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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위에서 130일..."트위터 아니면 김여진 못 만나"

[전화인터뷰] 35m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 "관심의 끈 놓지 말아 달라"

등록|2011.05.16 11:19 수정|2011.05.16 11:30
"열여덟살 옷공장,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 용접공,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쉰둘. 20년 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 있다 목을 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 와, 울다가 웃다가."

35m 높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트위터(@JINSUK_85)에 올려놓은 소개글이다.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지난 1월 6일 고공농성에 돌입했던 김 지도위원은 15일로 130일째를 맞았다.

▲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미터 높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다. ⓒ 윤성효

김 지도위원은 크레인 위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지만, 요즘 바쁘다. 트위터 때문이다. 고공농성을 시작하면서 트위터를 시작하다 한때 '자폭'해 한동안 하지 않다가 지난 2월 말부터 다시 시작했다. 16일 현재까지 4200여 개의 글을 썼다.

김 지도위원은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현재 그의 팔로워는 3780명이 넘는다.

영화배우 김여진씨가 지난 4월 10일 고공농성장을 찾았고, 두 사람은 트위터로 소통하면서 알게 됐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노조 간부들이 노동운동 경력을 쌓으려 체포 구속된다"라는 발언이 알려지자 김 지도위원은 농성을 하면서 트위터 댓글로 이를 비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철회'가 되지 않는 한 내려오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공농성 130일째인 15일 저녁 김진숙 지도위원과 휴대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김 지도위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트위터를 언제부터 시작했나. 
"고공농성 9일째이던 지난 1월 14일 지인 권유로 시작했다. 2월 7일까지 고공농성 25일간 947개의 글을 썼고, 2월 10일 '자폭'했다. 트위터 계정을 없앴다. 한동안 하지 않다가 2월 25일부터 다시 해 5월 15일까지 4170개의 글을 썼다."

- 트위터 하면 어떤 게 좋은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크레인에 올라온  뒤 느낌이 많이 떨어졌다. 신문도 보지 못하면서 정보가 차단됐다. 어떤 경우에는 단어도 생각나지 않고, 책 이름도, 사람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정말 퇴화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절망할 정도였다. 트위터를 하면서 시시각각 정보를 접하니 좀 괜찮아졌다. 평상심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정보도 얻고, 제3자와 연결도 된다."

"언어까지 잃어 버리는 장기농성... 트위터로 평상심 유지"

- 영화배우 김여진씨가 지난 4월 10일 고공농성장을 찾은 것도 트위터로 소통한 뒤였다고 하던데.
"김여진씨도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고, 서로 공감했다. 트위터가 아니었다면 그런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루에 한 명 내지 한 팀 이상은 트위터로 알고 온다고 하더라. 제가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읽는 사람이 지금까지 3800여 명 정도다. 좋은 글이 있으면 '리트윗' 되는데, 김여진씨의 트위터를 읽는 사람들도 굉장하니까 엄청난 속도가 붙는다고 보면 된다."

- 얼마 전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노조 간부들이 노동운동 경력을 쌓으려 체포 구속된다"고 했던 말에 대해서도 트위터로 댓글을 달았던데.
"'근데 난 왜 이러고 있지?'라고 반박했다. 이채필 후보자가 장관이 되기도 전에 갖가지 망언을 하고 있다. 댓글을 달았더니 제가 '발끈'했다고 기사를 쓴 언론도 있더라."

- 이채필 후보자의 그런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왜 노동자들이 싸우고, 왜 구속될 수밖에 없는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장관을 하면 노동자들의 앞날이 얼마나 암담하겠나. 지금 정부 부처는 모두 자본가를 대변하고 있다. 노동부장관은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지 않나. 노동부 장관이 그런 천박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지금 정부 부처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살펴봐 주는 곳은 없다."

▲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과 함께 지난 4월 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사진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통화하고 있는 김여진씨의 모습. ⓒ 최성용

- 지난 5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정리해고자들이 한진중공업 사측을 상대로 냈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기가 막힌다. 조합원들이 이길 것이라고 100% 자신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됐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수주를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물량 빼돌린 정황도 있다.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고, 지금 우리나라 중대형 조선소 가운데 한진중공업만 수주를 못하고 있다.

지노위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구제신청을 기각한다고 했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 지노위 결정 뒤 배우 김여진씨도 트위터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를 해야 한다는 게 이유라면 경영진이 잘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라. 이번 정리해고는 명백히 사측의 의도적인 것이다. 조합원들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어 벼랑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극한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50m 높이 '17호 타워크레인'에서 87일간(2월 14일~5월11일) 고공농성을 벌였던 전국금속노동조합 문철상(48) 부산양산지부장과 채길용(53)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내려왔다.
"장기 투쟁을 하다보면 전술이 변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한다. 87일 전에 올라간 것은, 그 때 상황에서는 올바른 것이었다. 87일이 지났지만 사측 입장은 변화된 게 없고, 노동자들이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전술을 그대로 할 수 없다. 변화된 전술로 이해하면 된다. 노조 지부·지회장이 고공농성을 풀어 실망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지도부가 내려와서 더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크레인 위에서 130일...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조합원 이탈 현상도 있는데.
"장기 투쟁을 하다보면, 막판에는 해고자밖에 남지 않는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그동안 여러 사업장 돌아다니며 겪은 상황이다. 다른 사업장 사정을 모르면 지금 한진중공업 상황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다른 사업장은 정리해고가 발생하면 '산 자'와 '죽은 자'가 파이프 들고 싸우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진중공업에서는 그런 상황은 없다. 지금 조합원 이탈이 있다면 사측의 잘못이다. 그들도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아마도 다리 펴고 잠을 못 잘 것이다. 그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유연하고 폭 넓은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 한진중공업 사측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상대로 법원에 냈던 '퇴거가처분소송'이 받아들여졌고, 하루 100만 원씩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상태다. 현재까지 1억3000만 원을 내야하는 처지인데.
"돈은 없다. 몸으로 때우든지 해야 한다. 이기면 교섭 과정에서 풀리지 않겠나."

- 한진중공업 사측은 노동조합과 교섭을 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답답하다. 여기서 강아지와 함께 며칠 지낸 적이 있었다. 하루는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아파 고통스러워했다. 노동자들은 회사를 위해 10년이고, 길게는 20년 넘게 일해 왔다.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 사람들을 잘라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나.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해고를 밀어붙였다. 누군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정말 많이 싫다."

▲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3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다. ⓒ 유장현


-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전 국회의장)도 대화조차 하지 않는 한진중공업 사측을 비난했다.
"다들 자기 편이다. 한나라당 의원이면 자본가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조차 한진중공업 사측을 비난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현재 경영진이 하는 행태가 말도 안된다는 증거다."

"정리해고 문제에 관심의 끈 놓지 말아달라"

- 야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노동절(5월 1일) 이틀 전 전화를 했다. 요구가 무엇이냐고 묻더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으로, 노동절을 기해 고공농성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크레인 위에까지 올라오겠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 올라 오면서 스스로 결심한 게 있는데, 무너뜨릴 수 없다. 농성장까지 올라오려면 중간까지 계단으로 올라와서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문을 지금은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누군가 한 번 올라오면 내가 결심했던 원칙이 무너진다. 기자들도 요구하고 있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복지국가나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진정성을 갖고 매달려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나라당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왜 못한다는 말인가."

- 처음 고공농성에 돌입할 때 100일, 130일 동안 있을 것이라 예상했나.
"날짜 기약하고 올라온 게 아니다. 100일, 130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끝나는 게 중요하다. 날짜는 의미가 없다.

- 더 하고 싶은 말은?
"조합원들도 많이 힘들어 한다. 장기 투쟁을 하게 되면 고립된다. 싸우다가 힘도 잃어버리고 굶주리고 날도 있다. 이런 데서 외톨이로 남겨지는 소외감이 두려운 것 같다. 누군가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어쨌든 시민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에서 경험하지 않았나.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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