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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원시인들, 목숨 걸 일 찾으라

이철수 외 4인이 쓴 〈나는 무슨 일하며 살아야 할까?〉

등록|2011.05.27 09:17 수정|2011.05.27 09:17

책겉그림〈나는 무슨 일하며 살아야 할까?〉 ⓒ 철수와영희



요즘 청소년들이 원시인이라면 믿을까요? 옛날 원시인들은 외부 세계의 위협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살았죠. 그 때문에 내부 세계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지요. 그런 관점으로 요즘 청소년들을 생각해 보면 엇비슷하지 않을까요.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느라, 자신의 내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것 말이죠. 옛 원시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청소년 원시인들이죠.

이철수 외 4인이 쓴 <나는 무슨 일하며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 펴냄)는 청소년들이 내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책이죠. '길담서원'의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시행한 강의록을 엮은 것인데,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찾는 길목으로 생각하면 좋겠네요. 무의미하게 공부해 온 길목을 되돌아본다거나, 이 땅에 태어나 목숨 걸만한 일을 찾아낸다면, 이 책은 진정으로 뜻 깊은 안내서가 될 것 같아요.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파산하는 바람에 형편이 어려워져 청소년기를 아주 힘들게 지냈거든요. 엉뚱한 짓도 많이 하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다니질 않나, 교복을 뒤집어 입고 술에 취해 헤매고 다니기도 했어요."(19쪽)

농부 판화가로 알려진 이철수씨의 고백인데, 도무지 믿기지가 않지요. 왠지 점잖아 보이고, 정갈해 보이는 그 분의 청소년기가 굉장히 엉뚱했다는 게 말이죠. 그런데 그의 강의를 쭉 듣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해요. 잘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5·16 쿠데타 직후에 파산했는데, 영문도 모른 그는 수없는 날들을 방황한 것이죠. 그 때문에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지만, 뒤늦게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도리어 고마워했다고 하죠.

그의 판화 속에서 뭔가 모를 강인함과 순진함이 묻어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지 싶죠. 더욱이 농부로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만 꾸밈없는 판화를 그려낼 수 있다고도 하지요. 그래서 농부로서 살아가는 삶을 더 천직으로 삼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그분의 아들도 돈만 생기면 그것을 모아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도, 그 분이 말리지 않는 걸까요? 충분히 이해가 되죠. 그걸 격려하는 게 부모 몫이자, 선생님들 몫이지요. 그 분이 중학교 국어시간에 만화나 다른 책을 보면, 그걸 본 선생님은 나무라지 않고 따로 '심화과정' 한다고 넘어가 주셨다고 하죠. 너무 멋진 선생님 아닌가요?

농부 판화가 이철수씨가 이야기한 중심 주제는 '마음공부'였어요. 현재의 마음을 지혜롭게 가다듬는 자는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청소년기만 잘 뚫고 나오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대학생활이 기다리고 있죠. 문제는 대학등록금이 천만 원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미친 등록금의 나라죠. 그런 형편이니 대학생들이 여러 알바에 매달리고 있고, 또 청소년들도 방학 때 짬을 내 용돈 벌 요량으로 알바를 하죠.

이 책 후반부에서 지적하는 것들도 그것이죠.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을 알바의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사업장이 고되고 여건도 낙후돼 있다는 것이죠. 대개 청소년들은 전단 돌리기부터 알바를 한다는데, 천원 받고 만 장을 돌리는 게 다반사라고 하죠. 또 방학 때는 음식점에서 알바하는 청소년들로 넘쳐난다는데, 최저임금도 안 지켜지는 게 현실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친구의 이종사촌 오빠는 편의점에서 시급 2500원을 받고 일한다고 하죠. 현재 최저 임금은 시간당 4320원이라고 하니, 그것에는 턱도 없는 셈이죠. 

"10년 전쯤,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회사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과속으로 걸렸는데 범칙금을 1억 3000만 원이나 냈어요. 얼마 전 스위스에서는 한 부자가 스포츠카를 타고 가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3억 2000만원의 벌금을 내기도 했어요.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죠. 참 이상한 나라죠?"(179쪽)

과연 그런 나라도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한 달에 수천만 원 버는 사람도 벌금으로 3만 원 내고, 한 달에 100만 원 겨우 버는 노동자도 3만 원 내는데 말이죠. 우리가 그들을 볼 때 너무 이상한 나라 아닌가요. 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불공평한 나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둘을 놓고 비교해 볼 때 어느 사회가 더 바람직할까요?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많이 내는 나라가 정상적인 사회 아닐까요? 그만큼 그들 나라들은 '사회 안정망'을 확실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죠.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취약하구요. 대부분 직장에서 해고되면 거의 대책이 없는 실정이니까요.

"하종강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고정관념들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노동조합이나 노조 활동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고, 뉴스에서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항상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뉴스에 나오는 노동자들의 표정에서 애절함과 원통함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구름빵"(181쪽)

이는 하종강 선생의 강의를 들은 한 학생이 쓴 소감문이죠. 이런 소감문은 매 강의의 끝 부분에 기록돼 있는데, 그걸 읽을 때마다 얼마나 신선하고 산뜻한지 알 수 있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 그런지 한 시간 내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깨우치는 것 같아요. 아무쪼록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이 책에 수록된 강연들을 통해, 자신의 내부세계에 대해 처절하게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제도화된 길보다 개척자의 길을 찾아 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울러 우리 사회를 좀더 정상적인 사회로 바꾸어 나갈 길도 모색해 봤으면 좋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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