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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번 째 5.18 그리고, 영화 <박하사탕>

등록|2011.05.16 11:11 수정|2011.05.16 11:11
5월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5·18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진실이다. 그 날의 그 곳은 피해자들에게도, 가해자들에게도, 먼 곳에서 무지했던 일종의 방관자들에게도, 혹은 그 날을 겪어내지 않은 이후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결코 편해질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외면하면서 산다. 외면하고서, 잊고 싶어 하면서, 잃으면서 산다. 당사자들은 기억하기조차 아파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날의 그곳을 조금씩 잊고, 잃는다.

▲ 영화 <박하사탕> 포스터 ⓒ 신도필름

그래서 이 맘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고 있는 것은 불편하다.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우리에게 펼쳐낸다. 치료하지 않아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들이밀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타의에 의해 반대편에 서있었던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한사람의 삶이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불편한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 '무엇이 그의 삶을, 그의 순수함을 짓밟아 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감독은 '철로를 통한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효과적인 장치를 사용한다. 영화에서는 시퀀스가 바뀔 때 마다 철로가 거꾸로 흐르며 주인공의 시간 역시 되감기 된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주인공 '김영호'가 동창들의 야유회에서 어울리지 못하다가 "나 돌아갈래!"라는 절규와 함께 철로 위에 올라 자살을 선택한 이후로, 영화는 역순행적으로 구성된다. 지금 그는 주식에서 실패했고 동업자에게 사기도 당했다. 그러나 한때 가구점을 운영하며 돈도 많이 벌었던 사람이기도 하였고, 불륜을 저지르며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리면 노동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자백을 받아내던 '미친개' 형사였던 '김영호'의 모습이 있다. 더 먼 과거에는 처음 고문을 하다 손에 뭍은 노조원의 대변을 기겁하며 씻어내던 신참 형사의 모습도 그려진다. 그리고 과거의 1980년 5월 18일, 광주.

군인시절, 시간에 쫓겨 순임이 준 박하사탕마저 짓밟으며 출동한 그때 그곳에서 '김영호'는 발에 총상을 입어 대원들에게서 낙오되고 실수로 한 소녀를 사살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 채 일그러트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자 가장 먼 과거인 20년 전에는 첫사랑 순임과 함께 하는 순수한 '김영호'가 있다. 순임이 주는 박하사탕을 받아먹으며 들꽃을 찍고 싶다던, 첫 장면에서 중년의 타락한 영호가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시절의 '김영호'가 거기에 있었다.

주인공의 불행의 시작점을 찾아 현재로부터 과거로 진행되어 가는 이와 같은 영화의 구조는 주인공과 그 인생이 파국에 이른 원인을 분석해내는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구성과 달리 관객에게 적극적인 영화 보기를 권하고 있다.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며 그의 인생과 직결된 한국 현대사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혐오스럽기까지 했던 중년의 '김영호'에서 순수했던 청년 '김영호'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은 그를 점차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꿈 많고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한 인물이 타락하고 실패한 인물의 전형이 되기까지… 영호는 역사에 의해 받은 상처를 타인들과 공유하지 못한 채 혼자 괴로워하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가 겪었던 수많은 고민과 아픔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하게 된다. 영화 중간 중간 다리를 절던 그의 모습을 연민하게 되고, 술집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면서도 애타게 순임을 부르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김영호'가 그토록 타락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전에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트라우마를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만의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순응이라는 그의 삶의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외면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이처럼 <박하사탕>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박하사탕>이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영화는 아직도 유의미하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무엇이 그의 삶을 망가트렸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삶을 망가트린 이유를 찾긴 했지만, 망가진 그의 삶을 바로 잡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5월 18일을 광주 폭동이라고 부르고, 시민폭도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박하사탕>을 포함한 자신의 작품들이 불편하고 힘들다는 의견에 대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 사건은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악몽 같은 꿈이 아니다. 힘들고 불편하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 번 5·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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