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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길',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을까

[주장] 광주 무등산 '노무현길' 명명에 반대하는 몇 가지 이유

등록|2011.05.25 11:47 수정|2011.05.25 11:47

▲ 광주 시내와 무등산. 뒤로 보이는 산이 무등산. 광주 시내 중앙에 5.18 때 항쟁의 중심이 된 전남도청 앞 분수대가 보인다. 그 왼쪽에 보이는 공터에 참여정부 때 건설을 시작한 '아시아문화전당'을 짓고 있다. ⓒ 양영철



무등산 일부 구간을 '노무현길(가칭)'로 이름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는 지난 19일 문빈정사 앞에서 '노무현길' 선포식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에 오른 '증심사~장불재' 구간을 노무현길로 이름 붙이겠다는 것이다. 5월 말까지 명칭을 공모한 뒤, 6월 초에 세 가지 정도의 안을 확정하여 광주시와 무등산공원위원회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노무현길 명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반대의 이유 첫째는, 노무현재단이 노무현길을 결정하면서 광주시민의 동의를 얻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등산이 광주시민, 전남도민의 공공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상용어처럼 쓰이는 무등산 보호의 '보호'가 꼭 물리적인 자연환경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재로써 무등산의 정신적 가치도 보호의 대상이다.

때문에 무등산에 특정인의 이름을 붙이려면 시민의 동의를 당연히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고, 어느 방법을 쓰느냐에 대해서는 토론이나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어쨌거나 확실한 점은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노무현재단이 '동의'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면 '참여정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민주주의' '깨어 있는 시민'… 이런 말들을 어디에 쓰는지 묻고 싶다.

반대 이유 둘째는 무등산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치유의 상징성 때문이다. 아이들의 소풍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변혁운동 조직의 투쟁결의까지, 무등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광주사람들의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공간이다. 5·18민중항쟁 이후에는 광주시민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받으면서 다시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증심사~장불재 구간은 무등산의 여러 갈래 길 중에서도 시민들이 가장 편하게, 자주 이용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를 노무현길로 이름 붙이는 것은 그 많은 기억과 일상의 경험, 치유의 정서를 '노무현'이라는 이름 하나로 환원하자는 것이다. 과연 이게 온당한지 묻고 싶다.

▲ 19일 노무현길 선포식 행사 때 배포된 자료집 표지. ⓒ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누구도 무등산에 제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반대 이유 셋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광주시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호불호의 마음을 갖고 있다. 옳고 그른 문제를 떠나 그것이 정치인의 운명이고, 그 운명의 파도타기를 통해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업적과 관련되어 있고, 기억의 지층이 이제 막 쌓여가려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는 건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더 안전하다. 예컨대 퐁피두센터가 그런 것처럼 건립 중인 아시아문화전당에 노무현을 접목시키는 방법도 있다. 꼭 무등산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인 노무현, 이른바 '노무현 정신'에 대해 광주시민 모두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질문은 남아 있다. 무등산 자락 4수원지에서 떠오른 이철규 열사나 1980년 5월 27일 도청의 새벽을 지킨 윤상원 열사가 노무현 대통령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포함해 숱한 광주의 '인물'들 누구도 무등산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반대하는 이유 네 번째는 노무현길 명명 시도가 과연 노무현 정신에 부합하느냐는 거다. "운명이다.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서를 남긴 분이다. 5·18 묘역을 찾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로 시작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대통령이었다. 추측컨대 그분의 영혼은 노무현길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무등산에 꼭 이름을 남겨야 한다면, 눈에 잘 띄는 등산로 어느 구비에 "이 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 좋아했던 무등산길입니다" 정도의 표식이 쓰여진 작고 예쁜 안내문만 세워도 고인이 된 대통령의 뜻을 기리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광주드림>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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