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정치투쟁이 있어야 한다."
이날 강연의 제목도 그는 "'노동집권전략' 또는 '노동 정치론'"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운동의 태동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경제적 요구와 함께, '보통선거 실시'라는 정치투쟁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노동운동, 노동정치의 모델로 유럽의 스웨덴과 독일의 사례를 강조했다. 두 국가 모두 최근 오랫동안 유지된 사민주의 정권이 몰락했지만 현재의 복지와 노동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초기 노동자들의 정치투쟁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단일노조인 독일의 공공서비스노조와 독일 금속노조는 자신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오늘 우리의 요구는 내일의 법'이라고 표현 한다. 스웨덴의 사민당이 창당 이후 17년만인 1932년에 집권했는데, 이때 구호가 '나는 투쟁하길 원한다. 나는 통치하길 원한다'였다.
소위 '스웨덴 모델'은 기업과 정부, 노조의 사회 대타협을 통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이룬 것인데, 이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고, 강력한 투쟁으로 만들어낸 타협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결의 정치가 스웨덴을 쫓을 것이라면 노동조합의 정치 투쟁이 더 인정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스웨덴과 독일은 모두 우파 연립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를 "신자유주의라는 '제3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도 유럽에서 진보정당이 몰락한 것은 "진보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절대적인 것처럼 수용하면서 노동유연화 등을 전면적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한 복지정책은 없다"며 "복지는 좌든 우든 할 수 있는, 단지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을 복지를 통해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용 현장에서부터 빈곤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 이후 이명박 정부와 같은 극우적 정부가 들어선 것도 이전 정권에서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했기 때문"이라며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기업별 노조 강제하는 사회 구조, 노조 조직률 떨어뜨려"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2012년과 노동집권플랜'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또한 최근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로 주목받고 있는 '국민노총'(제3노총)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국민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상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MB노총'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소위 '세습 채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현대자동차 노조의 단협안과 관련해서는 "수용 가능성이 없는, 별로 실속 없는 일"이라면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일이 다시 제기 되지 않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 오연호 대표가 나눈 대담을 1문1답 식으로 정리했다.
-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이 10% 남짓이라고 했는데 그럼 민주노총의 목표는 어느 정도인가?
"임기가 내년(2012년) 연말까지다. 100만 민주노총 시대를 약속했다. 20만을 더 모아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공단에 가서 노조를 열심히 조직하고 체불된 임금도 받아내도 '민주노총에게 고맙기는 하지만 노조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이미 사측으로부터 임금 인상과 복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기업별 노조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국사회는 오랜 독재정권 아래서 기업별 노조를 정착시켰다. 노동의 아주 근본적인 문제인 노동시간단축이나 최저임금 현실화 등은 기업별 노조에서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직률이 높은 중소기업일수록 실업급여 현실화가 중요한데 그것 역시 기업별 노조에서는 달성하기 어렵다. 정치투쟁이 불가능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래서 산업별 노조를 추구하고 있지만,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려는 사회구조가 노조 조직률을 떨어뜨리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사회 이념은 무엇인가? 사민주의, 사회주의, 아니면 보다 나은 자본주의인가?
"민주노총이 꿈꾸는 세계가 어떤 곳이냐는 대단히 핵심적인 문제다. 지금까지는 사실 노동중심 사회, 노동존중 사회 정도만 이야기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대안을 못 만들어서이지만
국가보안법 속에서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사회를 이야기 하는 데 제한이 있다. 일단은 노동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그런 복지국가로 정리하고 있다. 대답이 조금 모호하다."
"제3노총은 'MB노총'일 뿐... 경로당 봉사 보다 노인수당 투쟁해야"
- 7월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된다. 어떤 변화를 예상하나?
"민주노총은 우선 현재의 복수노조법을 반대한다. 한국노총도 마찬가지다. 야당들과 함께 법개정안을 공동발의 해놓고 있다.
복수노조는 모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노조를 결성할 권리를 단결권이라고 하고, 단결해서 교섭할 권리를 단체교섭권, 교섭이 안 돼 파업이나 태업 등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단체행동권이라고 한다. 이는 노동기본권이라고 헌법에서 규정하는 헌법적 권리다. 이것들은 삼위일체이고 하나라도 없을 때는 노조라고 할 수 없다. 현재 복수노조 법안은 노조를 만들 권리만 있고 교섭권은 다수 노조에게만 허락된다. 교섭을 하지 못하는 노조는 당연히 단체행동권도 없다. 위헌적인 법 조항이다.
하지만 우리가 반대한다 해도 7월 1일(법령 시행일)은 다가온다. 적극적으로 법 개정 운동을 함과 동시에 조직확대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하고, 대표적인 무노조 대기업인 삼성과 포스코 등에서 노조설립운동을 펼칠 것이다."
- 제3노총(국민노총)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 민주노총의 한 축이었던 서울 지하철 노조가 조합원 53%의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두 번의 시도 끝에 기어코 탈퇴를 하고 말았다. 탈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은 정치투쟁만 하고 있다. 새로운 노총을 만들어서 국민을 섬기겠다'고. 그러면서 지난 노동절에 경로당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명백히 잘못됐다. 노동조합이 경로당에서 봉사활동해도 좋은 일이지만 그런다고 노인복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노인수당을 삭감한 이명박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국민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상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MB노총'일 뿐이다. 그들도 정치투쟁을 한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오세훈을 지지하는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들은 반노동자 정당을, 우리는 친노동자 정당을 지지할 뿐이다. 서울지하철 노조에도 아직 (탈퇴를 반대한) 47%의 건강한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변화는 가능하다고 본다."
- 노조 조직률이 10%라고 했을 때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노조가 없다는 이야기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수천 명이 근무하는 대기업인데 그런 곳도 노조가 없다. 삼성에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업분야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위원장의 생각은?
"민주노총 산하에 16개 산별 연맹 가운데 IT노조의 규모가 가장 작다. 정보통신산업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업무 특성상 다른 분야와 차이점이 있지만 관련한 토론회도 개최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겠다. '네이버'나 '다음'에도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 그들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가져야 한다. 굳이 민주노총으로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본주의 기본원리 무시한 건 자본... 동일노동에 동일임금 지급해야"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10만인클럽 특강'에서 '2012년과 노동집권플랜'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민주노총 소속 대기업 노조에서 이 문제에 관심이 덜하지 않았나? 특히 현대차에서 이른바 '세습 채용'이라는 비판을 받은 직원의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는 단협안이 나왔을 때 이 같은 비판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조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전제를 깔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고 싶다. 정년을 한 조합원 자녀에게 가산점을 줘야 한다는 요구는 여러 가지 요구안 가운데 하나였다. 수용 가능성이 없는, 별로 실속 없는 일이다. 지난해(2010년)에 비정규직 문제로 그렇게 투쟁을 해놓고 왜 안 해도 되는 일을 했을까?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를 인식하는 감수성이 없다는 비판에 공감한다.
50세를 넘긴 조합원들 사이에서 그런 요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30여 년 전 소위 '공돌이'로 입사한 분들이다. 입사 시험도 없었다. 자기 자식만큼은 '공돌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대학, 대학원에 보냈다. 그런 젊은이들을 공장에 다니게 해달라고 요구하게 만든 일에 더 분노해야 한다. 공장 노동자가 특권이 돼버린 야만의 사회다. 그럼에도 이번 일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다. 총연맹 위원장으로서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최우선에 놓고 이런 문제가 두 번 다시 제기되지 않도록 지도할 것이다."
- 민주노총이 생각하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으면 비정규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면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비참함은 동일가치노동에 다른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에 있다. 자동차 왼쪽 바퀴는 내가 달고 오른쪽 바퀴는 네가 다는데 임금이 다르다. 동일가치노동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하나의 개선점은 직접고용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자신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직접적인 이윤창출의 당사자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자본주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바로 자본이다. 현대차를 위해 일하면서 현대차 직원이 아닌, 이 야만적인 상황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이 현실화 돼야 한다. 비정규직 가운데 다수가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이 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중소기업이 도산한다고 하는데 전혀 틀린 말이다. 인건비를 아무리 줄여도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치면 기업은 도산한다.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 때문이지 결코 인건비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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