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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방의 원내무림대표가 우려연수방이라지?

[연재소설 대권무림 2] 2012 대한무림국 맹주 비무대회

등록|2011.05.16 18:21 수정|2011.07.13 10:19
"자, 자, 사범 여러분.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입니다. 나 진도창, 후광 황제 시절 문화무림부 장관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문화 전문가가 아닌 내가 문화무림부 직원들의 칭송을 받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배움의 자세와 부하 직원에 대한 신뢰, 그리고 노력이었습니다. 이것은 무림국 대변인과 황제 비서청장으로 근무할 때도 일관된 자세였어요.

나는 후광 사부를 모실 때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새벽 5시 이전에는 반드시 사범님의 댁에 차를 대어 브리핑을 했어요. 이제 학규공자께서 우리 민주공방의 진정한 맹주가 되셨으니, 민생투어를 통해 얻은 민심과 무공연마를 위한 장기간의 칩거를 통해 깨우치신 비무를 우리 무림계에 전수하시는 데 인색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민주공방의 의회사범 이하 모든 무인들은 학규공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기울이고 내년에 있을 무림의회의 대련과 대한무림국 황제 선출대회에서 반드시 우리 민주공방이 대권을 되찾아올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합시다."

그 침착하기로 유명한 지원지도창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림의회 여의도골에서 가수로 유명한 지원진도창은 학규공자의 부추김을 받자 내친김에 노래 한 자락을 읊었다. 가슴부터 우러나는 그의 남도가락은 '나가수'와 '슈스케', '위탄'의 모든 참여자들의 노래 실력을 압도하고도 남을 위력이 있었다. 노란 모자를 즐겨 쓰는 진아절창의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개사한 곡이었다.

"무림황제는 아무나 하나/ 칩거내공이 진짜 비법이지
무림황제는 아무나 하나/ 역전우승이 진짜 승리야."

그 순간, 동영통사와 세균무진장의 얼굴에 미세한 떨림이 감지되었으나 워낙 깊은 내공의 무도인인지라 머글(일반인)들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볼드모트의 강력한 힘이 인도네시아와 후쿠시마를 공략한 강력한 쓰나미처럼 민주공방의 권력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무림정치란 이런 거였다. 박수를 치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두 사람 곁에 있던 사범들도 차츰 학규공자의 허리춤을 붙잡고 댄스를 추고 있었다. 환희의 송가가 민주공방에 울리고 '축하송'에 맞춰 뻥 하고 샴페인이 터지는 순간에는 무림국이 민주공방의 그늘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학규공자가 잔을 받아들고 일갈했다.

"지금 우리는 100m 출발선에서 몸을 풀고 있습니다. 필드에서 있었던 투포환 던지기에서 우승하여 어느 코치가 슈퍼에서 사온 2천 원짜리 오스카샴페인을 들고 있지만, 2012년에는 무림의회와 무림대권을 모두 다시 가져와 진정한 무림천하를 건설하여 국민들에게는 경제적 안정과 평화를 약속하고 우리 공방에는 봄이면 피어나는 꽃들과 같은 무림이상향을 건설합시다.

그리고 들었던 이 샴페인 잔은 다시 내려 놓읍시다. 우매한 고수들이 너무 일찍 터뜨렸다가 범했던 무림대권의 우를 우리가 다시 범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것은 무림국 백성들의 진정한 뜻에 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조용히 집으로 가 새 날을 맞이합시다."

말을 마친 학규공자가 천천히 일어나 민주공방청의 문을 나서 그의 중형인력거에 몸을 집어넣을 때까지 사범들의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학규공자는 학자 출신답게 인력거 기사에게 어린이보호구역 30km 이하 정숙주행, 튀어나온 도로에서의 안전운전을 당부하고, 혹여 인력거기사가 음주 상태가 아닌가 새로이 발명된 음주측정기를 통해 확인해본 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실로 얼마 만에 틔어난 새순인가? 봄이 왔다.

제2장 무림대권은 KTX를 타고

무림황제의 거처인 청와궁이 있는 서울본진방의 어느 한적한 주막. 여의골에 위치한 무림의회의 수장인 원내대표(과거, 원내총무장)를 지낸 학도호국단장인 한나라방의 무성부도청(釜道廳)과 민주공방의 지원진도창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각각 두 산방의 상징을 표시하는 목포정과 부산진의 전통주인 탁배기(막걸리)를 한 수레씩 싣고 왔다.

무성부도청이 시킨 부산진의 대표안주 곰장어와 지원진도창이 주문한 목포정의 대표안주 홍어를 원탁의 바퀴 위에 올려놓고 앉아 권커니 작커니 아주 맛나게 찌그러진 노란 잔에 따라 마셨다. 걸쭉하게 한 잔을 비운 무성부도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경상도 사내의 무뚝뚝함과 테너의 저음이 낮고 부드럽게 깔리는 그의 성우 뺨 때리는 목소리는 마치 방금 비운 막걸리의 걸쭉함만큼이나 깊숙한 존재감이 있었다.

"지원진도창 형님과 함께 한 지난 일 년 간 무림의회 대표로서의 일은 아주 행복한 기억이었습니다. 역시 자타공인의 무림국 질서 조정자로서의 진도창의 일거수일투족은 저의 내공으로는 가히 주체할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대중 황제의 공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니, 거 무슨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가? 아주 오랫동안 무림의회의 특혜(?)로부터 비껴 살아온 몸. 의회에 진출할 때도 민주공방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내가 공방의 의회수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좌충우돌, 말도 아니었지. 맹주님을 모실 때, 그의 입을 자처하면서 조신했던 전례가 있어 그저 조심조심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거대산방인 한나라방의 거침없는 무공들과 때로는 일합을 겨루고, 때로는 저 일찍이 <손자병법>을 작성한 손무, 손빈 거사의 일갈처럼 피해 다니다보니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났지.

한나라방의 다음 원내무림대표가 우려연수방으로 정해졌다지? 우리 민주공방이야 의석 90명도 안 되는 단촐한 살림, 과거와는 다르게 월등 비중이 돌출된 원내대표라는 자리인지라 우리 공방도 차기 문제로 치열해. 아마 지난해 경기도방에 도전했다가 시민객장의 언변장풍으로 패퇴한 진표행공자와 도력이 깊은 전통의 비검 봉균기공차, 그리고 무림법률사 출신의 선호소주(笑宙)가 일합을 겨룰걸세.

무성부도청도 우리 공방 내 사정을 잘 알겠지만 동영통사, 세균무진장 등 전 공방 맹주들이 운영하는 도방에 속한 사범들의 수가 엇비슷하고, 또한 두 도방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작은 도방을 운영하던 소사범들이 난립하는 것이 우리 공방의 사정이잖은가. 허나 한나라방의 절대내왕금지구역인 분당골을 점령한 학규공자의 공력에 굴복한 소사범들은 물론 기존의 대도방에 속해있던 사범들마저 분당결투 이후 맹주 학규공자의 도방에 속속 참여하고 있다네.

이 세 분, 민주공방의 얼굴들의 대리전이라 쉽게 승부를 예측하기는 중앙무림리서치기관인 '대한무도리서치'도 어려운 일. 무림의회 4선인 우려연수방의 우려스런 권법을 당해낼 구담밀사(口談密師)가 나와야 할 텐데. 뭐, 다들 훌륭한 공력을 터득하신 권법의 달인들이신지라 누가 뽑혀도 잘 해낸 거라고 믿어. 나 같이 한물 간 권법으로도 버텼는데 뭘. 지금이야 무림의회의 절대권세도 퇴락하여, 불물율로 지켜오던 의원 20석 이상을 차지해야 무림의회 내 교섭단체의 권한을 부여하던 원내총무 시절도 지나버린 걸."

지원진도창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마치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공력에 짚불을 지펴 궁극에는 무림의 대권을 짊어졌던 대중 황제의 빙의가 묻어나오는 듯했다. 그의 말마따나 철맹방인 아메리카연합국의 경제인으로 미국이라는 서양무림의 절대맹국의 시민권법으로 대한무림국을 돕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온 대중공의 공력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에게 무림정치의 쓴맛, 신맛, 단맛 모두를 경험하게 했다.

삼십 년 간의 부부애보다 더 끈끈한 무림애제자의 관계는 진도창을, 무림국의 황제로 햇볕의 온기를 '북조선인민폐쇄공방'에 전해준 일로 대한무림국 최초로 스웨덴무림평화공국의 노벨무림평화상을 수상한 대중 황제처럼 보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만큼 그의 얼굴에는 평화의 비둘기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잘 아시다시피 무림산방 안으로 얼굴을 내민 무술인들은 일단 무림의회에 진출하여 사범의 입지를 획득하면 다들 무림의 맹주 자리와 대권을 노립니다. 진도창 형님의, 여야는 물론이고 대중 황제와 정일북로방까지 탄복시킨 질서정연한 무술의 논리는 연치와 상관없이 민주공방은 물론 무림의 맹주도 시원치 않을 것입니다. 뭐,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학규공자의 리더십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지금까지 민주공방의 진정한 결집에는 진도창 형님의 화합권이 크게 한몫을 한 게 아닙니까?"

지원진도창이 따라준 목포막걸리의 넓은 평야 맛에 한량으로서의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무성부도청은 지원진도창의 의중을 넌지시 떠보고 있었다. 근혜여랑위의 무림좌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부터 이미 무림맹주를 꿈꾸기는 무성공도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에는 경상도 남객 특유의 마초가 깃들어 있어 조금이라도 무공에 발을 들인 무인들이라면 부러워하지 않는 이 없었다.

상도정파의 근위검객으로 영삼맹주를 호위한 지 어언 사십 년, 육십갑자(甲子)를 한 번 돈 연치의 입장과 남명선생의 유지를 받든 영남공파의 일원으로 충분한 자격도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정기 무술경연에서 패퇴한 지금, 한나라방의 무림 시계는 마치 '거꾸로 처박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무림대권의 대경연을 한참 앞두고 고만고만한 주자들이 나와 10000m 출발에 앞서 서서히 눈치를 살펴야 할 시국에, 지금으로부터 37억 년 후에나 사멸하여 백색왜성으로 블랙홀로 빨려들 지구촌의 미래를 걱정하여 경고로 만든 핵학자들의 종말시계(Doomsday Clock)의 출현마냥, 근혜여랑위로 급속히 재편되는 한나라방의 현 처지도 무성공의 공력으로 보면 안쓰러운 것이었다. 어떠한 이유로든 급속도의 사태 변화는 무림국 절대 고수들과 민중들의 안위에 전혀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아이쿠, 내가 한 방 맞았구만. 무성 동상의 권법은 아이러니야. 과거 두한종로방의 '입뽕'도 아니고, 동대문파의 씨름꾼 정재교수형의 패대기도 아닌데, 무성부도청 동상의 떡 벌어진 가슴과 '가빠'만 보면 살이 떨려.

오래된 얘기네만 박통철권법 통치 시절,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한합의서를 끌어낸 후락떡고물께서 북조선에서 잘못되면 자살하려고 극약을 가지고 있었다 하네. 일반적으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무서운 것이 없거든? 그런데 말야 이 양반, 일성장군의 업적을 '페이스오프'한 성주혹방주를 만나자마자 오줌을 찔끔 지렸데, 하하하. 무서웠을거야. 왜, 대단한 카리스마 앞에 서면 왠지 움찔해지는 그 기분, 자네에게서 나는 그것을 느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지원진도창의 비권의 비밀은 마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국정원 사람들처럼 무덤까지도 가지고 가는 비공개에 있지. 나도 사람인지라 한 문파의 맹주를 꿈꾸는 것은 사실이네만 무림정치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사람들은 흔히 정치를 실물에 비유하고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지 않나. 공자께서 <논어>에서 말씀하셨지. '대군을 통솔하는 장수는 사로잡을 수 있어도, 평범한 한 사내의 깊은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나는 아무런 죄책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마의 광기나, 타인의 예금을 마치 사금고처럼 마음대로 유린하는 지금의 저축은행의 사태처럼 '사이코패스'로 가득한 무림정치인들을 많이 봐왔네. 그리하여 자강불식하였으나 많이 부족했지. 나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 무림계의 절대 공방 중 하나인 민주공방의 맹주 자리를 탐하겠나. 무성공, 아니 좋은 동상. 그런 말 마오. 부끄러워져."

지원진도창의 안색이 정말 붉어졌다. 물론 두주불사로 소문난 두 사람이 초저녁부터 마시던 말술의 영향도 있었으나, 딱히 그런 탓만은 아닌 듯했다. 사려 깊은 성격의 무성부도청은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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