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축산업, 지원할 게 아니라 제한해야 한다

고기가 담배보다 나쁘고 축산은 자동차보다 나쁘다

등록|2011.05.22 14:02 수정|2011.05.22 14:02
한때 삐삐와 시티폰이라는 게 있었다. 처음 삐삐가 등장했을 때 정식 명칭은 '호출기'였지만 다들 소리 나는 대로 '삐삐'라고 불렀다. 일종의 애칭이었다. 필자는 당시에 5·3 인천사태라는 시국사건으로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였지만 조직활동의 필요에 따라 거금 28만 원을 주고 모토로라 삐삐를 샀던 기억이 있다. 1986년에 28만 원이라면 정말 큰돈이다.

오래전에 휴대폰이 삐삐 자리를 빼앗더니 다시 스마트폰이 휴대폰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렇듯 뜨는 산업이 있고 지는 산업이 있다. 지는 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시장은 늘 사양산업과 대안산업이 교차한다. 사양길로 접어드는 산업은 이를 일찍 감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좋다. 그 기준은 시장의 반응이다. 도덕성이다. 생태환경성이다. 시장의 외면과 저항이 거세지는 산업, 반환경적, 반인간적 업종은 오래 갈 수 없다. 자, 그렇다면 축산업은 어디에 해당될까? 대안산업일까 사양산업일까.

지난 구제역 재앙은 육식문화에 대한 경고

아직은 그 누구도 축산업을 감히 사양산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런 말을 입에 올렸다가는 몰매를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날로 정치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농민을 팔아 밥벌이하는 교수, 연구원, 관료, 농업관련연구소, 농민단체, 축산단체 등은 절대 이런 말 못한다. 안 한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이대로의 '축산'이 계속되어야 하는 산업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의문은 더 커진다.

<고기 없는 월요일>의 대표 이현주 선생은 말한다. 구제역은 육식문화에 대한 경고라고.
국가특급재난사태라 할 지난번 구제역은 방역부실과 축산농민들의 무책임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는 정부의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방안'과 시각이 다르다. 지난 6일에 발표한 정부의 축산업 선진화방안은 육식문화를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고기 없는 월요일>의 견해는 살처분 보상금이 깎였느니, 허가시설 확보를 위한 지원금을 달라느니, 무허가 축사를 양성화하라느니, 사료보조금 상환을 유예 해 달라느니 하면서 입만 벌였다 하면 요구조건을 끊임없이 내놓는 축산단체의 주장과는 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축산선진화 대책이 고사 직전의 축산농가에 더 큰 짐을 지우고 있다는 시민단체나 진보정당들의  입바른 소리와도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구제역 재앙의 본질을 육식문화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육식 자체를 손 봐야 할 문제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진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대학 구내식당에서 <고기 없는 월요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예 비육식 식단도 제공되기 시작했다. 여수시와 여수시교육청은 채식급식과 선택급식(채식과 일반식을 둘 다 제공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270개 초중고에 시민강사단을 구성해 학생들에게 환경과 먹을거리에 대해 가르칠 예정이라고 한다. 육식을 안 하는 쪽으로 식단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고기 안 먹자는 운동이 벌어진다

전주의 한 중학교는 혁신학교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고기 없는 월요일>을 채택했다. 고기 안 먹는 게 '혁신'이 되는 현실이 되었다.

더구나 재작년에 제정된 '식생활교육지원법'에 의거하여 식생활교육기관이 속속 지정되고 있다. 지금은 대학에 17곳, 공공기관 1곳, 민간에 3곳이지만 계속 늘 전망이다. 이 기관들은 생태환경, 성장호르몬, 유전자조작, 항생제, 푸드 마일리지(식재료 이동거리), 생물다양성, 생명존중, 식량자급 등에 입각하여 식생활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축산업은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모든 조항에 걸린다. 모든 조항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사료곡물 해외의존도가 97.4%니 푸드마일리지와 식량자급에 걸리고, 사료곡물의 82%가 전량 수입하는 옥수수니 유전자조작에 걸리고, 동물학대가 일상화된 밀집축사다 보니 생명존중에 걸린다. 항생제, 생물다양성훼손, 성장호르몬 등 안 걸리는 게 없다. 최근의 매일유업 사건에서 보듯이 발암물질인 포르말린이 혼합된 사료를 소에게 먹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축산업은 갈 데까지 간 형국이다.

이현주 선생은 계속 말한다. 1킬로그램의 쇠고기 생산과정의 온실가스 배출은 자동차가 249킬로미터를 달리며 내는 온실가스와 맞먹는다고. 생태환경에 치명적이라고. 인간이 배출하는 메탄가스 양의 37%, 암모니아 가스의 64%는 축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서 고기를 먹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핵발전소 사고로 내리는 방사성 비를 걱정하면서도 전기를 펑펑 쓰는 어리석음과 같다. 수입사료의 88.2%가 미국과 중국에서 들어온다. 한-미 FTA를 반대하고 민족농업을 주장하는 농민단체가 축산을 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축산 자체는 미국의 농산물(사료)을 마구 들여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육식산업을 제한해야

지난 구제역 사태로 여러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으며 직간접 손실비용이 5조 원에 이른다. 모두 다 세금이다. 공장식 밀집축산의 비경제성을 말해준다. 축산지원책, 생매장 보상금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다. 과연 나라의 세금을 그런 곳에 계속 써야 하는지 검토해야 할 때다. 대부분의 생활습관병(성인병)도 육식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사가 만성병 환자에게 하는 첫마디가 '고기 먹지 말라'이다.

가만히 따져보면 지금과 같은 축산은 농민들에게 고통만 준다. 돈벌이 논리에 따라 동물을 학대하고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악역을 현장에서 담당하게 하고 있다. 정작 돈 버는 곳은 제약회사, 설비회사, 사료회사, 유통회사, 육식관련 기관과 업체 등이다. 순수한 축산농민은 머슴에 불과하다.

축산단체들의 행태도 답답하다. 전교조는 참교육을 말한다. 민변은 민주주의 사회를 말하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베트남에 가서 한국군의 학살을 사죄하고 무료진료를 한다. 다들 사회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자기 밥그릇을 덜고 있다. 우리 농민은 왜 이러지 못하고 만날 징징대기만 할까? 지난 구제역 사태 때 이 땅의 모든 평민들의 차량들이 차단장치 앞에서 석회가루를 뒤집어 써야 할 때 축산단체에서 최소한의 유감성명이라도 한 장 내지 못했을까? 구제역으로 그 많은 세금이 축날 때 머리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왜 못할까 싶었다. 특히 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면 얼마나 좋을까?

도리어 보상을 현실화 하라고 노숙농성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참 답답했었다. 살처분 당시의 시세와 재입식 때의 시세가 다르다며 차라리 소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고 농성을 하는 것은 딱한 모습이었다. 120년 전 이 땅 농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保國安民이라고 쓰는 곳이 있는데 틀렸다)을 내걸었다. 자기 밥그릇을 좀 덜어 내는 정도가 아니라 목을 내 걸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했다.

축산단체는 최근에도 연1%로 지원해 준 총액기준 2조원 상당의 축산농가 지원금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조르고 있다. 양심적인 축산농가 중심으로 가칭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는 축산인 모임' 같은 게 만들어져서 자기성찰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좋겠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장소를 가리고 간접 흡연자에 미안해 하듯이 말이다.

계륵이 되고 있는 축산. 축산을 접는 게 진정한 선진화 아닐까? 철저한 생태축산만이 선진화 아닐까? '축산'을 없애고 '가축'을 기르는 게 선진화 아닐까? 육식을 줄이는 게 선진화 아닐까? 축산농민의 안전한 업종변경을 유도하는 것이 선진화가 아닐까?

지금 이대로의 우리나라 축산업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업종전환의 대상이다. 디젤자동차에 환경부담금이 부과된다. 축산농가는 물론 사료농가, 유통업체, 축산용 제약회사, 정육점 등에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나는 찬성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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