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잘 적응하는 낙타까지 죽어가다니....
소말리아 최악의 가뭄, 내전에 더해진 식량난
▲ 생필품을 받는 난민들 ⓒ 유엔난민국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약 45%가 거의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다. 또한 전체 어린이의 약 4분의 1이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마크 보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이 소말리아 가뭄과 식량 상황의 심각성을 요약한 말이다.
소말리아가 10여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4년 연속 계속되고 있는 이번 가뭄은 최악의 수준으로 20년 동안 내전을 겪고 있는 소말리아에 또 다른 재앙이 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주말 옥스팜(Oxfam), 월드 비전(World Vision),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 캐어(CARE) 등 31개 국제 구호단체들은 이례적으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소말리아 상황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호소했다.
소말리아의 이웃국가인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도 가뭄과 식량 부족을 겪고 있지만 오랜 내전과 무기력한 정부 때문에 소말리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구호단체들은 빈번하게 가뭄을 겪어온 소말리아 사람들조차 최악의 가뭄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소말리아에서도 봄이 시작되는 4-5월은 바쁜 시기다. 농부들은 밭을 돌봐야 하고 목축업자들은 일 년 동안 가축들을 먹일 풀을 기르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가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지금 당장 충분한 비가 내린다 해도 7-8월 수확시기까지는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강수량이 적어 수확량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도 충분한 비가 내릴 확률은 적고 지금과 같은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식품 가격의 상승으로 옥수수와 밀가루 등 주요 식량 가격은 135%나 솟구쳤다.
최악의 가뭄으로 주요 생계수단인 가축들까지 죽어가고 있다. 들판에는 죽은 가축들의 시체가 널려 있고 일부 마을에서는 물이 부족한 상황에 비교적 잘 적응하는 낙타들까지 죽어가고 있다고 구호단체들은 밝혔다. 모하마드 알리라는 목축업자는 가뭄으로 거의 전부인 250마리의 소를 잃었다. 이제 그는 수입원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졌다. 많은 목축업자들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식량부족 심각한 지역, 알 카에다 연관 무장단체가 장악
유엔에 의하면 소말리아 전체 인구 중 약 32%가 긴급하게 식량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구호단체들이 지금까지 확보한 재원은 필요한 전체 액수의 36%에 그치고 있다.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1991년부터 계속되는 내전으로 구호자금 모금은 물론 식량 분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 기부단체들은 지원 식량이 결국 무장단체들의 손에 들어갈까 우려해 지원을 꺼려하고 있다. 또한 식량 부족이 가장 심각한 많은 지역들은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는 알 샤바브(Al Shabaab)라는 무장단체가 장악하고 있어 구호단체들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리비아와 코트디부아르의 정치 불안과 그에 따른 식량 부족, 그리고 세계 경제난도 구호단체들의 모금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만연된 가난, 내전, 자연 재해라는 삼중고와 싸우고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소말리아는 20년간 계속되는 내전으로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동안에도 거의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소득은 지금도 600달러밖에 되지 않고 평균 수명은 50세이다. 전체 인구 중 29%만이 깨끗한 식수를 사용하고 있고 문맹을 벗어난 성인 인구는 38%에 불과하다.
"해외 송금은 소말리아 전체 경제의 생명줄"
▲ 식수차 앞에 늘어선 물통 ⓒ 유엔인도주의사업조정국
내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많은 소말리아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소말리아의 공식 인구는 약 980만 명인데 이중 약 20%가 국내외 난민이 되었다. 유엔난민국에 의하면 고향을 떠난 국내 난민은 약 140만 명이고 해외에서 난민으로 등록된 사람은 약 67만 명이다. 이 외에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자리와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에서 떠도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약 1백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에 남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우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해외에서 일하는 가족들의 송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일자리와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난 약 1백만 명의 사람들이 사실은 소말리아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유엔에 의하면 1990년대 말 해외 송금은 소말리아 경제의 67%를 책임졌다. 비비씨(BBC)는 월드레미트(WorldRemit)라는 송금회사 설립자인 이스마일 아메드의 말을 빌려 그 수치는 지금은 훨씬 클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메드는 소말리아 전체 가구의 40% 이상이 해외 송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액수는 연간 20억불(한화 약 2조 2천억)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는 소말리아 경제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해외 송금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해외 송금은 소말리아 전체 경제의 생명줄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난으로 경제의 핵심인 해외 송금이 줄어들고 있다. 해외 송금이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만큼 송금이 줄어들면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의 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말리아에서 소비되는 물자의 수입은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 제삼국에 자리 잡은 이들은 소말리아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중개한다. 소말리아의 목축업도 경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웃 케냐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의 육류 소비가 늘면서 소말리아의 육류 수출이 늘고 있다. 그러나 가뭄으로 인한 가축들의 사망으로 육류 수출과 관련된 경제활동도 심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이동통신 사업은 예상 외로 큰 성공...해외송금 줄면 타격
20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1994년 시작된 이동통신 사업은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비씨(BBC)의 보도에 따르면 이것은 일부 사업가들이 내전이라는 상황에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를 파악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동통신 전문가인 아메드 파라도 이점을 강조했다.
"이동통신 회사들을 세운 소말리아 사업가들은 위험을 무릅쓴 선택을 했다. 그들은 위험이 적은 지역 대신에 소말리아에 투자를 했다. 이제 그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고 이동통신 분야는 매일 매일 성장하고 있다."
이동통신 사업의 성공 덕분에 소말리아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든 소말리아의 가족 및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9개 회사가 문자 메시지부터 이동전화 인터넷 서비스까지 선진국에 못지않은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관계로 소말리아 사업자들은 세금과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상품과 사업의 안전을 위해 경비업체들을 고용하고 여러 무장세력들에 뇌물도 주어야 한다. 이동통신 사업이 예외적으로 성공을 이루긴 했지만 사업 종사자들은 효율적인 정부가 있다면 더욱 더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난으로 인한 해외 송금이 준다면 성공을 이룬 이동통신 사업마저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말리아의 장기 내전은 소말리아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을 길을 가로막았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고국을 떠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구하기 쉬운 무기를 들고 해적이 됐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해외로 나간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내전에 더해 자연재해인 가뭄이 덮쳤고 해외에서의 송금도 줄어들고 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내전, 자연 재해, 해외 송금 감소라는 동시 악재로 결국 소말리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소말리아 경제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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