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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지용제'에서 체코대사를 만나다

정지용을 중심으로 한 한국문학사 탐방

등록|2011.05.17 13:49 수정|2011.05.17 13:49

카페 프란스- 지용의 대표적인 서구지향적 가치를 담고 있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 착안하여 대청호를 바라보며 서있는 ‘카페 프란스’는 마치 커피 광고처럼 이국적 정취의 감동적 여운을 준다. ⓒ 박태상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2011년 5월 14일)에는 부산을 떤다. 아니 당일뿐 아니라 전날인 금요일부터 전 가족이 동원되어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한다. 적을 때는 200명, 많을 때는 약 500~600명이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으로 모여든다.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오후 9시쯤 조교와 함께 대형마트에 들어가서는 문을 닫는 밤 12시까지 술과 안주, 과일 그리고 선물  등 저녁 파티를 위한 준비물을 구입한다. 보통 자가용 두 대를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 큰딸은 선물 포장하느라 바쁘고, 장남은 과일과 채소를 씻느라고 새벽까지 부산을 떤다. 이렇게 봉사를 해야만 한국 최고의 문학축제에 참여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지용문학포럼 - 한국과 중국에서 온 4명의 교수들이 각각 지용시의 특성과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한 견해를 발표하여 관성회관을 가득 메운 1200 여명의 관중들을 매혹시켰다. ⓒ 박태상


전국에서 각각 새벽부터 출발한 관광버스가 한곳에서 집합한다. 그곳은 바로 옥천군에 있는 관성회관이다. 몇 년 전부터는 문학관광열차도 수백 명을 태우고 서울을 출발하여 옥천역에 도착한다. 관성회관에서는 지용문학포럼이 한창이다.

올해는 네 명의 교수가 지용시의 특성과 가치에 대해 논문을 발제했다. 서울여대의 이숭원 교수와 한국방송대 교수인 내가 "정지용의 시론과 산문에 나타난 시정신"에 대해 연구 성과를 각각 발표했다.

이어서 중국에서 온 김명숙 교수(북경 중앙민족대학)가 "정지용 후기 시에서 본 고전이미지에 대한 차용과 개조"를, 김영옥 교수(북경제2외국어대학)가 "정지용 시에 나타난 상실 의식과 소외 의식 연구"를 발표했다. 지용의 시는 매우 난해하지만, 발제자들의 발표를 들은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이해하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세미나를 마치니 훌쩍 낮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장기가 느껴진다. 새벽에 집을 나섰기 때문에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까닭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신세계 시비공원이 있는 장계리 산 7-1로 향했다. 대청호를 끼고 있어 경치가 매우 수려한 곳이다. 관광버스 5대와 자가용 3대가 줄을 이어 시골 국도를 달려갔다.

장계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지용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간략하게 해설을 했다. 지용은 1902년 충북 옥천군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지사대학에 유학했다. 휘문고보 다닐 때 2년 선배 홍사용, 2년 선배 박종화, 1년 선배 김영랑, 1년 후배 이태준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박팔양 등과 요람동인을 결성하기도 했다.

호수 시 벽화-관성회관의 담벼락에는 지용의 시 <호수1>을 그림과 함께 새겨 놓아 ‘현대시의 아버지’ 지용의 시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박태상


휘문고보를 졸업한 22세 때인 1923년 유명한 시 <향수>를 썼다. 도시샤 대학 유학시절 <석류>, <민요풍 시편>, <홍춘>, <바다>, <황마차>,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 <파충류동물> 등의 시작품들을 발표했다. 

옴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카페 프란스> 일부

시집 ??백록담?? - 지용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지용의 두 번째 시집 표지. 이 시집에는 지용의 후기 시들인 산문시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다. 서구 지향적인 경향의 초기 시와 달리 전통 지향적인 ‘관념적 정신주의’를 표출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박태상


흔히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주로 외래어를 남발하고, 시각 이미지를 구사하며,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 등이 담겨있다. 따라서 새로운 감각적 시로 당시에는 후배시인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시작품이다. 하지만 시적 언어의 행간에서는 식민지 지식인 청년으로서의 무력감이나 회의 등이 배어져 나온다. 한마디로 자조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지용은 27세였던 1928년 일본에서 뒤튀 신부로부터 천주교 세례를 받는다. 귀국한 1930년에는 김영랑의 권유로 <시문학> 동인으로 시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35년 드디어 첫 시집 <정지용시집>이 시문학사에서 간행되었다. 38세였던 1939년에는 잡지 <문장>을 창간하여 시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을 신인으로 문단에 내보냈다. 당시 <문장>은 소설의 이태준, 시의 정지용, 고전의 이병기, 표지 및 미술사의 김용준 등 4인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상고적 정신주의'를 모토로 내걸어 민족주의 담론을 이끌어나갔다.

1940년에는 길진섭 화백과 함께 선천, 의주, 평양 등지를 여행하고, 글과 그림을 모아 기행문 <화문행각>을 발표했다. 40세였던 1941년에는 제2시집 <백록담>을 문장사에서 펴냈다. 이때는 4월에 잡지 <문장>을 총독부의 일본어글 50% 삽입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진폐간을 단행하여 몸과 마음이 모두 쇠락해져 있던 시기였다. 1944년에는 연합군의 폭격이 있게 되자 서울 소개령이 내려져 지용은 가족을 이끌고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했다.

해방이 되자 그는 이화여전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46년에는 을유문화사에서 <정지용시선>을 펴냈으며, 1948년에는 산문집 <문학독본>(박문출판사)을, 1949년에는 <산문>(동지사)을 간행했다. 1950년 6. 25 당시 녹번리 초당에서 설정식 등과 함께 정치보위부에 의해 구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김기림, 박영희 등과 수용되었다.  다시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함께 평양감옥으로 이송된 후 수감되었다가 이후 그를 본 사람이 없다.

필자가 2003년 일본을 통해 입수해 언론에 공개한 북한의 <통일신보> 게재 박산운의 회고록 <시인 지용에 대한 생각>에서는 9월 21일 아침에 강원도 태백산 줄기를 타는 동쪽으로 접어드는 길(동두천 소용산)에서 미군 비행기의 기총소사에 지용이 가슴을 맞고 숨졌다는 석인해의 증언이 담겨 있다. 이러한 묘사는 정지용을 1994년 북한의 조선문학사에서 부활시키기 위한 북한식 처리방식이 아닌가 판단된다.

장계리 시비공원의 ‘병’ - 정지용시인이 1926년 6월 ??학조?? 1호에 발표한 시 ‘병’을 형상화한 조형물 시비. ⓒ 박태상


1995년 북한에 거주하는 지용의 셋째 아들 정구인(언론인)이 <통일신보> 기사에서 "김정일이 정지용에 대해 1920~30년대 창작활동을 한 애국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북한문학사에서 정지용시인이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1년 남북이산가족 상봉모임에 북한의 셋째 아들 정구인이 남한에 있는 부친을 찾는다면서 형 정구관과 여동생 구원을 만나러 내려와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장남 정구관의 노력으로 1989년부터 지용의 고향인 옥천에서 정지용시인의 문학세계를 되돌아보는 지용제가 개최된 이후 올해로 제24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장계리의 간이천막 속에서 장터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대청호를 따라 난 오솔길을 걸으면서 신세계 시비공원을 완상했다. 시비공원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를 조각한 조형물들도 많지만, 그동안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박두진, 김광균, 이성선, 오세영, 이가림, 송수권, 김지하, 오탁번, 유안진, 정호승, 문정희, 강은교, 유자효, 도종환 등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서있는 붉은 다리를 바라보면서 계단을 내려가면 지용의 시<병>을 노란 철판 위에 조형한 시비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을 걷다가 1930년대 9인회의 한 멤버로 북한에 들어가 유명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한 구보 박태원의 둘째 아들 박재영님을 만났다. 또 지용의 장손인 정운영님도 만나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장계리 신세계 시비공원- 시비공원은 대청호를 따라 오솔길을 수놓으면서 지용의 시와 그동안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시비를 조형물로 조성해 놓았다. ⓒ 박태상


또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김지하의 시비도 눈에 들어온다. 요즈음 인기 있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기 좋게, 길이 호수를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제주의 올레도 좋고 지리산 둘레도 좋지만, 물길 따라 걷는 '물레'도 일품으로 생각되었다. 시비공원을 한 바퀴 돌다보면 입안이 컬컬해진다. 그때 바로 등장하는 것이 카페 프란스이다. 카페 프란스도 경치가 아름답지만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푸른 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들 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정지용, <호수1> 전문

다시 버스를 타고 옥천군 하계리에 있는 지용의 생가를 방문했다. 아담한 지용의 생가에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운집하여 사진촬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를 기대하고 온 문학도들에게는 북적대는 사람들이 짜증나기도 할 것이다.

또 생가 옆을 지나는 개천의 경우, 현대적인 시멘트 문화와 조각돌로 설비되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를 느낄 수 없는 것도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초가집과 그 옆의 우물은 여전히 고향집의 운치를 간직하고 있어 다행스러웠다.

체코 시인 ‘미할 아이바스’ 초청 강연회-독자와 해외초청작가와의 이색적 만남을 주선한 ‘시인과 촌장’ 행사 ⓒ 박태상


지용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에는 천막을 쳐놓고  따뜻한 날, 정지용선생 댁 마당에서 시와 인생을 나누는 수다모임인 <시인과 촌장>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마침 해외초청작가로 체코의 미할 아이바스(Michal Ajavaz)가 시를 낭송하면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소설가로 더욱 명성이 높다. 그의 소설 <텅빈 거리>는 2005년 체코 최고의 문학상인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상을 수상했다.

하얀 천막 옆으로 훤칠한 키에 캐주얼한 복장을 한 젊은 신사가 지용회 회장인 유자효 시인과 영어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필자도 다가가 명함을 서로 주고  받으며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그 신사는 야로슬라브 올샤, Jr 주한체코대사였다. 2001년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 도나우강과 고즈넉한 동구의 고전적 도시 분위기에 젖어들어 귀국 하자마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세계문화탐방기를 바로 집필하여 <동유럽 문화예술 산책>을 펴냈던 것이다.

올 여름방학을 이용해 10년 만에 다시 제자 문학도들 30여 명을 이끌고 동유럽 세계문화탐방을 떠나려고 기획하고 있다.

지용문학관의 ‘지용좌상’- 옥천 지용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부활한 지용선생과 진짜 사진촬영을 한 느낌을 준다. ⓒ 박태상


지용문학관에는 지용이 지은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그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잡지 <문장> 26권의 원본들이 소담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지용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상세한 해설과 도표도 그려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올해 문효치 시인이 제 23회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총 23명의 수상 시인들의 시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학관을 구경하고 나서면 안내 프론트 데스크 앞에 지용시인의 조각상이 벤치에 앉은 채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옥천에서 가장 멋진 포토 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체코대사와의 만남 - 마치 독일청년처럼 순하게 생긴 야로슬라브 올샤, Jr 주한체코대사와 지용동상 앞에서 사진촬영을 했다. 우측은 심대보 옥천문화원장, 유자효 지용회 회장 ⓒ 박태상


버스에 올라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지용제' 메인 행사가 열리는 옥천 문예회관이었다. 이곳에서는 제23회 지용문학상 시상식이 열리고, 그 축하공연으로 무용공연과 유명 시인들의 시낭송, 피날레로 박인수 교수와 그 제자 성악가들의 가곡발표가 이어져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입장하면서 옥천 다도회 회원들이 준비한 전통 차와 함께 곁들인 궁중 떡은 인심 좋은 충청도민들의 향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제24회 지용제 무용공연- 지용의 시 <풍랑몽>(1927.2, ??조선지광?? 발표)에 안무를 입힌 몽환적인 발레공연!!! 새로 지은 옥천문예회관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피날레는 성악가 박인수교수의 <향수>열창이어서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 박태상


200명이 함께한 지용제 ‘방송대인의 밤’행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전국에서 모여든 문학소녀들의 열정과 아마추어 가수들의 춤과 노래의 조화는 참여한 모든 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딱 10분 동안의 디스코 타임은 모두를 7080 꿈의 무대로 날려 보냈으며, 환상적인 홍대 앞 클럽으로 인도하기도 했다. ⓒ 박태상


다시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와 함께 곁들이는 지용제 '방송대인의 밤'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원래 갈비 집을 올 봄 웨딩홀로 개조한, 산뜻한 컨벤션센터는 200명이 들어서자 꽉 찬 느낌을 주었다. 전국에서 달려온 문학소녀들이 2인조 밴드에 맞춰 신나게 노래와 춤을 선사했다. 맥주와 소주 이외에도 캘리포니아산과 남아공산의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은 지용시의 향기와 더불어 고향의 정취로 절로 빠져들게 하였다. 각종 와인 2L짜리 10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산에서 온 젊은 남학생의 록 공연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끝으로 딱 10분간 주어진 피날레의 디스코 타임은 마치 명가 옥천웨딩홀을 홍대 클럽으로 뒤바꿔놓은 듯한 착각에 젖어들게 하였다. 단체촬영을 한 후에 젊음의 열기를 뒤로 한 채 모두들 버스에 올라타서 순식간에 전국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오월의 메이데이는 떠들썩한 꽃향기 속에 흘러가버렸다. 지용의 시정신이 숨 쉬고 있는 옥천의 밤은 너무도 따뜻했다.
덧붙이는 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충북 옥천의 지용제는 '문화'를 브랜드로 하여 지역을 홍보하는 독특한 축제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기업 이미지 홍보처럼 문화 브랜드를 통해 지역의 창조적 진취성을 홍보하는 방법은 지역을 널리 알리는데 미래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 이 기사를 쓴 박태상 기자는 한국방송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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