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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육성책 성적표,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무엇을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인가... 고용 창출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등록|2011.05.27 11:51 수정|2011.05.27 11:51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단체 또는 조직을 지칭하는 용어다.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고 사회적 기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뜻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수행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될 수 있다. 정부(제1섹터)는 제도와 법률을 통해서, 시장(제2섹터)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시민사회(제3섹터)는 시민들의 힘을 통해서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정부, 시장, 시민사회는 각각 자신의 고유 영역을 가지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은 누구의 영역에 속하는 주제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려면 사회적 기업 이전에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는 개념과 영역을 살펴봐야 한다) 결론만 말하면, 개별 국가에 따라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르지만 사회적 기업은 정부나 시장이 아닌 '시민사회 영역'에 속하는 주제다.

미국은 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 줄어들자 시장 친화적 방법을 통해 비영리기구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왔고, 영국은 오랜 시민사회의 전통 위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합된 방식으로 제3섹터를 키우고 있으며, 일본 역시 지역기반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성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각각의 영역이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정부 및 기업의 협력이 동반되지만 운영 주체는 모두 시민사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하 육성법)' 제정 등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의제와 장치를 국가가 독점, 운영하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독점' 그 자체가 아니라 육성법의 목적(동법 1조. 사회서비스의 확충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및 정의(동법 2조.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잘 나타나 있듯이, 오직 법으로 정한 범위 안에서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도록 제한함으로써 '생태계' 자체를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의 목적을 '일자리 창출'로 한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이란 곧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 기인한다. 2007년 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사회적 기업 관련 정책을 고용노동부가 전담해 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영국은 내각부 산하의 시민 사회청(OCS, Office of Civil Society)에서 제3섹터 육성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 조림사업을 국가적 의제로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내각부 홈페이지www.cabinetoffice.gov.uk ⓒ 문진수



사회적 기업을 통한 고용기회 확대는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일자리 창출 그 자체가 사회적 기업 정책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상식의 범주에 속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기업이나 단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조직이 망하지 않고 잘 유지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이 과연 '고용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2007년 육성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는 얼마나 만들어졌을까? 2010년 12월 현재 전국 인증 사회적 기업 501개소에 종사하는 유급 근로자는 총 1만2146명으로, 기관 당 평균 24.2명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성법 제정 이후 사회적 기업 관련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입된 국가 재정은 얼마나 될까? 2010년도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예산 규모가 1487억 원이었으므로 (2009년도의 경우 1885억 원) 연간 1500억 정도 투입되었다고 가정할 때, 지난 3년 반 동안 약 5000억 원의 예산이 사용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근로자 1인을 고용하기 위해 약 4000만 원을 쓴 셈이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은 이제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이고,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에 들어간 돈을 고용된 인원 규모와 단순 비교하여 비용편익 분석을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긴 하지만,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정부 예산이니만큼 투입 대비 효과를 묻지 않을 수 없다. 1만2000명이 넘는 대학생에게 4년간 장학금을 줄 수 있는 큰 규모의 재정이 투입된 정책으로 보자면, 현재의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정부 사회적기업 홈페이지www.socialenterprise.go.kr ⓒ 문진수


실업의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의제 중 최우선 순위에 해당하는 것이며, 현 경제 상황 및 사회경제적 구조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종합적인 대안과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더 싼 임금과 더 좋은 투자조건을 찾아 '자본이 메뚜기떼처럼 이동하는' 지구적 환경을 만듦으로 인해, 개별 국민경제 안에서의 물리적 제약을 가진 노동시장을 현저히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친대기업 프랜들리 정책은 어떠한가?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들이 살아나 고용이 증가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깍아 주면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그럴듯한 정치적 수사일 뿐, 고용 증가와 경기 활성화를 만들어내기는커녕 부자들의 배만 불리고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만 가중시키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렇듯 실업의 구조적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실업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 일뿐 아니라 고용 창출효과도 매우 낮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업이 고용창출을 위한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들을 많이 만들면 복지 예산이 줄고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가정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부담이 커져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만큼이나 어리석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기업은 공공과 민간 중 누구도 답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제3의 영역 안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복지 영역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사회적기업의 확대가 복지서비스의 축소 및 시장화를 불러올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기업 정책은 노동연계복지(Welfare to work)라는 상위 개념에 입각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시장 경쟁체제에 노출되지 않고 국가의 책임 하에 보호되어야 할 복지 영역이 시장으로 밀려나게 될 경우,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들은 효율만을 추구하는 시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한계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정부의 지원정책을 등에 업고 영리기업들이 이 영역에 진출하게 된다면,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인데, 오히려 사회적 기업이 복지 질서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작용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는 '자본주의는 복지국가와 함께 공존할 수 없으며 동시에 복지국가 없이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익추구를 최고 목적으로 삼는 자본의 속성과 공공 선(善)에 기초한 복지의 성격은 서로 대립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본의 야수적 본능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고 관리하지 않을 경우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한 표현이다. 자본과 복지의 이 불편한 동거를 배제가 아닌 포용, 분리가 아닌 통합의 원리로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사회적 기업 육성 프로젝트는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하이브리드 산업이다. 복지, 사회서비스, 지역, 사회혁신 등 다양한 의제들이 서로 얽혀있고 시민사회(3섹터)가 주역이 되어야 하지만 시민사회만의 노력으로는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1섹터)와 시장(2섹터)의 적극적 연계와 결합이 요구된다. 사회 각 주체간 협력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백악관에 '사회혁신 및 시민참여국'(The White House Office of Social Innovation and Civic Participation)을 만들어 미 전역의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 그룹들과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고, 영국의 캐머룬(D. Cameron) 정부는 '큰 사회(Big Society)를 건설하자'는 구호 아래 5천 명의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교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 뒤에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겠지만, 시민사회 단체를 협력 파트너로 삼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현실과 너무나 비교된다.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관점이 다양한 목소리로 분출되고 있는 지금, 지난 4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대회의(round table)를 만들어야 할 때다. 거버넌스(governance)란 정부가 시민사회를 배제하고 홀로 독주하는 일방의 게임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따라주었을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관리체계다. 우리는 언제쯤 진정성 있는 협치(協治)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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