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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형 인간, 백두대간에 오르다

김별아 치유산행 <이 또한 지나가리라>(김별아/에코의서재)

등록|2011.05.20 11:40 수정|2011.05.20 11:47

이 또한 지나가리라김별아 ⓒ 에코의서재



김별아의 치유산행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코의 서재)는 2년에 걸쳐서 40차 산행으로 진행될 예정인 백두대간 종주 중 예비산행을 포함한 1차에서 16차까지의 산행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산행기이기도 하고 마음 따라 가는 에세이이기도 하며 작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고백이며 치유이기도 하다.

평지형 인간, 백두대간에 오르다

'열일곱 살에 문학을 내가 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생각한 이후 소설이 없는 다른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작가, 마흔의 고개에서 초보 산꾼 1년 밖에 안 된 작가가 백두대간 종주를 감행하였다.

산사람들에게 낙원이자 고향이라 하는 네팔과 히말리야 트레킹의 여신으로 꼽히는 안나푸르나로 오르는 관문인 포카라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었어도 산에 올라가겠노라고 추호도 생각지 않았던 그. 40년 동안 평지형 인간으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중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가운데 그녀 스스로 돈을 내고 직접 짐을 싸서 자신의 발로 경사를 향해 다가가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 것. 백두대간 종주를 감행하게 된 연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할 듯한 나이 마흔에 내가 만든 산을 내가 넘기 위해, 아들아이에게 돈보다 값진 추억을 물려주고 싶어서, 내가 나고 자란 운명의 삶터를 내 발로 밟아본다는 건 뜻 깊은 일이기에,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기 위해서 어쨌거나 '개근'을 하고 싶어서."

하지만 비를 철철 맞으며 밧줄 하나에 목숨을 걸고 대롱대롱 매달려 끝도 없는 바위산을 허위허위 헤치며 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묻는다.

왜 사는가? 문학은 왜 하는가? 물었다. 왜 산에 가느냐고 묻듯이 우리는 왜 사는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평지형 인간이었던 그녀가 경사를 향해 발을 내딛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또한 치유되었다.

마흔 무렵에야 자신이 완벽주의자에 일중독자라는 것을,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했음을 깨달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닥을 쳤다고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이었노라고, 움켜쥐었던 많은 것을 놓고 많은 것을 잃어 듬성듬성해진 바로 그 가난하고 초라한 순간에 삶이 작가 자신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즐거움과 행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은 지루하고 끔찍하고 가련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고, 삶은 지나버린 과거에 있는 것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있을 뿐(p240)이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죽음보다는 자신이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고, 내면의 상처를 고백하고 어루만지며 그것을 치유해갔던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산행기이면서 치유에세이다. 자신의 발로 밟은 백두대간 그 경험의 기록이면서 유년시절부터 마흔 고개를 넘기까지 해결치 못했던 상처들, 외면하며 도망치려했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어루만지며 치유해간다.

유대교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 중에 '다윗 왕의 반지' 일화가 있단다. 어느 날 다윗 왕의 부름을 받은 궁중의 세공인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지나치게 들떠 오만하지 않도록 하고, 패배를 겪었을 때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오라는 명령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다.

권력과 부와 명예를 얻었을 때 자칫 빠지기 쉬운 교만을 이기고 실패와 치욕과 가난 속에서도 절망하여 쓰러지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울 수 있는 글귀는 무엇일까? 머리를 쥐어짜도 기묘한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던 세공인은 마침내 지혜로운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보석보다 귀한 솔로몬의 한 마디, 많은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 경구는 다음과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Soo it shall also come to pass!)

백두대간 종주 그 과정 속에서 작가가 만난 것은 '자기 자신'인 것 같다. 삶의 소중함. 사랑하며 사는 삶,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일깨움의 시간이었나 보다.

"삶은 지나간 과거에 있지도 않고 다가올 미래에 있지도 않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 뿐!"(p291)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 '끝끝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 밖에 없다는 것도.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김별아 작가의 치유산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 자신이 극복해 낸 상처들과 또 현재의 상처들을 보듬고 어루만진다. 작가와 함께 백두대간 종주길 걸으며 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는 평생토록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정이고 끊임없이 삶을 배워간다. 타성에 젖은 삶을 거듭거듭 배우고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삶은 때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한다. 때로는 인생의 한 지점에서 바닥을 경험한다. 바닥에서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방치하고 내던지고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닥에 닿고서야 깨닫는 진실이 있다. 바닥에 닿아보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해서 바닥을 경험해본 자, 거기서 딛고 일어선 자는 강하다. 그는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뜬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자기만의 '바닥'을 만난다. 그 바닥이 어떤 이에게는 아주 까마득히 깊고 또 어떤 이에게는 얕은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그 바닥은 인생의 최후미일 수 있다. 바닥에 닿아도 우리는 바닥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는 것, 배움에서 배움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인생.

나 또한 사는데 미숙하여 마흔의 고개를 훨씬 넘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편안해졌다. 비로소 나의 상처도 허물도 장점도 고개 끄덕이며 긍정하고 인정하고 편안해졌다. 그러기까지 40년이 훨씬 더 걸렸다. 참 긴 세월을 돌아왔다.

김별아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함께 걸으며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하고 또 자신을 만나는 여행이 되어보시라. 작가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표현하며 글을 맺는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는 외부적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게서 비롯하여 내게서 끝맺음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이제 상처 받아도 '무엇 무엇 때문에 상처 입었어!'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무엇무엇을 힘들어하는 편이야'라고 말한다. '무엇무엇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무엇무엇을 견딜 힘이 부족해'라고 말한다. 그러기까지 꼬박 40년이 걸렸다. 외면하며 도망치려던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118p)
덧붙이는 글 책:<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자: 김별아
출판: 에코의 서재
값: 13,000원
2011. 4.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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