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이천여 년 전 탑이라고? 그럴 리가
장수에서 특이한 석탑, 양악리 오층석탑을 만나다
▲ 양악탑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 소재한 양악탑.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하주성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 가면 계곡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곳이 있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소(沼)가 있어, 이 소를 '용소(龍沼)'라 부른다. 소 옆에는 '장수 양악탑'이라고 부르는 5층 석탑이 서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탑을 세운 시기가 2천 년 전이라고 한다.
▲ 상륜부탑은 현재 4층까지 남아잇으며, 누군가 상륜부에 강돌 하나를 얹어놓았다 ⓒ 하주성
▲ 몸돌양악리 석탑은 아래 몸돌의 지붕돌과 윗 몸돌을 하나의 돌로 조성을 한 특이한 형태이다 ⓒ 하주성
▲ 기단아래 기단부의 윗기단석은 필요 이상으로 높게 조성이 되었다 ⓒ 하주성
지붕돌과 몸돌이 하나로 만들어진 탑
이 양악리 탑은 높이가 2m 정도로 크지 않은 탑이다. 주변에 많은 암반이나 석재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석탑을 조성했다는 것은, 이 탑이 지방의 장인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탑은 장소로 옮기는 과정에서 파손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탑의 원형을 알아 볼 수가 있다.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있으며, 누군가 탑 위에 둥근 강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탑은 그 생김새가 딴 지역의 석탑과는 다르다. 1층의 몸돌은 사다리꼴로 만들어졌으며, 2층부터 4층까지는 각 측의 지붕돌인 옥개석 위에 몸돌을 붙여 일석으로 조성을 하였다. 몸돌 밑에는 아래 단의 지붕돌이 붙어있는 형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탑의 모양은 소박하게 표현을 하였다.
▲ 일층 몸돌일층 몸돌만 따로 조성을 하였다. ⓒ 하주성
▲ 층급받침층급받침도 똑바르지가 않다. 지방 장인의 솜씨인 듯하다 ⓒ 하주성
심방사 탑을 찾아 양악리를 헤매다
5월 20일 오후에 잠시 들른 장수군. 몇 번인가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들른 곳이지만, 20일 낮에 들른 양악리에서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가 있었다. 양악리는 애국지사요 한글학자인 건재 정인승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 마을에는 건재 기념관과 재실, 동상 등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심방사 탑의 이정표를 보고 들어갔지만, 정작 탑은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을 돌다가 만난 주민에게서 탑의 위치를 파악하고서야 탑을 찾을 수 있었다. 탑은 마을 반대쪽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소 옆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탑이기에 마을에서 보면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 비탑 뒤에는 이 탑이 2천 년 전에 세워졌다고 적고 있는 비가 있다 ⓒ 하주성
전설로 남아있는 심방사
양악리 오층석탑은 양악마을과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마을은 백제와 신라의 경계지역으로 격전지였던 흔적이 있다고도 한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마을에는 옛날에 한 도사가 살고 있어, 학을 길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마을이름을 양학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을 앞에 산을 '학산'이라 부르고, 이웃마을로 가는 고개를 '학고개'라고 부른다.
이 오층석탑은 원래 백제의 심방사라는 절에 있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전화로 심방사가 소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탑을 옮기거나 없애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마을에서 보존을 하고 있다.
지붕돌과 몸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특이한 양악탑. 심방사라는 절이 어떤 절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고, 암벽을 흘러 소로 떨어지는 물소리만 들린다.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랜 세월을 자리를 지켜 온 석탑. 지금은 그 위로 저수지 공사를 하느라 중장비의 굉음만 시끄럽다. 그렇게 또 다른 소리를 들어가며 탑은 묵묵히 오늘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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