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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장관님, 초딩이 스마트폰 못쓰는 이유 아세요?

초등학생 입장에서 본 교과부의 공교육 강화방안

등록|2011.05.21 17:21 수정|2011.05.21 17:21
5월 19일 교육과학기술부의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방안 보도자료를 보고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 영어와 사회를 가르치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아이들의 입장에서 적어봤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스마트폰 중독이 인터넷 중독보다 더 무섭다면서 스마트폰이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빠지게 되고 없으면 불안한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쉬우며, 둘째, 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한데 스마트폰을 일단 잡으면 놓기 어려우며, 셋째, 청소년기에는 소근육과 대근육을 직접 사용해야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두뇌가 발달하게 되는데 스마트폰은 뇌와 시력을 혹사시키며, 넷째, 작은 글씨를 보려고 고개를 숙이거나 구부정한 자세로 사용하게 되면 이런 저런 무리가 오고 육체적 성장에도 문제를 일으키며, 다섯째, 주변 친구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노는 것보다 가상 공간에서 활동하면서 익명성을 즐기게 될 때 사회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수학영어교육 쉽고 실용적으로 바뀐다?교육과학기술부 누리집에서 캡쳐했다. ⓒ 한희정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학교 중심 영어-수학 교육이 내실화'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학교에서는 정규교육과정으로 영어를 배우고, 학교가 끝난 다음에는 방과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또 집에 돌아가서는 EBSe 같은 인터넷 학습 사이트를 통해 자기 주도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별 관심 없이 듣다가 나중에는 화가 났습니다. '스마트폰에는 중독되면 안 되고 영어에는 중독되라는 얘기인가? 우리는 도대체 언제 놀아야 하는 거지?'

안그래도 6학년이 되어 영어책을 처음 받았을 때 책도 두껍고 일주일에 3시간이나 영어를 해야 해서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이제는 방과후 교실에서도 영어를 더 잘 가르치겠다고 하니 숨이 막혔습니다. 요즘 우리는 올해 6학년이 저주받은 학년이라는 말을 합니다. 영어 시간은 갑자기 늘어났지, 5학년 때 역사를 안배웠다고 6학년이 돼서 역사도 배우고 일반 사회도 배우고, 거기다가 우리가 3학년이었을 때 옛날에는 없었다는 일제고사 같은 것도 생기고, 불행하게 우리 학교가 7월에 보는 시험에서 표집되는 바람에 선생님들은 초긴장이지.. 국․영․수만 본다고 했다가 사회․과학까지 본다고 하지..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우리'들을 위한 정책이라니요!

방과후학교 영어 교육의 질을 관리하겠다?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며 놀 시간이다. ⓒ 한희정


제가 많이 아는 것은 없지만 우리 부모님이 스마트폰이 안되는 5가지 이유를 말씀하신 것처럼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5가지만 말씀드려 볼게요.

첫째,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무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많구요. 교과서보다 훨씬 좋은 학습 자료들도 서점에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학교 영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학습 의지'가 중요하지, 외적으로 강제한다고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둘째, 학교에서 영어를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시달립니다. 저희는 어린이집, 유치원, 심지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 동요와 동화를 듣고 자랐답니다. 그래서 영어가 지겹습니다. 영어가 좋은 아이들만 영어를 잘 배우면 되는 것이지 왜 우리가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건가요?

셋째, 우리는 뛰어 놀면서 소근육과 대근육을 발달시켜야 할 나이입니다. EBSe에서 보여주는 동영상 수업은 우리의 전두엽은 활성화되지 않은 채 시지각과 청지각을 혹사시킬 뿐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맥락이 없으니까요. 애들이 처음에는 좀 보다가 다 장난칩니다. 사회 선생님께서 저희가 가위랑 칼을 사용해서 연표 만드는 것을 보시더니 소근육이 덜 발달되었다고 안타까워하시면서 공기 놀이나 가위질, 바느질 같은 것을 꾸준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린 6학년이나 되었는데 왜 가위질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소근육이 발달되지 않고 미세한 조작활동에 성의를 보이지 않게 된 걸까요?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모빌리스라서 그런가요?

넷째, 더 이상 수업시간에 앉아 있기를 강요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서서 돌아다니는 활동을 하면 교실은 금새 난장판이 되지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아빠가 수업을 보러 오는 날 아니면 수업시간에는 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바른 자세로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한 공부지만, 밖으로 나가 온몸의 미세한 근육들을 움직이며 공부하는 것도 중요한 공부입니다. 왜 자꾸 학교 교실, 방과후 교실, 집에서는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 하는 공부를 강요하시나요?

다섯째, 많은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는 이유는 친구들과 만나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부를 하려고 다니는 애들도 있겠지만 학원에라도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엄마가 학원에 다니지 말라고 해도 학원에 다녀야겠다고 떼를 써서 학원에 다닙니다. 친구들을 통해 마음이 상하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속마음 털어놓고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왜 자꾸 이런 방과후 시간까지 우리들을 '관리'하려고 하시는지요?

막대인형에 나타난 내 얼굴, 내 마음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영어 시간에 만들어 본 막대 인형, 아이들의 자존감, 영어학습에 대한 정서 등을 읽을 수 있다. ⓒ 한희정


우리에게는 놀 시간이 필요합니다. 놀 공간이 필요합니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내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어'는 파닉스 배워서 어느 정도 읽을 줄만 알면 되지 않나요? 모르는 단어 인터넷 사전에서 검색할 줄만 알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정말 영어를 좀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 언제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더구나 실용 영어라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는 거 같습니다. 뭐 학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랑 수업할 때 인사 나누기 정도로 밖에 안쓰니까요. 우리는 영어를 학습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 생각이 있고, 우리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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