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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북로방이 또 다시 중국으로 행했다

[연재소설 대권무림 4] 에피소드 1. 대한무림제국 황제등극 야사약전(野史略傳)

등록|2011.05.23 18:03 수정|2011.07.13 10:20
에피소드의 전개에 앞선 현재의 판국

무림대권의 1라운드는 새로이 최대 도방인 한나라공방의 의회대표로 악전고투의 노력형 투사 우려연수방이 입성하며 마감됐다. 그는 수도권의 변방국 인천농방의 강남권법 출신으로 과거 회창객 문하의 법률통감으로 있다가 경기고(이른바 KS공화국)도방 출신이 아니라는 유일한 난점으로 통한의 눈물을 훔친 후, 오나라의 부차처럼 와신상담한 인물이다.

과거 수도권의 변방이었던 인천농방의 인물난으로 무림의회에서 무려 4번이나 사범을 지내는 인물로, 한 번 더 의회에 입성하면 무림의회 부의청장을 거쳐 의청장도 바라보는 인물이다. 같은 시기에 탄생한 대한무림제국 제2도방인 민주공방의 새로운 의회대표 진표행공자는 전형적인 무림행정의 달인으로, 한 사람은 법률통감, 한 사람은 행정달감이 이끄는 무림계의 대권 전 제 2라운드 혈전의 막은 '두루두루공권'과 '좋은게좋은거야권'이 징을 울리며 서서히 달아올랐다.

우려연수방이 휘하의 근위 사병들과 새로이 정책위정방이 된 주영창원랑과 부대표단을 이끌고 청와궁을 방문하자, 명박경술사는 그들을 조용히 맞아 한나라방의 계보를 없애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각기 공력과 내공이 다르고, 전해 내려온 비법이 다른 무공을 가지고 있는 각 계파가 어떻게 서로 다른 무공을 감추고 한 도방으로 합류하여 무림정권 재창출을 이룰지는 '며느리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청와궁을 나온 우려연수방은 휘하의 무장들 몇만 대동하고 곧바로 현재의 무림권력의 지시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도방의 미래맹주 근혜여랑위를 배알하고, 일 년 동안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무림의회에서의 책략을 보고하는 자리를 갖게 되니, 이른바 도방계파 해체라는 대한무림국의 현 황제 명박경술사가 현재권력으로 낙오되고, 근혜여랑위가 미래권력으로 바야흐로 전면에 나서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의식 거행이었다.

5월의 태양이 아지랑이를 따라 가라앉는가 싶더니 미명(未明)의 어스름의 기운이 차츰 견딜만한 미풍으로 잦아든다 싶은 계절의 여왕 때의 일이었다. 햇살이 너무 곱고, 연두색 이파리가 온 산을 아름답게 물드는 산록이 좋아 무림의 검객이나, 난쟁이 나라인 왜놈은 얼레빗의 '닌자오라방'들이나, 뙈놈은 참빗의 '유협'들도 잠시 긴장을 멈추고 삿갓을 치켜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계절.

평생 너무 헤픈 주력과 하초의 공력 낭비로 수술 차 스위스와 파리를 다녀온 것이 비행공력의 전부이고, 오로지 동맹무림국인 지난날의 소련연방무국과 중화인민공국으로만 기차권을 이용 축지전을 벌여 온 '북조선인민폐쇄공국'의 정일북로방이 또 다시 기차권을 사용, 중국으로 행했다.

위장수도방인 평양궁의 대외적인 보안과, '농담도 잘 하시는' 현대 물리무권학의 귀재인 '리차드 파인만' 도방도 울고 갈 세계적인 핵 분자권 개발에 여념이 없으시느라 '북조선인민폐쇄공국'의 경제를 도외시한 결과가 너무도 비참하여 굶어죽은 인민들이 속출하자, 세계 제일의 경제무림국을 향하여 꾸준히 매진하는 중국에게 구걸외교라는 치사권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세계 200여 개가 넘는 대소 무림국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이른바 '3대 세습권', 즉 자신의 셋째 아들인 정은소통자에게 넘겨주는 북조선의 황제 폐위를 이번에는 확실하게 인정해달라는 극히 '이씨 조선시대'에서나 있었던 '군신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답습하기 위함도 목적에 있는 듯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제정러시아공국 이후 꾸준히 탐을 내던 한반도 항구의 일부(일명 '부동항')를 내어줄테니, 고사해가는 북조선 인민들의 배를 채워 달라. 정일북로방의 재산(즉, 북조선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스위스나 평양주석궁 내 비밀창고에 보관 된 비기. 결국 돈)은 내 개인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인민들의 굶주린 배는 남조선무림국이나 너희(중국)가 채워줘야 당연한 것 아니냐 하는 미연합무림국을 위시한 북조선과의 대립, 혹은 연합관계에 있는 6개국, 즉 6자회담의 당사국들에 대한 생떼권, 뻔뻔권을 가장 가까운 맹방인 중국에 먼저 요구하기 위한 공력의 행사를 위한 거였다.

그런데 그 구걸공력이라는 권법이 한심한 수였으니, 그야말로 중국의 금력권을 이용하여 날로 먹자는 수였다. 이른바 창지투 개발이라는 협객무술공신국의 경제협권을 북조선인민국의 나진-선봉 개발과 연계하여 경제무림국의 기초를 이루자는 골자의 경제외교 행위였다.

결국 러시아가 탐내던 부동항을 떠오르는 세계 무림계의 패자인 중국에 내어주고 대신 자신의 재산은 무림권력의 유지와 평양주석도방의 치부, 그리고 3대 세습에 이용하여 무림지도에도 없는 봉건무림제도의 부활을 꿈꾸겠다는 어리광적인 영화광의 최후의 발악, 마리화나와 필로폰으로나 날아오를 환각을 꿈꾸는 자의 김동인의 <광염소나타>와 같은 미치광이 짓이었다.

그러나 같은 한반도의 한 축인 대한무림제국 각 도방의 대권무림 도반들은 물론이고, 내각의 통일통국청장인 인택통일공과 청와국의 외교안보방주들조차도 비판권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수십 년 귀에 익은 통일가가 무색하게, 한반도의 안녕은 무림외교의 잇속 뻔한 질서라는 그릇 속에서 나날이 큰 절은커녕 반절도 어려운 형국이 되어 있었다.

분당의 혈전에서 장쾌한 승리를 거두고 본진으로 돌아와 민주공방의 도방의 실권을 접수 한 학규공자의 기세가 날로 높아가고 있었다. 공방의 도방실에서 강원공국에서 포도청에 압송되어 의금부로부터 10년의 유배형을 받고 강제로 고난의 재야무림행을 당한 광재청령포장의 힘으로, 기적의 지역무림방의 맹주로 등극한 문순기적창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는 사이, 대한무림제국 제일의 여론조사기관인 '덕무무예도보통지리서치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무림계에 난립한 수많은 여론조사기관 중 유독 '무예도보통지리서치'의 권위가 돋보이는 것은, 다른 여론조사기관들이 대부분 재외무림국의 무예교본을 필사본으로 마치 "E=mc2"의 질량에너지 공식의 아인슈타인이나, "천국은 동화야"를 발표한 스티븐 호킹처럼 재외여론의 신빙성만을 믿고 호들갑떤 데 반해, '덕무연구소'는 이 나라의 무예도법이자 권위지인 '무예도보통지'의 모든 것을 연구하여 무림대권은 물론 총선권에도 적용시켜 항상 놀라운 적중력을 보여주었다는 데 기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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